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에서 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에 사는 정모(43)씨는 최근 아랫집과 자주 다투는 게 고민이다. 열두 살, 열 살인 두 아이가 집에서 쿵쿵거리면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아래층 집주인과 얼굴을 붉힐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정씨는 바닥 보강공사를 하면 층간 소음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인테리어 업체에 문의했다가 깜짝 놀랐다. 바닥을 들어내고 콘크리트나 완충재를 다시 넣으려면 1000만원 가까이 비용이 든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아이들에게 계속 주의를 주면서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살인까지 불러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데 2006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 620여만 가구는 사실상 층간 소음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아파트의 7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2006년 이전에 지은 아파트의 바닥 콘크리트 두께는 요즘 지은 아파트보다 30%쯤 얇은 150㎜ 안팎에 불과한 탓이다. 문제는 층간 소음을 확실히 줄이려면 85㎡ 아파트 기준으로 업계 추산 1000만원 이상이 들어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둥식 아파트 소음 차단 효과적

현재 국내에서 아파트 층간 소음을 줄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아파트의 바닥 콘크리트 두께를 두껍게 하거나 소리를 차단·흡수하는 차음판(遮音板)·완충재 등을 바닥층에 추가하는 것이다. 두꺼운 콘크리트는 발소리처럼 둔탁한 중량(重量)충격음을 막아준다. 완충재는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처럼 딱딱하고 가벼운 경량(輕量)충격음을 흡수한다. 마루 위에 소음 감소 바닥재(장판)를 깔면 경량충격음을 30%까지 줄일 수 있지만 층간 소음의 주범인 중량충격음에는 효과가 작다.

최근 짓는 아파트는 통상 210㎜ 이상 두께의 콘크리트 판 위에 20~30㎜ 두께의 차음판을 깐다. 고무판처럼 생겼지만 고기능성 폴리머 소재를 쓴다. 그 위에 난방시설과 바닥 마감재를 얹고 있다. 대우건설 기술연구원 정진연 박사는 "중량충격음은 콘크리트 바닥 자체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줄일 수 있다"며 "기존 아파트의 층간 소음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새로 짓는 아파트는 층간 소음을 그나마 더 줄일 수 있다. 주상복합 아파트에 주로 적용하는 기둥식 구조〈그래픽 참조〉를 적용하면 된다. 기둥식은 국내 대부분 아파트에 적용하는 벽식 구조보다 차음 효과가 뛰어나다. 벽식은 층간 소음이 벽을 타고 그대로 아래층으로 전달되는 반면 기둥식은 천장에 놓인 보와 기둥으로 소음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토부가 기둥식과 벽식의 층간 소음을 실험한 결과, 기둥식이 벽식보다 1.2배쯤 차단 효과가 높았다. 정부도 새로 짓는 아파트는 기둥식을 권유한다.

◇소음 줄일 수 있지만 비용이 문제

문제는 돈이다. 기둥식은 벽식보다 골조 공사비가 24% 더 든다. 중소형 아파트를 기준으로 골조 공사에만 평균 500만원 정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기둥식은 일종의 수평 기둥인 '보'를 추가로 얹기 때문에 스프링클러나 환기구를 설치하려면 공간이 더 필요하다. 그만큼 아파트 가구 수가 줄어들어 시공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손해다. 2009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 가운데 벽식이 85%이지만 기둥식이 2%에 불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형 건설사 임원은 "주거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원칙은 맞지만 그만큼 분양가격이 올라간다"며 "아파트를 '음향실험실' 수준으로 조용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 주거 품질과 비용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층간 소음을 줄이려면 제도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시립대 김명준 교수는 "리모델링하는 노후 아파트는 층간 소음 차단 공사를 하면 용적률을 높여주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면서 "아파트 분양 당시부터 소비자들이 소음 차단 효과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주택성능등급표시제를 확대 실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2006년 도입된 주택성능등급표시제는 층간 소음 차단 정도에 따라 아파트를 1~4등급으로 구분해 분양 때 공개하는 제도다. 현재는 1000가구 이상 단지에만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