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6월이면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홍역을 치른다. 지난주도 마찬가지였다. '박(bac)'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이 시험은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작돼 프랑스 교육의 초석으로 꼽혀왔다. 국내에서도 바칼로레아 시험 문제가 뉴스거리가 되곤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점점 이 시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7일 보도했다. 과거 우수 인재를 선발하는 관문이었던 시험이 지금은 약 60만에 이르는 수험생의 10% 정도를 걸러내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쓰는 '통과의례'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 프랑스 교육의 주춧돌이 통과 의례로 전락
"매년 '박'은 우스꽝스러워지고 있다. 올해도 코미디는 반복된다."
수준이 떨어진 바칼로레아 시험을 두고, 프랑스 전 교육부 장관 룩 페리는 이달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 기고문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박은 한때 세계 교육 시스템의 지향점으로 추앙받았다. '박의 꽃'이라 불리는 철학시험은 주체적 시민의식과 건강한 시민사회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박은 오류 투성이 프랑스 시스템의 전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NYT는 박이 "논리와 창의성을 경시한 시험이라고 많은 이들이 비판한다"며 "난해한 지식을 단순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시험으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일부는 난이도가 너무 쉽다고 지적한다. 지난주 파리 콩도르셋 고등학교에서 박을 치른 쥬스틴 리폴은 NYT에 "시험이라기보다는 고등학교 졸업 의식에 가깝다"고 말했다.
박은 1808년 나폴레옹 때 시작된 대입자격 시험이다. 박을 통과하면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특수대학 격인 그랑제콜(grand ecole)을 제외하고 어느 지역,어느 대학이나 지원할 수 있다. 20점 만점에 10점을 넘어야 합격이다.
1808년 처음 시행됐을 때는 31명만 시험을 통과했다. 1945년까지만 해도 박은 뛰어난 소수 인재를 걸러내는 제도였다. 전체 청소년 인구 중 3%만 누리는 특권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합격률은 50%선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70%까지 올랐다. 지원자 수도 크게 늘었다. 올해는 66만4709명이 박을 응시했다. 늘어난 응시생만큼 감독관도 17만명으로 늘었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박을 진행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지난해 8000만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교육자들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치면 20억달러로 늘어난다고 NYT는 전했다.
◆ 응시생 90% 합격하는 시험이 무슨 소용…개선 노력도 무산
지난해 전체 응시생들의 통과율은 90%에 달했다. 시험이 너무 쉬워 고등교육의 상징으로 머무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마리안느의 칼럼니스트 자크 줄리아드는 "학생 80%가 통과할 수 있게 난이도가 맞춰진 시험"이라며 "그 결과 학생 대부분이 대학에 가도 교육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NYT는 "대학 신입생 중 절반도 안 되는 숫자만 2학년에 진학한다"고 전했다.
시험 내용도 너무 난해한 '비의(秘義)' 같은 지식에 치우치면서 실용성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06년 공무원 시험에 17세기 소설 '클레브 공작부인(La princesse de Cleves)'에 대한 문제가 출제된 것을 두고 "사디스트나 멍청이가 이런 문제를 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클레브 공작부인은 인간 심리소설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은 "연애 심리를 다룬 17세기 소설이 공무원 직무 능력과 무슨 상관이냐"라고 지적했다.
시험에 대한 개선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더디다고 NYT는 전했다. 프랑스 의회는 한동안 바칼로레아 평가 기준에 내신성적을 넣으려는 개선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며 현재는 철회한 상태다. 학교 성적을 반영하면 프랑스의 건국 이념인 '평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 학생들은 반발했다. 학교 간 성적을 매기는 기준과 평가자가 다르다는 근거에서다.
프랑스 교원노조는 바칼로레아 시험에 들어가는 돈이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조는 박이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벌 주는 제도가 돼버렸다며, 그 재원을 학생들이 좀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쓰면 더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NYT는 전했다.
입력 2013.06.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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