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의 탄생은 그녀의 삶을 구원했다. 한동안 매스컴을 멀리했던 장은영이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다. 여전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주환이 엄마’가 됐다는 것뿐.
"그동안 저는 '지금'을 살지 못했어요. 현재를 누리지 못했죠.
좋게 말해서 누리지 못한 거고, 날카롭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지금에 성실하지 못했어요.
근데 요즘은 오늘이 충만해요. 저는 지금에 충실하며 살고 있는 거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장은영과 이원석의 같은 추억, 다른 기억
-마흔이 넘어 임신을 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다. "임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장은영과 휠모아인터내셔널 이원석 대표는 2010년 연말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다. 장은영은 당시 임신 6개월째였다.)
장은영(이하 장) : 여자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워요. 하지만 저는 시기적으로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황(최원석 전 회장과 이혼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던 시기)이라 혼란스러웠어요. 아기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고요. 젊은 엄마였으면 아이에게 더 좋을 텐데, 라는 아쉬움 때문이었죠. 결혼 전이었고 유학을 떠날 생각도 하던 상황이라, 원석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결혼이라는 과정을 또 겪는다는 게 엄두가 안 났어요. 한 문장으로 표현이 안 돼요.
이원석(이하, 이) : 저도 당황스러웠어요. 마음이 급해지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내의 상황이 정리된 지 얼마 안 돼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양가 부모님도 모르시고, 주변에서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머리가 하얘졌죠.
-임신에서 결혼까지 기간은 짧았지만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양가 부모님 설득보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설득하는 과정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장 : 남편은 장남이고 초혼이라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임신 초기에는 한동안 방황했어요. 제가 제 감정에 대해 정확히 이름을 못 붙일 정도로 혼란스러웠는데 남편이 그걸 아주 쉽게 정리해줬어요. 제가 "지금?"이라고 물어보니, "지금이어야 하니까!"라고 답했어요. 주환이가 생기면서 결혼까지 최소 2~3년이라는 시간이 절약됐죠.
이 : 결혼생활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특히 아내에게 임신은 큰 선물이었죠. 예전부터 "결혼은 하더라도 임신은 과연 할 수 있을까?"라고 종종 물어봤거든요.
장 : 저는 옆 사람의 말이나 분위기에 많이 동화되는 편이에요.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있으면 기가 완전히 눌려요. 그런데 저희 신랑은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부정적인 말을 안 해요. 생긴 건 굉장히 까칠해 보이는데 더없이 편안하고 밝은 성격이죠. 신랑도 흰머리가 많은 편이고, 저도 그래요. 아이를 가졌을 때 염색을 못 하니까 새치가 보이는 거예요. 산후우울증도 오고 갑갑했어요. 어느 날 "50대에 아이랑 놀이동산에 가서 뛰어야 하고, 운동회도 가야 하는데 어쩌지?" 하며 걱정하니까 남편이 "하면 되지. 우리 열심히 운동하자. 그리고 남들은 권태기네, 삶이 무료하네, 할 시기에 아이가 대학을 가니 얼마나 좋아.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키워야 하니까 바쁘게 살 거 아냐"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웃음)
-두 사람은 대학생 시절 소개팅으로 만난 걸로 알려졌다. 첫인상은 어땠나?
이 : 멋있게 생겼다는 느낌이었어요. 당시 그런 느낌을 풍기는 멋있는 여자가 몇 명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죠. 아네트 베닝과 샤넬 모델이었던 배우가 있었는데, 아!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장 : 아니야! 다른 여자랑 헷갈리는구나. 머리 감고 말리지도 않은 채로 묶고 나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겨울이 되기 전에 기억이 희미해졌어요. 그땐 삐삐도 없는 시절이었죠. "몇 시에 전화할게." 그러면 전화기 앞에 앉아 있던 시절.
이 : 사계절을 지내는 동안 다섯 번 정도 만난 것 같아요. 굉장히 띄엄띄엄 만났죠.
