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완 八단.

미국에 프로기사제도가 도입된다. 앨런 애브람슨 미국바둑협회(AGA) 회장은 2일 "여러 해 동안 계획해 온 프로 시스템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 곧 탄생할 우리 미국 프로들이 세계 무대에서 동양 강자들과 당당히 겨루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며 프로화를 공식 선언했다.

AGA(www.usgo.org)는 ▲출전 자격을 미국 및 캐나다 시민권자로 제한하고 ▲매년 2명씩 프로를 선발하며 ▲첫 입단 대회를 2012년 8월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열릴 전미바둑대회(US Go Congress) 기간 중 치르기로 했다. 예선을 거쳐 올라온 본선 멤버 16명이 1주일간 오프라인으로 대결한다는 대회 방식까지 구체화된 단계다.

미국의 프로제도 도입은 세계 바둑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될 전망.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란 찬사까지 들으면서도 바둑이 아직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서구 부국들을 무대에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둑은 전 세계 70여개국에 보급돼 있지만 프로제도가 자리 잡은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4개국뿐이다.

미국의 이번 프로 시스템 도입은 특히 한국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한국기원 해외 사범 파견 계획에 따라 도미, 3년째 미국서 활동 중인 김명완(33) 八단이 산파역을 맡았다. 그는 전미바둑대회를 무패로 3연패(連覇)하는 등 미국 바둑계를 석권하며 영향력을 키워왔고, 지난달 열린 AGA 이사회 때 프로제도 도입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내 인터넷 바둑 대표 사이트 중 하나인 타이젬(www.tygem.com)도 한 축을 맡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바둑협회가 재정난 때문에 프로화를 미루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조를 약속한 것(매년 지원을 맡았던 잉창치재단의 재정 악화로 2년 전부터 지원금이 끊겼다). 타이젬 장성계 운영팀장은 "바둑 세계화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원금은 3000만원 규모로 알려졌다.

한국기원도 적극 힘을 보태겠다는 자세다. 양재호 사무총장은 "김명완 사범이 큰일을 해냈다"며 미국 프로의 한국 주최 3대 국제오픈기전 출전 허용을 약속했다. 그는 또 "한국 유학 희망자에게 일정액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연구한 뒤 양국 협회 간 협조문을 교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한국기원은 올해 초 열린 상임이사회에서 서구권에 프로제도가 생길 경우 지원키로 결의한 바 있다.

미국바둑협회가 한국의 전폭적 측면 지원 속에 프로제도 도입에 착수, 세계 바둑 프로화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남녀 한 쌍씩 팀을 짜 진지한 표정으로 페어 대국을 펼치고 있는 서양 바둑 선수들.

미국의 바둑 수준은 일반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앤디 리우(20) 같은 청년은 2009년 전미바둑대회서 장밍주(江鳴久) 펑윈(豊雲) 양이룬(楊以倫) 등 중국 프로 출신 고단자를 모조리 호선으로 눕히고 우승했다. 지에 리(30), 용페이게 등도 같은 과정을 거쳐 전·현 챔피언에 등극한 강자들. 김명완 八단은 "지구상 어떤 강자도 이들을 2점 접고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미국 프로기사 배출 이후 예상되는 효과는 매우 다양하다. 미국 프로 대 한국 특정 그룹(여성 기사 등) 간 대결 등 각종 기획을 통한 글로벌 붐 조성이 우선 가능해진다. 미국 프로 지망생들의 한국 유학, 국내 프로의 미국 진출 모두 크게 활성화될 것이다. 바둑 시장(市場)이 국제화하면서 인기 스포츠 못지않은 흥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큰 변화다.

애브람슨 AGA 회장은 "한국 외의 다른 아시아 바둑 강국에도 문호 확대를 요청할 생각이다. 우리의 꿈은 매우 크다"고 했다. 김명완 八단도 "한국 바둑의 여명기와 비교하면 지금 미국 바둑은 실력과 여건이 훨씬 좋은 편"이라며 미래를 낙관했다. 프로기사가 세계적 기업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는 꿈 같은 시대를 향한 미국발 1신(信)이 막 타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