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역사 교과서 대신 신문기사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였다.
"덕수궁이란 이름은 우리의 뜻과 의지로 지은 게 아닙니다. 일본의 강압과 모욕이 담겨 있으므로 본래 이름인 경운궁으로 되돌려야 합니다."(김남영·12·부산 센텀초 6)
"잘못은 인정하되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최근 100년 동안 사용해서 모두 덕수궁이라 부르는데 이제 와서 이름을 바꾸면 혼란이 생길 겁니다."(김보현·12·부산 센텀초 6)
지난 24일 오후 3시,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열린 NIE(신문활용교육) 홈스쿨 수업시간. 초등학교 6학년생 친구 6명이 매주 모여 신문을 활용해 교과 공부도 하고 사회적 현안에 대한 글쓰기와 토론을 하고 있다.
먼저 수업을 맡은 박석기(42) 조선일보 NIE 지도사가 이번 주 신문을 꺼내어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사를 소개했다. 박 지도사는 국보인 울주 각석바위에 낙서한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 유럽의 한 연구소에서 빛보다 빠른 입자를 발견했다는 과학 뉴스를 보여준 뒤 '덕수궁 명칭 논란' 기사가 게재된 지면을 펼쳐보였다. 이어 '300년 쓴 경운궁, 100년 쓴 덕수궁'이라는 제목의 프린트물도 함께 나누어주었다. 덕수궁 명칭 논란에 관한 해설기사 두 개와 칼럼을 재구성한 글이었다. 지나치게 어려운 어휘는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는 단어로 바꾸고, 내용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 것이었다.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격하시켰지만 지금은 본래 이름을 되찾았어요. 하지만 '사찰'을 '암자'로 격하시킨 '석굴암'을 '석굴사'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박 지도사가 일제의 강압과 연관된 여러 가지 명칭 논란을 소개하자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경청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토의·토론을 벌이자 아이들의 주장이 더욱 정교해졌다. '경운궁으로 바꾸자'는 학생들은 '창경궁'의 예를, '덕수궁으로 유지하자'는 학생들은 '석굴암'을 논거로 보태며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박 지도사는 학생들이 친구와 같은 주장을 내놓더라도 표현을 달리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
학생들은 이날 나눈 의견을 바탕으로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올릴 '덕수궁 이름, 우리 생각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학생 모두 집중력을 발휘하더니 A4페이지를 빼곡히 채울 만큼 글을 썼다. 마지막으로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와사비(고추냉이)·나시(민소매)·닭도리탕(닭볶음)과 같이 일본말의 잔재가 남아 있는 단어들을 알아보며 '말과 얼'이라는 주제도 생각해보았다.
이태민(12·부산 센텀초 6)군은 "NIE 수업을 하고 나서 말솜씨가 늘어난 걸 스스로 느낀다"며 "신문은 어른들만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문을 읽게 되면서 공부에 활용할 게 많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박 지도사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는 아이들이 다소 따분해하지만, 같은 내용을 신문기사로 접하면 아이들이 훨씬 인상깊게 받아들이면서 잘 기억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