-몇 번 정도 만나면 남자 입장에서는 승부수를 던질 때가 찾아온다. 사귀자는 말을 건네보긴 했나?
이 : 당시 아내는 무척 바빴어요. 리포터를 하고 그랬으니까요.
장 : 신방과니까 학교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했고, SBS가 개국하면서 친구들과 리포터로 활동하느라 바빴어요. 원석 씨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손도 안 잡았죠. 하지만 그 시절에 차 문을 열어줄 줄 아는 젠틀남, 말 그대로 댄디한 남자였어요. 무엇보다 제 입장에서는 그리 급할 게 없었어요. 그런데 원석 씨 입장에서는 두세 번 만나자고 하면 한 번밖에 안 만나주니까 화가 났던 모양이에요. 결국 제가 차였죠. 튕긴 것도 밀당을 한 것도 아니었고, 개념 없이 왔다 갔다 동분서주했던 것뿐이었는데, 원석 씨는 그게 아니었나 봐요.
-결국 헤어졌다. 자연스럽게 멀어진 건가?
장 : 원석 씨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주곤 했어요. 그날도 그걸 건네주려고 했죠. 원석 씨가 차를 몰고 집 앞에 왔길래 으레 그랬듯이 타려고 했는데 문을 안 열어주더라고요. 당황하고 있는데 차 문을 열고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그동안 제가 줬던 테이프들을 돌려주고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화가 났어요. '뭐 저런 게 다 있어?'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소개해준 사람에게서 소식은 가끔 들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완벽히 잊고 살았나?
장 : 저는 원석 씨가 문득문득 궁금했어요. 자랑같지만 당시 저한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한 사람도 꽤 있었어요. 그런데 원석 씨는 "나 너 정말 좋아." "우리 사귀자." 이런 말도 안 했어요. 그런데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구애했던 사람보다 더 생각이 났어요.
이 : 저에게 아내는 '멋있는 여자', '바쁜 여자'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어요. '이 친구가 이렇게 바쁜데 도와줄 수 있는 건 없고, 자꾸 만나자고 하면 귀찮아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지레 정리를 하게 됐어요.
-만약 그때 연애를 계속했다면 지금 이런 인연이 되었을까?
장 : 인연이나 운명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불쑥 맞닥뜨려지는 거예요. 내가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뜻대로 되지 않죠. 원석 씨를 만나고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인물인데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인연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되죠. 똑같은 이원석과 장은영이 1990년대에 만났는데 2010년대에 와서는 짝지가 되었어요. 신기해요.
-이 대표에게 묻겠다. 장은영 씨가 방송인으로 국내에서 맹활약하는 동안 해외에 있었다고. 간간이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나?
이 : 저는 아내가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생활했거든요. 미스코리아에 나간 것도, 를 진행한 것도 몰랐죠.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요. 비디오테이프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죠. 저는 국내 비디오 자체를 보지 않았어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정말 몰랐나? 전국이 들썩했던 를 진행했다는 사실조차도?
이 : 중앙청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걸 본 적은 있어요. 그걸 보고 돌아갔고, 다시 와서도 이슈(결혼)가 되어 있었지만 일하느라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장 : 국영 방송국에서 일했기 때문에 정부 관련 행사를 많이 진행했어요. 광복 50주년 옛 조선총독부 철거 행사를 봤나 봐요. 원석 씨는 성격이 참 좋아요. 차단이 잘돼요.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고 불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죠. 대개 사람들은 누가 뒤에서 나를 험담하지는 않는지, 내가 누구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는 않았는지, 나 때문에 누가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을 쓰잖아요. 그런데 원석 씨는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경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도 않아요.
-아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고 들었다. 어떻게 만났나?
이 : 알려진 것처럼 모임에서 만난 건 아니에요. 정말 우연찮게 다시 만나게 됐죠. 풋풋한 대학생이던 아내가 성인이 된 모습을 보니까 느낌이 좀 다르더라고요. 당시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헤어진 탓도 있고요. 지금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 과거의 데이터는 다 지워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셈이죠.
