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훈(28·모비스)은 '저격수'다. 지난달 초 상무에서 전역하고 프로농구 무대로 복귀한 그의 팀 내 존재감은 전장에서 '일당백'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저격수와 비슷하다.

2009~2010 시즌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MVP(최우수선수)였던 함지훈이 합류하면서 모비스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성적은 19승24패에서 28승25패로 올라갔고, 2011~2012 시즌 6강 플레이오프(정규리그 5위) 진출도 확정했다. '2월의 선수'는 "종아리에 쥐가 나도록 뛰고 있다"는 함지훈의 차지였다.

'저격수'답게 함지훈의 취미는 컴퓨터 총쏘기 게임이다. 사용자의 시점(일인칭)에서 총기로 전투하는 것인데, 온라인상에서 여러명이 참가하는 종류를 더 좋아한다. 얼마 전 용인에 있는 모비스 합숙소에서 만난 함지훈은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자신이 구단으로부터 얼마나 큰 기대를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선수로서의 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느낌입니다. 부담스럽지만 기쁜 일이죠."

지금은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스타지만, 함지훈의 '저격수 자질'은 묻혀버릴 뻔했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9번째까지 지명을 받지 못했다. 9개 프로팀은 포지션(센터)이 외국인 선수와 겹치는 함지훈을 주목하지 않았다. 더구나 함지훈은 중앙대 3학년 때 허리 부상, 발등뼈 골절, 맹장 수술까지 겹치면서 1년을 허송세월했다. 4학년 때 MBC배 MVP에 뽑히긴 했어도 프로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함지훈(28)이 본보기로 삼는 선수는 같은 팀 가드 양동근(31)이다.“ 실력이나 성실성 등 선배에게 배울 점은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양동근은 2006~2007시즌 팀의 챔피언전 우승을 이끌고 결혼에 골인했다. 함지훈도‘우승 후 결혼’을 따라 하겠다는 각오다.

모비스는 달랐다. 유재학 감독은 함지훈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공을 잡은 이후 포인트가드부터 센터까지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실제로 함지훈은 남녀 실업농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함영진·62)와 어머니(이정우·55)에게 어려서부터 농구 수업을 받아 드리블, 스텝 등 기본기가 탄탄했다.

유 감독의 예상대로 함지훈은 프로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골밑에선 부드러운 스텝으로 수비수의 타이밍을 뺏으며 영리하게 득점했고, 수비가 몰리면 동료 선수들에게 패스해 중거리슛 기회를 만들어줬다. 농구 지능지수, 즉 'BQ'가 높아 경기 흐름을 잘 살렸다.

함지훈은 요즘 오세근(인삼공사), 최진수(오리온스) 등 기량이 뛰어난 신인들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특히 강력한 신인왕 후보이자 중앙대 후배인 오세근에 대해선 "힘과 농구에 대한 센스가 뛰어나다. '나도 더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칭찬했다.

함지훈은 다음 달 21일 대학 시절부터 사귀었던 두살 연상의 연인 김민경(30)씨와 결혼한다. 그는 "제가 농구에 전념하느라 결혼 준비를 여자친구에게 다 맡겨 미안하다"면서 "챔피언 반지를 예물로 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