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54)의 소설은 손꼽히는 '페이지 터너'(page―turner·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다. 실존인물 실명 사용, 눈길 끄는 주제, 빠른 전개가 특징. 600만부 팔린 데뷔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그가 낸 소설은 10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신작 '삼성 컨스피러시'(새움)는 애플 등 국제적 기업들이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을 집어삼키려는 모종의 음모를 추적하는 얘기다. 2002년작 '바이 코리아'를 일부 손질하고 제목을 바꿔 단 개정판. 출간 후 한 달 만에 2만5000부가 출고됐고, 예스24 소설 부문 10위에 올랐다. 10위 안에 든 한국 소설은 김연수 장편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과 김진명 책 둘뿐이다.

그러나 김진명에 대해 평단은 아예 관심이 없다. 악평조차 나오지 않는다. 김진명은 20일 전화 통화에서 이를 "평단이 날 극도로 무시하는 것"이라 했다.

어떤 이는 김진명을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에 비유한다. 비평계는 외면하지만 독자는 환호하는 점이 닮아서다.

―평단은 당신에게 관심없는 것 같고, 대중만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맞다. 나는 교수나 문인의 제자로 키워진 작가가 아니라 어느 날 휙 나타나 책을 냈고 그들과 다르게 많이 팔았다. 문단은 날 철저히 모른 척하기로 한 것 같았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래야 그들이 문학적 자존심이라도 지킬 테니까. 문학적 향기가 있는 책을 내가 못 쓰는 게 아니다. 굳이 나까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순수문학 작가가 우리 말글을 갈고닦아 미학적 아름다움을 뽐낸다면, 나는 사회와 민족이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소설이 세상의 복잡한 변수를 담아내지 못하고 문학적 향기만 따지면 독자와 멀어진다. 우리 문단이 겪고 있는 위기다."

―책이라는 '상품'으로 독자와 직접 만나온 당신이 할 말은 아니다, 라고 한다면?

"아무 작가나 나처럼 쓰면 팔릴 것 같은가. 아니다. 공짜 정보가 무한정 제공되는 오늘날 독자가 제 돈 내고 사보는 책은 상당한 힘을 가졌다. 작가도 사람이다. 돈 벌어야 가족도 거느리고 사회에서 힘도 생긴다. 글 쓴다는 자체로 운명인 양 가난과 직면하는 건 시대와 맞지 않는다."

―대중적 인기와 보상을 얻었으니 굳이 평단의 주목은 필요 없지 않나.

"잘 안 팔려도 문학적 시도만 하면 평단이 주목하고 그렇지 않으면 평단이 관심 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은 천박한 표현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책 안 읽는다. 남한테 무관심하고 개인주의적이다. 그런데 내 소설을 읽고 독서가 좋아졌다, 국가와 사회에 관심 가졌단 사람이 매우 많다. 그런 긍정적 측면을 봐줘야 한다. '무궁화…'를 냈을 때 한 소설가는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극언했다."

―틀에 박힌 전개와 구조가 식상하다. 0.1%의 사실에 바탕을 둔 반(半) 환상문학이란 비판도 있다.

"옳다고 본다. 다만 뼈대가 되는 중심 틀은 항상 팩트(fact·사실)를 갖고 쓴다. 내 얘기가 거짓이라면 이병철, 이건희, 박정희 등 실명을 썼을 때 바로 명예훼손 걸렸을 거다. 나는 독자가 소설을 통해 잃어버린 문화와 역사를 찾고 정체성을 확립했으면 한다. 그 원칙으로 소재와 주제를 발굴하기 때문에 척 보면 비슷해도 뜯어보면 다르다."

―교훈을 강요하는 스토리 전개, 극단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많다.

"중국의 부상, 일본의 우경화, 북한의 붕괴를 고려 안 하는 사회라면 내가 강조하는 이데올로기가 우스울 거다. 하지만 세계는 급변 중인데 문학만 이걸 외면한다. 지금 대비 안 하면 훗날 더 큰 대가(전쟁)를 치러야 한다. 작가는 현실이 아니라 미래에 닥쳐올 나라의 운명, 사회의 생존 조건을 써야 한다. 순수문학에 그런 걸 기대할 순 없다. 그래서 내 책은 정치지도자나 행정관료가 많이 읽는다. 오죽하면 '나비야 청산가자' 썼을 때 국정원 핵 담당 직원 4~5명이 찾아와 향후 한반도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을 잡았다고 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