장 : 만약 당시에 저희가 진지하게 만났다면 다시 만났을 때 어색했을 거예요. 편안하게 무장해제된 상태로 만났더니 편했어요. 저에게 남편은 오랜 친구 같아요. 대화를 하고 있으면 정말 편안해요.
-어떤 순간에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나?
이 : 연이 된 것도 그런 것이 없잖아 있어요. 아내는 성격이 굉장히 부드러워요. 그게 저한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고성을 내는 경우가 없어요. 화도 잔잔하게 내요.
장 : 잔잔하게 울고, 잔잔하게 긁고.(웃음)
이 : 화는 잘 안 내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막내 기질은 좀 있어요. 확실히 있어요.(웃음)
장 : 저한테 막내 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또 제가 막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거의 모르고요. 남편은 집에서 "어휴~ 막내야." 그래요.
이 : 화내거나 그런 건 별로 없고 부드러운 편인데, 전반적으로 별것 아닌 일에 잘 삐치는 편이죠. 신경 안 써도 되는데 지레 걱정하는 부분도 있고요.
-아내의 내조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인가?
이 : 아내는 많은 시간을 저와 같이 있고 싶어 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퇴근시간이 다 돼서 보고가 들어오기도 하고 회식을 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회사일이 좀 늦는다거나 퇴근시간 무렵에 급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마음이 바빠져요. 그런 부분만 빼면 100점이에요.
장 :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게 100% 자발적인 건 아니에요.
이 : 솔직히 제가 집에 빨리 들어오길 이 친구가 바라는 건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기 때문이에요. 제시간에 제대로 먹이려는 거죠. 제가 항상 불규칙하게 식사를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 친구 때문이라기보다 집에 들어가면 달려나오는 주환이 모습이 눈에 선해서 빨리 들어가고 싶어요.
-결혼한 뒤에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이 혼자 지낼 때와 다를 것 같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온 이 대표의 경우는 특히 더.
이 :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안정감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아! 이런 게 가정이고,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아! 이래서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걸 하는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집에 들어왔을 때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삶의 지축을 흔들어요. 혼자일 때는 업체 사람들을 만날 때도 청년 같은 마인드로 일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당신과 나는 동급이야"라는 공식이 생기더라고요. 희한했어요.
엄마가 되고서야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태교는 남편과 함께했나?
장 : 임신을 한 뒤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썼어요. 가장 좋은 태교는 남편의 웃음소리였어요. 남편이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웃는 걸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게 아이한테 가장 좋은 태교였다고 생각해요. 저도 요즘은 주환이 아빠 때문에 코미디 프로를 자주 봐요. 그래서인지 주환이는 웃는 게 입력되어 있어요.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요. 맛있는 음식을 주려다 안 주고, 안길 듯하다가 도망가고 그래요. 그럴 때 온몸이 찌릿찌릿해요.
-아이를 키우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나?
장 : 정말 많이 안아줬어요. 그래서 항상 팔이 아파요. 주환이 몸무게가 12㎏를 육박해요. 제가 몸이 부실한 편이고, 디스크도 있고, 근육이 없어서 더 힘들어요. 병원에서는 무거운 건 들지 말라고 하는데, 저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제 손이 닿는 만큼 아이가 자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도 저는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재워요.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한 살결을 가진 아이를 가슴에 올려놓고 재울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아이가 제 가슴에 있을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체온, 숨소리, 냄새가 모두 느껴져요. 엄마만 알 수 있는 그런 온전하고 완벽한 행복감에 가슴이 뻐근해져요.
-그런 행복과 비교할 수 있는 게 있나?
