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이의 '원투쓰리포',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 작년 10월부터 이달까지 음원·방송 차트에서 1위에 오른 노래들이다. 많이 내려받고 들었으니 많이 불렀을 거라고 추측한다면 천만의 말씀. 이 기간 노래방 선곡 1위를 굳게 지킨 노래는 '먼지가 되어'다.

TJ미디어 기기가 있는 전국 노래방을 통해 집계하는 가온 노래방 차트에서 작년 11월 첫주부터 3월 첫주까지 18주 연속 1위를 했고, 지난주에야 2위로 내려왔다. 이 노래는 작년 9월 슈퍼스타K에서 로이킴·정준영의 경연곡으로 화제가 됐다. '슈스케' 인기는 이전 시즌만 못했지만, 노래는 계절이 바뀔 동안 장기집권했다. 가온 차트는 "젊은 층 관심이 중년들의 향수를 일으켜 노래방에서 시너지를 낸 것 같다"고 했다.

‘먼지가 되어’를 불러 인기를 얻었던 이윤수·김광석·로이킴(왼쪽부터).

김광석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작사·작곡·편곡자들이 들려준 '먼지가 되어' 뒷얘기엔 가요계 옛 풍경이 스며있다. 만들어진 것은 1976년. 명동 쉘부르에서 노래하던 청년 이대헌(56)은 어느 날 동료 송문상(57)에게 기타를 튕기며 멜로디를 들려줬다. 눈을 반짝이던 송문상은 다음 날 '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생각나네요…'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내밀었다. "여자들이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던 시절, 에둘러 감정을 표현하던 시절이었다. 쓰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땐 정말 감성이 충만했다."(송문상)

11년 뒤인 1987년 이미키 2집을 통해 정식 음반으로 선보였다. 1986년 '이상의 날개'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미키는 당시 젊은 여가수로 보기 드문 기혼. 남편이 작사자이자 프로듀서였던 송문상이다.

그러나 이 노래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몇 년 뒤 젊은 포크 가수 둘이 서로 '먼지가 되어'를 녹음하겠다며 작곡가를 찾았다. 이윤수와 고(故) 김광석이다. "특히 김광석이 콘서트 때마다 부를 정도로 애착을 보였지만, 두 명에게 동시에 허락해줄 순 없었다. 아무래도 형편이 어렵던 윤수가 눈에 밟혔다."(이대헌)

이렇게 1991년 무명의 통기타 가수를 깜짝 스타로 만든 '이윤수 버전'이 나왔다. 팬플루트 사운드를 넣어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으로 편곡한 이는 기타리스트 함춘호(52). "신시사이저로 만들었는데 진짜 팬플루트로 알더라. 유행은 돌고 도나 보다. '먼지가 되어 훨훨 날아가겠다'는 노랫말이 요즘 사람들 심금을 울렸을 수도 있고."(함춘호)

정작 김광석 음반에 실리게 된 것은 1996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발매된 라이브 음반이었다. 이 음반 덕분에 '먼지가 되어=김광석 노래'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이후 럼블피쉬와 김종국이 리메이크했고, 작곡가 이대헌도 2001년 뒤늦게 자신의 앨범에 수록했다. 노랫말을 쓴 송문상은 "요즘 1차원적인 가사에서 찾을 수 없는 비유적 화법과 서정성 때문에 '부르고 싶은 노래'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