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류현진(24)과 SK 김광현(23).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좌완 괴물 투수. 김광현이 류현진 보다 한해 늦은 2007년 데뷔했을 때부터 이들은 운명처럼 늘 비교됐다. 둘이 함께 등장한 기사만 해도 책으로 몇 권은 엮을 법 하다. 하지만 막상 이들이 무릎 맞대고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을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프로야구 일정 속에서 소속팀이 다른 두 선수, 그것도 이만한 거물급을 한 장소에 끌어다 앉힌다는 건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스포츠조선이 일주일을 섭외한 끝에 어렵게 둘을 한 자리에 모았다. 지난 16일 대전구장 한 켠의 사무실에서 모처럼 눈동자에 힘 풀고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다. 바로 전날인 15일 시범경기에서 선발로 '세기의 맞대결'을 펼친 다음날이었다.
이날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라운드에서 훈련을 하다 약속 시간에 맞춰 모인 둘은 나란히 난로 곁에서 언 몸을 녹이며 얘기꽃을 피웠다.
▶한기주가 부러웠다
비록 소속팀은 다르지만 2005년부터 대표팀에서 많이 만나서 그런지 너무나 친숙했다.
그들은 2005년 아시아청소년대회 때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류현진은 동산고 3년, 안산공고에 다니던 김광현은 대표팀 투수 중 유일한 2학년이었다.
둘의 기억속에 동시에 들어있는 인물은 KIA 한기주였다. 광주 동성고 3학년이었던 한기주는 류현진의 동기생이자, 김광현의 1년 선배. 류현진은 "그때 '와 10억팔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라고 회상했다. 김광현 역시 "한기주 선배가 KIA와 10억원 계약을 맺어서 눈길이 갔어요. 현진이 형과 저의 첫 만남은 그냥 평범했는데…"라고 덧붙였다.
▶김광현의 슬라이더가 탐난다
약간은 심각할 수 있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두 투수에 대한 리그 최고의 포수 SK 박경완의 평가를 빌었다. 박경완은 올해 초 "류현진은 리그 최고의 투수다. 아직 김광현은 류현진에 미치지 못한다. 류현진은 완성형 투수다. 반면 김광현은 현재진행형이다. 잠재력에서는 김광현이 낫다"고 했다.
류현진도 박경완의 얘기를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기사를 봤어요. 백번 맞는 말인것 같아요. 박경완 선배님 말씀대로 (김)광현이가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던지면 저보다 훨씬 더 대단한 피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광현이의 직구 스피드나 슬라이더의 각은 제가 봐도 정말 대단해요. 체인지업만 좋아진다면 어디다 갖다놔도 뒤지지 않는 피칭을 할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직구와 비슷한 궤적에서 오른손 타자 바깥으로 뚝 떨어지는 류현진의 서클 체인지업은 명품이다. 반면 김광현은 체인지업 장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초반 서클 체인지업을 사용했지만, 투구밸런스가 흐트러져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류현진의 칭찬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광현이 슬라이더가 참 탐이 나요. 오른손, 왼손(타자) 가리지 않고 던지는데 정말. 저도 던지긴 하지만 위력적이지 않아서"라고 했다.
▶현진이형이 낫다는 말 옳다
김광현은 선배의 '선제공격'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김광현은 "(류)현진이 형은 누가 봐도 최고잖아요. 박경완 선배님이 '저보다 현진이 형이 낫다'고 한 말은 당연한 것 같아요. 현진이 형은 볼의 구위 뿐만 아니라 제구력, 경기운영 능력, 그리고 특히 승부처에서 대응능력은 제가 꼭 배워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류현진은 "너도 하나만 콕 짚어서 얘기해봐. 난 슬라이더라고 얘기했는데, 넌 뭐야"라고 했다. 머리를 긁적이던 김광현은 "모든 게 다 최고라서"라며 웃었다.
김광현은 "잠재력에 대해서 박경완 선배님이 그렇게 말해주신 건 기쁘지만 과분하네요. 경험도 많이 쌓고 열심히 해서 조금 더 성숙한 투수가 되라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맞대결, 강한 너라면 오히려 더 편하다
시작부터 토닥토닥 장난치던 둘이 야구 얘기가 나오자 일순간 진지해졌다. 둘의 맞대결은 이번 시범경기가 최초다. 2007년 김광현이 데뷔한 이래 4년간 둘은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팀내 사정과 양팀 감독들의 에이스를 아끼는 마음이 합쳐져서 생긴 결과.
지난해 둘은 선발 로테이션 상 맞붙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우천취소되면서 결국 불발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류현진은 "사실 관심을 많이 가지시는데 결국 타자와 상대하는 거잖아요. 또 그때 제 페이스가 괜찮았기 때문에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류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광현은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현진이 형 말대로 상대팀 타자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 투수가 강할 때 저도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공격과 수비 시간이 짧을 때 페이스가 가장 이상적이거든요. 만약 공격이 길어지면 제 페이스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아져요"라고 했다. 류현진 역시 적극 동감한다는 듯 "불펜에서 오래 쉬면 좋지 않아요. 승부가 박빙으로 흐를 때 예를 들어 1-0, 0-0, 이럴 때 공이 가장 좋아요"라고 했다.
'상대가 강할 때 자신도 강해진다'는 확실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 두 괴물투수들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김광현이 좋아하면 뜬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7년을 뛰고 나면 구단 허락 하에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 올해 류현진은 6년차, 김광현은 5년차다.
류현진은 "기회가 되면 큰 무대에 도전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김광현 역시 "저도 마찬가지에요. 현진이 형이 해외에 진출하고 1년 뒤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꼭 성공하고 싶어요. 한국야구도 위상이 많이 올라갔으니까 가서 실력으로 뒤처지지 말아야죠"라고 덧붙였다.
괴물투수라고 말하지만 류현진은 24세, 김광현은 23세의 젊은 선수들이다. 인간적인 면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류현진은 "취미나 그런 거는 딱히 없어요. 쉬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냥 밥 먹고 하다보면 밤 12시 넘고 하니까"라고 했다. 옆에 있던 김광현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상형에 대해 물어봤다. 예전 10대1 인터뷰에서 김광현은 이상형을 탤런트 유인나라고 했다. 김광현은 "제가 이상형으로 지목한 사람들은 이상하게 유명세를 타는 거에요. 예전 김아중씨를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랬고, 이번에도 그렇고"라고 했다. 그와 10대1 인터뷰를 한 시점은 지난해 5월. 유인나는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황정음의 친구로 나와 대중들의 눈길을 잡은 뒤 최근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동안 청산유수처럼 대답하던 류현진은 이 질문에 고민을 많이 한다.
옆에 있던 김광현은 "굳이 이상형 한 명을 집어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라고 슬쩍 도와준다. 그제서야 미소를 지은 류현진은 "가정적인 여성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을 '라이벌'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날 마주앉은 둘은 서로를 거울 보듯 하는 정다운 '동반자'였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