장 : 무슨 일이든 '처음'이라는 것에는 감동이 있어요. 그런 느낌을 주환이를 낳고 알았어요. '이래서 처음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거구나.'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주환이가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던 순간이에요. 그때 그 소리, 분만실의 밝기와 온도까지 다 기억해요. 신께서 그런 복된 순간을 한 번 더 주신다 해도, 처음의 감동만큼 다가올까요?
이 : 저도 눈물을 흘렸어요.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필름처럼 스쳐가더라고요.
-주환이가 돌잡이 이벤트에서 용맹을 의미하는 활을 잡았다고 들었다.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나?
장 : 건강이 최고예요. 건강해야 무엇을 하더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모두 같은 것 같아요.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아프지 않고 자랐으면 좋겠어요. 사람 몸의 구조가 어느 정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아파서 고통받는 일이 없게 만들어졌으면, 아이들이 아프다면 그 고통을 어른들이 조금씩 나눠서 아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잘 웃고 항상 기쁜 아이였으면 좋겠고요.
-어떤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아내는 아이가 울면 함께 운다"고 말한 걸 본 적이 있다. 초보 엄마 딱지를 떼려고 하는 요즘은 좀 덜 우나?
장 : 아이 때문에 우는 일은 많이 줄었어요. 주환이뿐 아니라 저도 함께 크고 있어요. 처음에는 주환이가 아프면 그냥 맥없이 울기만 했어요.
이 :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지 다른 것 때문에 우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고, 설사 알게 되더라도 해결해주지 못하니까 안타까워했어요.
장 : 저는 아이와 무엇이든 교감이 될 줄 알았어요. 아이를 가졌을 때 태교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무엇보다 배 속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제 기분이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주었으니 아이가 태어나면 저와 자연스레 의사소통이 될 줄 알았어요. 울다가도 제 목소리를 들으면 그칠 줄 알았던 거죠. 그런 특별한 교감의 끈이 있다고 기대했는데, 웬걸요. 얼굴이 자줏빛이 될 정도로 자지러지게 우는데 미치는 줄 알았어요.
이 : 아내가 그런 걸 너무 안타까워했어요.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라고 이야기해도, 책에서 읽은 대로 해야 한다며 끝내 고집을 부리더라고요. 예를 들면 아이가 배고프다고 우는데도 책에서는 세 시간마다 밥을 줘야 한다고 했다면서 절대 주지 않는, 그런 정확한 면이 있어요. "그럼 같이 울어라!" 그랬어요.(웃음)
-남편은 어떤 아빠인가?
장 : 약간 칠칠치 못한 엄마보다 나아요. 그런 엄마보다 육아를 더 잘해요. 원석 씨 만나서 가장 놀랐던 건 조카를 다루는 솜씨였어요. 저도 조카에게 목매던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남편은 더하더라고요. 삼촌이 조카를 그렇게 예뻐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기저귀도 신속하게 잘 갈고 목욕도 능숙하게 시켜요. 요즘 젊은 아빠들은 다 그렇다고들 하는데, 우리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굉장히 드물거든요. 자상한 아빠예요.
-주환이는 이유식을 하고 있나?
장 : 밥을 먹이고 있어요. 모유수유는 백일 정도밖에 못 했어요. 주환이한테는 턱없이 부족했죠. 그래서 이유식을 일찍 시작했어요. 정보를 찾아보고 아이에게 정말 좋은 재료들을 구입해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르게 먹였어요. 그런데 밥을 그렇게 잘 먹던 애가 요즘 갑자기 쌀밥과 김만 먹어요. 골고루 먹이는 방법에 대해서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이 : 주환이가 먹다 남긴 음식은 제가 먹어요. 그때서야 한우도 먹어보고, 안심도 먹어봅니다.
-아내가 너무 아이만 챙기는 것이 서운하지 않나?
