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청주, 이상학 기자] "전성기 양준혁이 있다면 2번타자로 기용할 것이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지난해 사령탑에 부임할 때부터 2번타자의 중요성을 수없이 강조했다. 현대 야구에서는 작전수행보다 공격적으로 강하게 때릴 수 있는 강한 2번타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류 감독의 판단이었다. 2번 타순은 류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야구의 핵심이 됐다.
류 감독은 "전성기 양준혁이 있다면 나는 2번타자로 기용했을 것이다. 컨택 좋고, 출루 잘하고, 일발 장타력도 있고, 베이스러닝도 열심히 한다"며 "1~2번타자는 1회 시작할 때만 1~2번이지 그 다음부터는 큰 의미없다. 잘 치는 타자들이 한 번이라도 더 쳐야 한다. 8~9~1번에서 나가고 2번에서 장타를 뻥치면 쉽게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류 감독이 지난 20일 청주 한화전에서 박석민을 2번타자로 선발 기용하며 눈길을 끌었다. 류 감독은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박석민의 타격감각이 가장 좋아 2번 타순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박석민은 2번타자로 통산 8경기에 나왔고, 이날 경기 전까지 마지막 2번타자 출장은 2009년 8월8일 사직 롯데전으로 2년8개월11일 날짜로는 986일 만이었다.
박석민은 1회 첫 타석에서 몸에 맞는 볼로 출루했고, 2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2루 뜬공으로 아웃됐다. 하지만 4회 3번째 타석에서 좌전 안타를 터뜨리며 찬스를 만들었고, 6회 2사 후에는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30m 장외 홈런까지 터뜨렸다. 3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 1사구로 맹활약한 박석민에 힘입어 삼성도 한화를 9-4로 완파하며 최근 4연패 수렁에서 벗어났다.
경기 후 박석민은 "(이)승엽이형과 (최)형우형이 뒤에 있으니 살아나가는데 집중했다. 2번 타순은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잘했던 기억이 있다"며 "나한테 번트를 시킬 것도 아니고 찬스가 나면 직접 해결 하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2번보다는 5번이 더 재미있다. 주자가 없으니 아쉬운 건 있다"고 말했다. 이날 5타석 모두 박석민의 앞에 주자가 없었다.
박석민의 마음을 알았는지 류중일 감독은 "박한이가 돌아오면 2번에 넣을 것이다. 박석민의 2번 기용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선은 그었다. 왼쪽 허벅지 부상으로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한 박한이는 몸상태가 90% 이상 회복돼 1군 복귀가 임박했다. 2번타자 박석민을 볼 날이 많지 않지만, 2번 타선에서 장타력 뿐만 아니라 상대 수비를 교란시키는 주루플레이까지 펼친 박석민의 모습은 류중일 감독이 강조한 '강한 2번타자'의 이상향에 가까웠다.
청주=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