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백합니다(I am innocent)."

세계적인 사면운동이 일면서 '사형제 존폐 논란'의 상징인물로 부각됐던 미국의 흑인 사형수 트로이 데이비스(43)는 침대에 묶인 채 이 같은 유언을 남겼다. 그러고는 사형 집행장으로 향했다.

데이비스는 21일 밤 11시 8분(현지시각) 조지아주 중부 잭슨시에 있는 주교도소에서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숨을 거뒀다.

데이비스는 1989년 조지아주 사바나의 버거킹 주차장에서 비번이던 백인 경관 마크 맥페일(당시 27세)을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총을 비롯한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증인 9명을 내세워 현장 부근에 있던 그를 범인으로 단정했다. 하지만 증인들 가운데 7명이 "경찰이 강압적 분위기 속에 그를 범인으로 몰아갔다"며 증언을 뒤집었고, 사형 판결의 타당성이 논란거리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트로이에 대한 사형 집행은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위험이 있으며 정의의 실현에서 중대한 오류가 될 것"이라고 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대주교, 래리 톰슨 전 법무부 부장관 등 저명인사들이 사면을 요청하고 나섰다.

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는 데이비스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에 따라 조지아 주정부도 그의 사형 집행을 네 번씩이나 연기하면서 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2007년에는 이미 사형 집행 대기실로 옮겨진 상태에서 극적으로 집행이 연기되기도 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그에게 무죄를 증명할 재판 기회를 주었다. 사형수에게 추가 재판 기회를 주는 것은 미국 사법사상 50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지난 3월 "사형 판결을 번복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면서 조지아주 법원의 유죄 판결을 유지했고, 결국 이날 형이 집행된 것이다.

데이비스는 이날 22년을 함께했던 교도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나는 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경찰관을 죽인 진범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호소한 뒤 맥페일의 유족들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을 계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교도소 주변에는 데이비스의 지지자 700여명이 모여 '나는 트로이 데이비스입니다' '너무 많은 의혹' 등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사형 중단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도 지지자들이 몰려 "그들은 'death row(사형수 감방)'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hell, no!(절대 안 돼)'라고 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끝내 형 집행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조지아주는 시위대가 늘어나자 폭동 진압용 장비로 무장한 경찰을 교도소 앞에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데이비스 사건을 계기로 미국 대부분 주에서 유지되고 있는 사형제의 존폐 논란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50개 주 중 34개 주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데이비스를 포함해 35명의 사형수에 대한 집행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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