이 : 그냥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오늘 하루 아무 사고 없이 잘 지낸 거,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장 : 그냥 빈말이 아니라 이보다 더한 진심이 없을 만큼의 감사함이에요. 남편과 저는 애틋한 동지의식이 있어요. 주환이는 건전지 CF에 나오는 토끼 같아요. 에너지가 넘치죠. 남편과 제가 온종일 주환이와 허리가 꺾어지게 놀다 보면 야릇한 동지애 같은 게 생겨요. 물론 아빠와 엄마로서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긴 하지만요.
-오랫동안 를 진행했다. 당시 그 프로그램은 엄청난 구름관객을 동원하며 우리나라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의 새 장을 열었다. 당시 '국민 MC'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깔끔한 진행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방송에 복귀할 생각은 없나?
장 : 저는 기가 세지 못해요. 요즘 같은 방송환경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질을 갖고 있어요. 가 한창 인기일 때는 관객이 5만 명이나 모일 정도였어요. 저도 덩달아 팬레터를 많이 받았죠. 팬레터에는 "좋아한다", "기운내라" 같은 격려의 말들이 많았어요. 당시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수많은 시청자들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접수되잖아요. 제가 방송을 진행했던 때와는 많이 다르죠.
-한 번쯤 '나도 저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프로그램은 없었나?
장 :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있어요. '아이에게 적성에 맞는 교육을 시켜주고 싶으니까 교육 프로그램을 맡으면 어떨까.'라고요. 는 프로그램이 좋아서 MC가 빛났던 게 사실이에요. 자리가 사람을 빛내주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아직은 엄두가 안 나요. 이틀에 한 번 장을 보러 가도 마음이 바빠요. 주환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거든요.
-'내가 진짜 엄마가 됐구나.'라고 실감하는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
장 : 얼마 전에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저를 지켜봤던 회원 한 분이 "장은영 아줌마 다됐구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옛날에는 말도 안 하고 찬바람이 쌩~ 불었는데 목욕탕에서 다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있다고요. 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보니까 그게 정확한 거라고 생각해요.
-육아에 대한 정보들은 어떻게 얻고 있나?
장 : 요즘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은 엄청난 스펙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도 깔끔하게 잘하고, 저녁에 블로그까지 운영하는 엄마들이에요. 거기다 바깥일까지 하는 엄마들은 정말 대단하죠. 그런 엄마들 블로그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요. 저녁에 사이트를 뒤지고 있으면 남편이 그래요. "또 인(인터넷) 선생한테 뭐 물어보고 있는 거야?" 그런데 정말, "흰쌀밥만 먹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바로 답이 나와요. 후배 중에 저보다 서너 달 늦게 아이를 낳은 친구가 있는데, 그 후배한테도 정보를 많이 듣고요. 특히 조리원 동기들하고 관계가 끈끈해요. 며칠 뒤에도 만나기로 했는데, 제 나이가 제일 많아요. 거의 띠동갑 동생들이죠. 그 친구들하고 "계란은 먹여봤어?" "치즈는 먹여봤어?" 하면서 정보를 교환해요.
-처녀 시절 몸매와 비슷한 것 같다. 출산 후 몸매 관리는 어떻게 했나?
장 :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는 살을 못 뺐는데, 그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근력운동을 했어요.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에요. 남들과 똑같이 먹어도 살이 안 찌고, 운동을 하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요. 운동을 하는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이 부실해서예요. 관절이 아프니까 일단 통증을 없애고, 그 다음 아이를 잘 안을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죠. 이제 주환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했고, 서로 의사소통도 되고 있어요. 제가 뽀뽀를 안 해준다고 우는 척을 하면, 다가와서 달래줍니다. 그런 아이 앞에서 "아이고, 아프다."라고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2~3일,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열심히 운동해요. 지금은 많이 무너졌는데, 저는 복부가 굉장히 탄탄한 편이에요. 항상 복부가 긴장된 상태로 자세를 유지해요.
