어떤 이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들릴 수도 있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필자는 그 나라 또는 기관의 과학 마인드를 이정표와 각종 자료에 표시된 도량형 단위 하나로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거리의 이정표와 우리나라 거리의 이정표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이정표에 Km·KM·M 등 엉터리 단위 표기가 훨씬 많다. Km· KM·M는 있지도 않은 엉터리 표기다. 그게 한국에선 버젓이 통한다.
광저우아시안게임 국내 중계방송에서 영문 자막으로 'Kg'이라는 엉터리 단위도 나왔다. 기업체의 도로 안내 시스템에서도 'Km'라는 엉터리 단위를 쓰고 있다. 선진국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이런 회사 제품을 신뢰할까.
더 놀라운 일도 숱하다. 도로의 이정표에도 엉터리 단위가 등장한다. 예컨대 경남지역의 대다수 대학 이정표가 'Km'를 쓰고,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체와 관련된 이정표에도 Km가 나온다. 우리나라가 인공위성 발사 실패와 고등훈련기 수출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를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다. 필자는 mm를 Mm로 쓴 것도 보았다. Mm와 mm는 10억 배의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 역시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는 일이다.
어떤 조직의 능력과 수준은 사소한 것에 의해 평가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것이 그 나라 그 사회의 총체적 수준을 평가할 때 한 기준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한 가지 위안을 받는 경험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114에 전화하여 KT 본사의 전화번호(031-727-0114)를 물으면, "지역번호 공, 삼, 일에 칠, 이, 칠에 공, 일, 일, 사입니다. 지역번호 공, 삼, 일에 칠백이십칠에 백십사번입니다"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짧은 시간에 동일한 전화번호를 다른 방식으로 안내하기 때문에 헷갈리는 데다, 두 번째 안내 방식은 국제 규범이나 우리 관습에도 맞지 않는다. 필자는 관련 기관에 전화해 고치라고 제안했다. 불과 며칠 만에 "오늘부터 서울지역을 시작으로 한 달에 걸쳐 전화안내 방식을 바꾸겠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필자 개인에게 그날은 우리나라의 국격이 상승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