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앞바다에서 바라본 해운대아이파크 아파트와 호텔 모습.

부산의 초호화 마천루가 소송전에 돌입했다. 소송을 건 쪽은 해운대구 마린시티의 현대아이파크 입주민들. 2007년 분양 당시 전국 최고 분양가 기록을 갈아치운 최고급 아파트다.

소송을 당한 쪽은 아파트에서 20~25m 떨어진 파크하얏트호텔. 프리미엄급인 하얏트호텔 중에서도 최고급을 자랑한다. 호텔 전체를 통유리로 감싸 화려한 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강점이다. 이 호텔은 거실만이 아니라 샤워룸과 화장실을 제외한 대부분 벽을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로 만들었다. 숙박료가 비싼 스위트룸은 침실과 욕실까지 유리벽이다.

이 '강점'이 문제를 일으켰다. 아이파크 아파트 주민 20여명이 "성행위 장면까지 다 보인다"며 집단 소송을 일으킨 것이다. 실제로 어떤 상황인지 양쪽 현장을 가봤다.

속옷 색깔은 아이보리였다

2일 오후 3시 아파트 38층 권모(42)씨의 거실. 권씨가 기자에게 손짓했다. "저기 보세요. 저기, 속옷 차림으로 화장을 하잖아요." 권씨가 가리킨 곳은 파크하얏트의 한 객실이었다. 객실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져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화장대 앞에 앉은 외국인 여성이 보였다. 속옷 색깔은 아이보리였다.

아파트 창가에 있는 식탁에 앉아보니 건너편 호텔 31층에 통유리로 돼 있는 남자 화장실 내부가 또렷이 보였다. 레스토랑이 있는 층이다. 바지 지퍼를 올리는 모습, 손을 씻고 머리 매무시를 가다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크하얏트호텔 쪽도 마찬가지였다. 29층 스위트룸에서 아파트를 보니 설거지하는 모습, 집안 벽에 붙어 있는 액자 그림, 빨래까지 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면서 불을 켜자 아파트 쪽 주민이 하나 둘 창문 커튼을 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동안 무슨 일을 겪었기에 억대 가치를 지닌 '조망권'을 포기하는 것일까.

소파, 침실, 욕실 성행위도 봤다

30층대에 사는 주민은 고3 수험생인 딸이 있다. 지난달 자정이 넘은 시각. 그는 불 켜진 호텔 침실에서 남녀가 격렬하게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곧장 딸이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딸 방에서도 호텔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딸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것은 두 번이다. 두 번째 본 성행위 장소는 침실이 아닌 거실 소파였다.

그는 호텔을 세 차례 찾아가 항의를 했다. 대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말했다.

분노한 그는 맞불로 대응했다. 집 창문에 커다란 문구를 써 붙인 것이다. '바로 눈앞에 호텔방 섹스 금지' '잠자리하는 것 다 보인다' '오줌 싸는 것도 다 보인다' 'No sex in hotel'이라는 영어로 된 현수막도 붙였다. 자신이 만난 호텔 총지배인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여성 마네킹 2개에 붉은색과 자주·보라색 속옷을 입혀 창문 가에 세웠다. 사람이 이렇게 잘 보인다는 것을 호텔 쪽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부산 해운대아이파크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사생활 침해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며 집 창문에 붙여놓은 문구들. 이 주민은 호텔 총지배인이 외국인인 사실을 알고 나서 영어로 된 문구도 붙였다.

아파트를 바라보는 엉큼한 눈길

30층대에서 월세로 사는 여성 주민은 "욕실 성행위 장면도 본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게 (포르노) 비디오지, 다른 게 비디오냐"고 말했다. 그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하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고 있다.

역시 30층대에 사는 한 주민은 "2011년 228㎡(약 69평)짜리 아파트를 계약금 1억1000만원을 주고 계약했으나 살지 않고 비워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탁 트인 부산 앞바다를 볼 수 있어서 샀는데, 성관계 장면만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에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주민은 "'보는 것'보다 불안한 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40층대에 사는 한 주민은 호텔 쪽에서 목격한 한 투숙객의 엉큼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얼마 전 며느리와 젖먹이 손자가 다녀갔다. 며느리가 모유 수유를 하고 있었는데, 건너편에 있는 한 남자 호텔 투숙객이 이 장면을 웃으며 보고 있었다." 그는 "탁 트인 전망을 보려고 집을 샀는데 만날 블라인드 쳐놓고 어두컴컴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하루 자는데, 뭐가 부끄러워?

호텔 투숙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미국 시애틀에서 온 투숙객 머렐씨는 'No sex in hotel!'이라는 문구를 보고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인 스완씨는 "호텔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생활하면 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투숙객은 "하루 이틀 머물다 가기 때문에 투숙객은 아파트 쪽에서 이쪽을 보는 것에 별 신경을 안 쓴다"며 "누가 보든 말든 분위기를 내면서 바다와 마천루 경관을 보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주민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한 주민은 "분양 당시 설계도와는 달리 호텔 측이 객실을 늘리려고 설계를 변경해 호텔을 더 아파트 쪽으로 튀어나오게 지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주민도 "분양 때 현대산업개발이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면서 '호텔 안이 보이는 일은 없다'고 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분양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설계 변경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부 주민에게는 이미 보상을 했다"며 "지금 문제를 제기하는 주민은 설계 변경에 따라 피해를 입지 않는 가구"라고 주장했다.

서울 대치동 파크하얏트는 역시 유리벽이지만 맞은편 글라스타워와 약 60m 거리를 두고 있다. 망원경으로 보지 않으면 상세한 움직임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건물 39~52층에 자리 잡은 도쿄 파크하얏트는 인근에 호텔 내부를 들여다볼 만한 초고층 건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