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 2004)' 스틸컷

위 사진에서 임산부에 주목해보자. 이 영화가 저 임산부에게 빨간 상의를 입힌 건 이유가 있다. 임산부는 갑자기 달려든 좀비에 대항하다 왼손 팔뚝이 살짝 물렸는데 그 상처를 감쪽같이 가려야 했기 때문이다. 만삭의 임산부는 이렇게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조만간 좀비가 될 것이다. 예상컨대 뱃속의 아이도 좀비로 태어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이 임산부의 남편, 동시에 곧 태어날 아기의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영화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 2004)' 스틸컷

영화 ‘새벽의 저주(2004)’는 좀비 영화라는 장르를 논할 때 꽤 잘 만들어진 대표작으로 늘 손꼽힌다. 좀비가 창궐하는 아비규환에 대한 묘사가 실감나고, 유머감각도 놓지 않았으며, 오프닝과 클로징 등의 시퀀스는 아주 감각적인 데다가 꽤 파격적이기까지 하는 등 오락영화로서의 여러 요소가 제법 잘 버무려졌다. 무엇보다 ‘새벽의 저주’가 인상적인 것은 그 어떤 좀비영화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재난 상황에서 인간 사이의 갈등, 연민, 증오, 사랑 등의 감정들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감염된 임산부와 남편뿐만 아니라 감염된 아버지와 딸도 등장한다. 이 가족들은 좀비에게 물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이별을 해야 할 판이다. 조만간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아버지는 악의 화신으로 변할 테고 망설임 없이 죽여야 하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 또 있을까.

유사시 사랑하는 이를 처단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좀비물은 그래서 은근히 서글픈 맛이 있다. 잔혹한 비주얼과 좀비에 쫓기는 주인공들의 긴장감이 좀비영화에서는 여전히 ‘메인’인지라, 이 서글픈 정서가 대체로 묻히긴 하지만 말이다.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 2002)' 스틸컷

‘좀비영화의 서글픔’은 여러 영화 곳곳에서 찾아낼 수 있다. ‘28일후’에는 주인공과 함께 여정을 함께 했던 부녀(父女)가 있는데 그 중에 아버지가 결국 좀비로 변하고 곧 죽음을 맞는다. 이 아버지는 분노바이러스로 초토화된 일상 속에서도 긍정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상실의 서글픔은 제법 컸던 것 같다.

후속작 ‘28주 후’에서는 비극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아예 본격적으로 다뤘다. 좀비의 공격을 받던 주인공이 속수무책 아내를 두고 홀로 도망쳐 나와야 했고, 후에 아내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남편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킨다. 악의 화신으로 변한 남편은 겨우 질서를 찾은 도시를 다시 폐허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남매는 무시무시한 좀비로 변한 아버지로부터 계속 도망치느라 혼쭐이 빠진다.

‘28주 후’는 분노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남매를 지켜내기 위한 사투를 그리고 있는 탓에, 철저하게 파괴되어버린 한 가족의 비극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족이 빠져나간 빈 집에서 발견되는 행복했던 한 때를 담은 가족사진을 보다 보면 역시나 기저에 깔린 서글픔이 발견된다.

영화 '28주 후(28 weeks later, 2007)' 스틸컷

좀비영화가 대체로 그렇다. 일단 좀비로 변하면 그에게는 인간성이 제거되고 한때는 사랑하던 사람이었던 이 좀비에게 연민이나 슬픔 따위 느낄 이유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좀비영화의 정체성은 드라마에 있는 게 아니라 공포·호러에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할 틈도 없이 영화는 결말을 향해 숨가쁘게 이미 저만치 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서글픔이야말로 좀비영화를 다른 호러물과 구별되게 하는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준다. 일군의 관객들은 바로 그 독특한 정서가 갖는 매력 때문에 유난히 좀비영화를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 2007)'

마지막으로 영화 하나를 더 언급하고 글을 매조져야 할 것 같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이야기의 초점은 마지막 생존자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 분)에 맞춰져 있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랑하는 여인(그녀는 좀비다)을 구하고자 목숨(좀비에게 목숨이?) 따위 아낄 줄 모르는 순정파 좀비, 이상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떤 ‘변종 인류(新인류?)’의 ‘그’다.

로버트 네빌에게 납치된 연인을 구하고자 수많은 동료 좀비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네빌의 지하 실험실에까지 난입하는 ‘그’의 순애보는 좀비영화 사상 가장 애처롭고 애틋하며 뭉클했던 장면이었을 것이다.

역시 좀비라는 기괴한 대상(對象)은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변화하고 예측 불가능해지니, 점점 매력적일 수밖에. 좀비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은 더욱 더 흥미로운 좀비를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