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들에게 책은 친근한 소재다. 강애란(53)은 LED로 '빛을 발하는 책'을 만들고, 이지현(48)은 책장을 뜯어내 현대인의 정체성 상실을 보여준다. 황선태(41)는 유리로 읽기 불가능한 책을 만들고, 황용진(58)은 허공에 흩날리는 책을 그려 권위를 무너뜨린다. 책은 또한 '잘 팔리는' 소재다. '다 읽지는 못하니 그림이라도 갖고 싶다'는 지적 현시욕이 '책 그림'의 인기를 높여준다.

서유라의 2012년작‘여행의 기술’.

26일까지 서울 청담동 리나갤러리에서 'Story'전을 여는 임수식(39)·서유라(29)는 사적이고 감성적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는 작가들.

사진가 임수식은 2011년 경남 함양 여행길에 죽염(竹鹽) 만드는 이의 집 책장을 찍었다. 네 칸짜리 앉은뱅이 책장에는 1970년대의 '안나 까레니나', 각종 사전, 시사 뉴스 책이 함께 꽂혀 있었다. 책장 귀퉁이엔 주유소 티슈와 명함이, 책장 위엔 도자기 네 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작품 제목은 '책가도 149'. "옛것을 아끼고, 작은 것도 함부로 다루지 않으면서 엄선한 책들만 고이 모셔둔 집주인의 성품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죠."임수식은 "책장은 또 다른 초상(肖像)"이라 믿는다.

화가 서유라는 "책은 유희(遊戱)의 도구"라 정의한다. 서가에 점잔 빼고 꽂힌 책이 아니라, 책장 밖으로 뛰쳐나와 자유롭게 형태를 만드는 책. 2012년작 'Art Book-Blue'는 서양미술사 개론서, 키스 해링 도록, 미술 관련 철학서 등을 하트 모양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가 그려진 책 표지를 살짝 놓는 식이다. 전남 여수가 고향인 작가에게 책은 어린 시절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빼내 탑을 쌓고, 세워서 도미노게임을 하던 어린 날의 추억이 묻어있다. 작가는 "내게 책은 오래된 기억의 편린이자 삶의 지층"이라고 했다. (02) 544-0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