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巨人)이 움직인다. 큰 놈은 신장이 60m에 육박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의 과잉은 곧장 공포로 이어진다. 거인들은 벽을 부수고 쳐들어와 인간을 잡아먹는다. 때는 서기 845년, 인간은 무력하다.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놈들이 지배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 만화 ‘진격의 거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일본 만화는 인간세계를 잠식해오는 정체불명의 거인족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대결을 그린다. 일본과 국내에서 인기는 엄청나다. 2009년 일본 ‘별책 소년 매거진’ 창간호부터 연재 중인 이 만화는 지난달 일본에서 10권의 단행본 판매 부수가 2000만부를 돌파했다. 한국에서도 총 45만부가 팔려나갔고, 4월부터 케이블 채널 애니플러스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방영 중이다. ‘진격의 거인’ 원작자 이사야마 하지메(27)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만화‘진격의 거인’은 거인의 침공으로부터 시작한다.‘ 갑옷거인’이 50m 높이의 방어벽을 파괴하자 식인거인들이 마을로 몰려들어와 인간을 먹어치운다. 그는 스토리와 그림이 잔인하다는 평에 대해“잔혹한 장면을 잔혹하지 않게 그리는 게 더 문제”라고 받아쳤다.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식인 거인에 의해 위기에 처한 인류의 이야기'라는 기본 시나리오의 흡인력인 것 같다." ―만화를 그리게 된 동기가 있나? "솔직히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어릴 때부터 낙서하는 걸 좋아했다." 그는 현재 체중이 47㎏이다. 위(胃)가 안 좋다. 어려서부터 친구들보다 10㎏ 이상 덜 나가는 약골이었다. 초등학교 땐 매년 등 떠밀려 동네 스모대회에 나갔지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겁도 많았다. 어릴 때부터 강한 자기부정에 시달렸다. ―다른 이들보다 왜소한 체구 때문에 '약자'라고 늘 생각했다고 들었다. 이런 자의식이 만화에 반영됐나? "무리 속에서, 남자애들 속에서 스스로를 열등한 인간이며 실패작이라고 생각해왔다. 동시에 타인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됐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에게 남과 다른 무엇은 '만화'였다. 고교시절부터 만화를 투고했던 그는 도쿄로 올라와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취객에게 멱살을 잡힌 적이 있다. 하지메는 "그때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같은 인간이지만 말이 통하질 않으니 무서웠습니다. 그 공포와 불쾌감이 만화 속 거인에 투영돼 있습니다." 그가 출품한 '진격의 거인'은 2006년 일본 출판사 고단샤 주최 '매거진 그랑프리'에 가작으로 당선됐다. 스무 살 때였다. '진격의 거인'에 대해선 무수한 해석이 난무한다. 특히 주요 배경적 요소인 '벽'에 대해 그렇다. 그는 "벽 너머에 있는 위협과 계급사회의 구조 등은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보편성 높은 테마"라며 "딱히 뭘 상징한다기보다는 사람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틀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메는 "4년째 주인공 '미카사'의 얼굴 작화(作畵)가 안정되질 않는다" "애니메이션이 만화판보다 퀄리티가 100배 높다"며 그림 솜씨에 대해선 스스로를 낮췄다. 그가 만화를 통해 진짜 남기고 싶은 건, 어떤 메시지도 아닌 본인 자신이었다. "만화 전체를 통해 전하고 싶은 건 제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전도유망한 젊은이에게 차기작 콘셉트를 물었다. 의외의 답이 나왔다. "개그(ギャグ)입니다."

[이사야마 하지메]

데뷔작 하나로 스타 작가 꿈은 '수입이 있는 백수'

1986년 8월 29일 일본 오이타현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규슈디자이너학원에서 만화를 공부했고 데뷔작 ‘진격의 거인’으로 스타 작가가 됐다. ‘진격의 거인’은 식인거인과 인간의 대결을 줄거리로 한다. 인간이 쌓은 세 겹의 성을 파괴하고 거인이 들이닥친다. 거인은 오로지 인간만을 먹고, 공격한다. 거인에게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 엘런은 단짝 ‘미카사’, ‘아르민’과 함께 거인에 대한 조사와 공격을 펼치는 ‘조사병단’에 들어가 복수를 준비한다. ‘입체기동장치’를 타고 거인의 뒷목을 칼로 베 죽이다 이후 엘런은 특수한 힘을 통해 거인으로 변신해 싸운다. 만화가 대성공했지만 하지메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꿈은 네오 니트(수입원이 있는 백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