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나로호 발사 실패를 겪은 우리나라가 천신만고 끝에 초보적 수준의 로켓 엔진을 독자 개발했지만 러시아 측의 비협조로 성능시험조차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로켓 엔진을 테스트할 지상연소시험시설 사용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의존했던 나로호(KSLV-1) 개발의 실패를 교훈 삼아 우리나라는 2021년까지 독자 기술로 한국형 우주발사체(KSLV-2)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러시아는 자국에 있는 연소시험장 사용을 불허하고 있다. 나로호에 이어 독자 개발 로켓마저 러시아에 휘둘려 초반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당초 우리나라는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 측의 기술 이전을 기대했다. 러시아는 2006년 나로호 1단 로켓 기술을 이전하지 않고 완제품만 넘겨주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액체연료를 쓰는 1단 로켓은 나로호가 우주로 날아가는 힘의 대부분을 내는 핵심 부분. 1단 로켓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음번 한국형 발사체 개발도 불투명해진다.
정부와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대안(代案)을 모색했다. 항우연은 어렵게 우크라이나로부터 추력(推力·로켓을 밀어올리는 힘) 30t급 엔진의 설계도를 들여왔다. 항우연 연구원들은 이를 바탕으로 엔진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인 연소기·가스발생기·터보펌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단위 부품 수준에서는 국내에서 성능시험을 마쳤다. 부품을 모두 조립해 성능 시험에 성공하면 이를 업그레이드해서 1단 로켓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30t 엔진은 아직 성능 검증을 하지 못한 상태다. 우리나라엔 이만한 엔진을 시험할 시설이 없다. 항우연은 러시아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2008년 4월 당시 백홍열 항우연 원장은 "러시아가 로켓 기술은 이전하지 않겠지만 연소시험 같은 간접적인 협력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로호 개발 동안 국내에 지상연소시험장을 세우지 않은 것도 러시아를 믿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나로호 후속 로켓도 자신들이 제작을 맡으려 했다. 수천억원의 새로운 수익을 올릴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2008년 러시아 연방우주청과 회의를 가진 한 전문가는 "이탈리아 베가로켓에 들어간 액체로켓 엔진도 러시아가 준 것이라며 우리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가로켓에 들어간 엔진은 나로호처럼 완제품을 판 것이지 기술을 넘겨준 것이 아니었다.
한국이 러시아를 배제하고 독자 개발에 나서자 러시아는 지상연소시험장 사용을 막았다. 항우연의 한 관계자는 "지상연소시험장은 돈만 주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었는데, 러시아의 후속 로켓 개발사업 참여가 불가능해지면서부터 연소시험을 못하게 했다는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로켓 엔진 하나를 개발하려면 2만초 이상의 지상연소시험을 해야 한다. 러시아 흐루니체프사는 나로호 1단 로켓 엔진을 120번에 걸쳐 2만6892초 동안 연소시험을 했다. 그런데도 나로호는 2010년 2차 발사에서 실패했다.
우리나라가 우주 로켓 개발에 나선 지 15년이 된 지금도 국내엔 대형 로켓 엔진용 지상연소시험장이 없다. 10t급 소형 엔진 연소시험장만 있을 뿐이다. 한국형 발사체에 쓸 75t 엔진의 시제품도 어쩔 수 없이 출력을 대폭 낮춰 시험해야 한다.
조진수 한양대 교수(기계공학)는 "처음부터 독자 개발을 했다면 당연히 국내에 연소시험장도 갖췄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로켓 전문가는 "러시아가 입장을 바꾸면서 몇 년씩 허송세월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항우연은 2015년까지 3700억원을 들여 나로우주센터에 지상연소시험장을 갖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아직도 답보 상태다. 만약 올 10월 나로호 3차 발사마저 실패하면 로켓 개발 회의론이 확산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