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流氷)은 끊임없이 태평양을 향해 떠내려갔다. 영하 40도의 칼바람이 대원들의 얼굴을 베고 찔렀다. 밤이 되면 랜턴을 켜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얼어붙은 바다에 애초부터 길은 없었다. 나침반은 고장이 났고, GPS(위성항법장치)는 배터리를 아껴야 했다. 오랜 탐험으로 익힌 '감(感)'만이 유일한 방향타였다.
홍성택(46) 대장이 이끄는 '베링해 횡단 탐험대'가 5박6일간의 사투 끝에 29일 오전(이하 한국 시각) 베링해협 도보 횡단에 성공했다고 알려왔다. 러시아 동단 우엘렌에서 시작해 알래스카 서단 웨일스에 이르는 '유빙의 바다'를 걷고, 또 헤엄쳐서 건너는 탐험이었다. 이동 거리는 약 103㎞. 횡단 시간은 116시간 30분이었다.
횡단에 나선 탐험대는 총 4명. 홍 대장을 비롯해 정찬일(33), 최재영(29), 정이찬(27) 대원이 고난의 행군을 함께했다. 윤태근(54) 총대장은 러시아의 베이스캠프에서 탐험을 지휘하고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했다. 이들은 모두 용인대 산악부 선·후배들이다.
홍 대장은 1993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1994년 남극점, 2005년 북극점에 오른 3극점(남·북극, 에베레스트) 등정자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로 그린란드 종단 루트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런 홍 대장에게도 베링해협은 모든 경험과 전략을 쏟아부어야 했던 험로였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베링해는 수만년 전 아시아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몽골리안 루트'의 일부분이다. 최단 거리가 88㎞에 불과해 바닷물이 단단히 얼어붙으면 사람이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난 뒤 빙하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고 흩어졌다.
20세기 이후 베링해를 걸어서 건넌 탐험대는 두 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러시아 탐험대와 1990년 영국 탐험대였다. 그러나 홍성택 탐험대는 출발지인 러시아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출발을 앞두고 만난 프로비데니아(우엘렌 인근 도시) 시장과 현지 기자들이 "당신들이 도보 횡단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가 될 것"이라고 격려한 것이다. 윤태근 총대장은 "현지 사람들에 따르면, 과거 러시아 팀은 베링해협 가운데의 디오메데 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완전 횡단'이 아니었고, 영국 탐험대는 탐험 과정이 명확하지 않아 성공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고(故) 박영석 대장도 2007년 3월 베링해 횡단에 실패한 적이 있다. 당시 박 대장이 이끄는 탐험대는 목적지인 웨일스를 불과 20㎞ 남겨두고 남쪽으로 흘러가는 유빙에 갇혀버렸다. 태평양으로 50㎞ 가까이 밀려난 박 대장은 결국 도전을 중단하고 구조를 요청해야 했다.
홍성택 대장이 이번 도전에 나선 이유는 박영석 대장과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1996년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8167m)를 함께 올랐고, 2005년 스키를 타고 북극점을 등정한 탐험 동료였다. 홍 대장은 "2년 전 영석이 형과 베링해를 함께 건너자고 했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홍 대장은 박 대장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탐험 계획을 짰다. 관건은 '출발 시기'와 '이동 속도'였다. 2007년 당시 박 대장은 출발지(러시아 우엘렌)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최적의 횡단 시기(2월 중순)를 놓쳤다.
남쪽으로 흘러가는 유빙에 갇히지 않으려면 강행군을 피할 수 없었다. 홍 대장이 이끄는 탐험대는 하루 3~4시간씩 쪽잠만 자고 쉼 없이 썰매를 끌고 행군했다. 끼니는 미리 준비한 동결건조식품(말린 쌀, 된장, 버터, 라면 등)으로 해결했다. 얼음이 녹아 바다가 나오면 홍 대장이 잠수용 수트로 갈아입고 헤엄쳐 건넌 뒤 썰매를 로프로 연결해 당기는 방식으로 행군을 이어갔다. 최재영 대원은 유빙 틈으로 빠져 실종될 뻔한 아찔한 상황도 겪었다.
홍 대장은 "영석이 형의 도전이 없었더라면, 이번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며 "영석이 형과의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했다. 원정대원들은 알래스카 웨일스에서 일주일 정도 동상 치료를 겸한 휴식을 취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