-아이가 생긴 뒤 책임감이 막중해졌을 것 같다. 그건 엄마나 아빠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장 : 남편이 저한테 자주 지적하는 게 있어요.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 한다는 거죠. 아이를 낳고 이 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저한테 100% 의존적인 존재가 있어본 적이 없잖아요. 아이는 제가 상한 음식을 주면 상한 걸 그대로 먹어야 하고, 뜨거운 물에 목욕시키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 같았어요. 24시간 깨어 있으면서 보살펴야 할 것 같았죠. 아주 귀한 존재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어요.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그런다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겐 그런 막중한 부담감이 있어요.
이 : 저는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책임감이 더 막중해지지는 않았어요. 무슨 일이든 그 무엇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어져요. 어떤 조건도 없이 아이에게 온전히 사랑을 주는 것 외에는 없어요. 너무 뻔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요.
-2008년에 '봉쁘앙'과 '닐바렛'이라는 명품 브랜드를 론칭했고, 현재 의류업체 '휠모아인터내셔널' 대표로서 직영점을 비롯해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등 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 : 남편은 종종 이렇게 말해요. 자기 브랜드의 옷을 사 입은 아이가 자라서 어릴 적 사진을 보는데, 입고 있는 브랜드가 엉망이면 얼마나 싫겠느냐며, 그래서 매니지먼트를 잘해야 한다고요. 저는 그런 점에 감동을 받아요. 주환이를 보면서도 이렇게 말하죠. "주환아, 넌 정말 좋겠다. 아빠가 좋은 사람이라서."라고요. 저는 남편에게 배우는 게 많아요. 남편은 목적이 아주 순수한 사람이에요. 카리스마가 있고 능력이 : 뛰어나서 연봉이 어마어마하다는 사람보다 인격 면에서 나은 사람이라는 걸 느낄 때 절로 고개가 숙여져요. 솔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어요. 남편은 주환이를 위해서 돈을 벌고 회사를 키우는 게 아니라서 참 좋아요. 이 사람 옆에 있으면 저도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아요. 남들은 아빠가 유·아동복을 수입하니까 주환이는 옷 걱정 없겠다고 하는데, 실은 아직까지 큰 덕은 못 보고 있어요. 주로 내복 패션으로 지내거든요. 그런데 여자애들 옷은 정말 탐나요. 다 입혀보고 싶어서라도 딸을 갖고 싶어요. 무엇보다 남편 회사의 스킨케어 라인은 거의 완벽해요. 저랑 주환이랑 같이 쓰는데, 품절 행진이라 무지무지 아껴 쓰고 있어요.
-아이는 어떻게 키우고 싶나?
이 : 주환이가 커가는 동안은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의 모자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남자아이는 금전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경험을 모두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편협하지 않고 정의로우며 용감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삶에 어느 정도로 만족하며 살고 있나?
장 : 충만함으로 꽉 차 있어요. 그동안 저는 '지금'을 살지 못했어요. 현재를 누리지 못했죠. 좋게 말해서 누리지 못한 거고, 날카롭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지금에 성실하지 못했어요. 근데 요즘은 오늘이 충만해요. 물론 가끔 약간 멍해질 때가 있어요. 주환이랑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으면 잉여가 되는 것 같고, 섬뜩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하루가 다 지나고 아이가 잘 때쯤엔 '내가 오늘 하루 그 어떤 일을 했던들 이렇게 충만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에 충실하며 살고 있는 거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epilogue
마감 막바지 즈음 장은영이 한 통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결혼사진과 아들 주환이의 돌 사진을 공개해달라는 부탁이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결혼 당시 사진과 주환이의 육아일기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육아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주환이가 몇 시에 분유를 먹었는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이유식을 먹었는지, 변은 몇 시에 보았는지, 낮잠은 몇 시간을 잤는지가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주환이가 잠들고 난 뒤 아이에게 짧은 편지를 쓰면서 그날 하루를 정리한 일기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든 인터뷰든, 무슨 일이든 확실히 마무리하는 장은영의 꼼꼼함과 섬세함이 그대로 엿보였다. "주환아! 너는 정말 좋겠다. 좋은 엄마를 두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