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국회의원에 국회 정보위원장을 내던지고 임기 후반 청와대에 투신했던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취임 330일 만인 10일 야인(野人)으로 돌아갔다.
이날 저녁 한 음식점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전현직 수석 비서진이 모여 지난 1년간을 화제로 올렸다고 한다. 정 전 수석은 이 자리에서 "나는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까지 작은 지역정당 의원, 무소속 국회의원만 해왔다"며 "그러던 내가 청와대로 들어와 국가 대사(大事)를 다룰 수 있었던 건 평생의 큰 경험과 보람이 됐다. 비록 국회의원 배지는 던졌지만 정말 아깝지 않은 1년이었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정 전 수석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 패배로 이 대통령이 어려움을 겪을 때 구원투수로 청와대에 들어왔다. 세종시 수정 추진으로 충청 지역 감정도 좋지 않을 때였고, 여당 주류와 친(親)박근혜 진영은 '분당(分黨)'이라는 말이 오갈 정도로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충남 공주·연기에서 국회의원을 두 번 지냈던 정 전 수석은 충청권 대표성이 있었다. 거기에 박근혜 전 대표가 각별히 챙길 정도로 친박 진영과의 교분도 두터웠다.
정 전 수석 취임 직후 치러진 7·28 재보선에선 5대 3으로 여당이 승리했다. 이명박 정부로선 지방선거 패배 한 달여 만에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정 전 수석은 8월에는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도 성사시켰다. 이전과 달리 양측 모두에서 "성공적인 만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50% 가까운 국정지지율을 연초까지 유지하는 데 기여했던 정 전 수석은 그러나 4·27 재보선 패배로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축은행 사태 과정에서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맡았던 과거 경력까지 야당이 문제를 삼고 나왔다.
정 전 수석은 이날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 "신삼길씨와는 지난 3~4년간 만난 적도 없는데 정무수석이라는 자리 때문에 얼굴 내밀고 야당과 싸울 수 없어 답답하다"며 "옷을 벗는 순간부터 명예회복을 위해 야당과 싸울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혹이 처음 나올 때부터 정 전 수석은 "나와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 중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정치를 떠나기로 하자"는 성명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지만, "대통령 비서가 자기 마음대로 나서서 싸우면 안 된다"는 지시 때문에 발표를 못 했다고 한다.
51세의 정 전 수석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우선 갈 곳을 정해야 한다. 자신의 과거 지역구는 이미 다른 사람이 둥지를 틀고 있다. 정 전 수석은 "불안한 동거 상태였던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 동지(同志)의식을 만들어 드릴 수 있었던 게 큰 보람이었다"며 "정권 재창출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는 것 말고는 아직 아무것도 정한 것이 없다"고 했다. 인터뷰 요청은 "나중에 하자"며 거절했다.
정 전 수석은 이 대통령이 작년에 수석직을 제의했을 때 "박 전 대표와 빠른 시일 내에 만나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리고 정무수석으로서의 마지막 공들인 일도 박 전 대표를 대통령 유럽특사로 추천하고 두 사람의 단독회동을 다시 한 번 성사시킨 것이었다. 정 전 수석은 이런 노력을 했던 이유를 "보수 세력의 단합과 재집권을 위해서"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나 박 전 대표만이 아니라 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정 전 수석은 청와대 책상을 정리한 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제대로 된 보수, 떳떳한 보수 정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