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11시 10분쯤 서울대공원 동물원 큰물새장. 배주희(28) 사육사와 한 살짜리 수컷 분홍펠리컨 '카나'가 모자(母子)처럼 다정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배씨가 "카나야~ 이리 와봐"라고 10m쯤 달려가 소리치자, 몸길이 1.5m, 부리 길이만 40㎝에 이르는 카나가 뒤뚱뒤뚱 걸어와 배씨 다리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카나는 배씨를 마치 엄마처럼 따랐다.
카나는 지난해 5월 펠리컨 중에서는 서울동물원에서 처음으로 인공부화에 성공한 분홍펠리컨 새끼. 일곱 살짜리 '생모(生母)'는 당시 알을 2개 낳았지만, 바로 이웃에 있던 두루미 부부가 자기 새끼를 보호한다고 펠리컨 부부에게 자꾸 위협을 가하자 알을 두고 둥지를 떠났다. 펠리컨은 새끼를 기를 만큼 좋은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알을 버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버려진 알 2개 중 하나에서 카나가 태어났다.
카나가 태어나자마자 배씨는 '양육(養育)'에 정성을 쏟았다. 펠리컨은 미꾸라지 등 작은 물고기가 주식(主食). 어미가 있으면 어미가 물고기를 잡아 약간 씹어 반(半)소화시킨 상태에서 주기 때문에 먹기에 부담이 없지만, 카나는 어미가 떠난 처지라 배씨가 이런 역할을 맡았다. 배씨는 미꾸라지를 믹서에 갈아 연하게 만든 뒤 카나에게 먹였다. 말하자면 '추어탕' 먹이를 준 셈이다.
배씨의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펠리컨 새끼를 길러 봤던 다른 국내 참고 자료가 없어 외국 논문까지 읽어가며 카나를 길렀다. 카나도 그 정성을 아는 듯 배씨를 졸졸 따르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성체(成體) 크기로 커진 카나는 다른 펠리컨과 큰고니, 두루미 등이 섞여 사는 큰물새장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 뒤로도 배씨만 나타나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몸을 비비곤 했다. 배씨는 "조류 부화장에서 인공부화시킨 알이 600개가 넘는데, 카나처럼 사육사에게 애교까지 부리는 새는 처음"이라며 카나 머리를 쓰다듬었고, 카나는 기분이 좋아진 듯 '꾹꾹' 소리를 연방 냈다.
배씨에겐 '아들' 같은 존재이지만 알고 보면 카나는 큰물새장 사육사들에게는 골칫덩이다. 관람객들에게 갑자기 다가가 큰 부리를 쩍 벌리며 제 나름의 애정 표현을 하는데, 관람객들이 이 광경에 놀라 뒷걸음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갱스터'다.
배씨는 "카나는 환영한다는 뜻에서 다가와 부리를 벌리는 것이니 오해는 말아달라"며 "그래도 혹시 부리에 물릴 수 있으니 만지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