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하가 누구야?" 이달 뮤지컬 '아이다' 개막과 함께 낯선 이름 석 자가 오르내렸다. 처음 보는데, 성량이며 연기가 탁월한 배우가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로 나와 무대를 흔들었다. '타고난 암네리스'라는 배우 정선아와 역할을 번갈아 맡은 안시하는 '정선아 못지않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작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도 잘 안 잡히는 '신인' 안시하(30)를 최근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는 "제가 이름을 바꿔서 그래요"라며 웃었다. 원래 이름은 안성미. "2년 전에 오디션마다 떨어져서 답답하던 차에 작명소 권유로 결심했어요. 옳을 시(是), 강물 하(河)인데, 바르게 뻗어나가라는 뜻이에요."

데뷔가 2004년 '달고나'의 담배 가게 아가씨였으니, 벌써 9년차. 사과로 이름난 충남 예산이 고향이다. 다섯 살 때부터 '신사동 그사람'과 '짝사랑'을 곧잘 불러 동네에서는 '예산의 주현미'로 통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언니 오빠와 강동구 천호동 반지하 방에서 살던 무렵, TV에서 MBC아카데미 뮤지컬 수강생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목청은 합격. 춤이 안 됐다. '다리를 일자로 찢어야 한다'고 해서 한 달 만에 '찢었다'. 잘 돌아야(턴·turn) 된다고 해서 하루 10시간씩 돌고, 복식호흡 하라고 해서 12시간씩 연습했다. "노래로 성공하고 말겠다는 독기로 버텼어요."

허영한 기자

대학(경민대 뮤지컬학과)에는 02학번으로 들어갔다. 돈이 없으니 장학금을 받아야 해서 죽어라고 공부해 받았다. '김종욱 찾기', '사랑을 비를 타고' 등 중소규모 뮤지컬로 경력을 쌓았다. 제작사 대표가 도망가 울어도 보고, 방송 쪽을 기웃거리다 쓴맛도 봤다. 그러다 신시컴퍼니의 '맘마미아' 오디션에서 딸 소피 역의 대역으로 합격해 서너 번 무대에 섰다. "그래, 버티자, 때가 올 거야."

'때'는 올해 초 왔다. "아이다 오디션장에서 리더를 해줄 수 있겠니?" 아는 언니의 전화였다. '리더(reader)'는 여러 오디션 지원자의 상대역. 대본과 노래를 다 알아야 하니 품은 드는데 빛은 못 본다. "하다 보니 재미가 붙고 지원자에게 조언까지 해주게 됐어요." 끝나고 나가려는데,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부르더니 "한 곡 해보라"고 했다. 이미 익힌 노래였으니, 즉석에서 주욱 뽑았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쯤 지났는데 전화가 왔다. "다시 오라"고. 오디션장에 갔더니 심사위원들이 쳐다봤다. "네가 그 알바야?"

그 '알바', 안시하는 다시 불려간 자리에서 꿈에도 생각지 못한 암네리스 역을 맡게 됐다. "대표님이 '너 됐다'고 하는데도, 꾸벅 인사만 하고 나왔어요. 밖에 나와서야 미친 듯 소리를 질렀죠."

'타고난 암네리스' 정선아와 같은 역을 하는 부담감이 없을 수 없다. "첫 연습 때 선아를 보고 주눅이 들었어요. 아직도 부담감을 다 떨친 건 아니지만, 공연 시작하면 생각 안 나요. 무대에서 저는 안시하가 아니고 암네리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