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이 자신이 낳은 아들과 관련해서 친자확인소송을 냈다. 조용기 목사의 장남 조희준 전 회장이 자신이 낳은 아이의 아빠라고 주장한 것. 불륜, 혼외정사 아들, 이혼, 재결합이 뒤엉킨 희대의 막장드라마가 세상에 공개됐다.

지난해 4.11 총선 양천갑 지역.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우세였던 이 지역에 작은 센세이션이 부는 듯했다. 민주당 차영 전 대변인이 후보로 나왔는데, 결과적으로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지만 예상 밖의 선전을 보여줬다.

이 지역은 13대 총선에서 선거구가 분리된 뒤 새누리당이 한 번도 의석을 내주지 않은 지역이다. 그동안 역대 득표율을 보면 차영 전 대변인이 가장 선전했다.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은 1984년 광주 MBC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1992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후보 미디어컨설턴트를 맡으면서 정치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조순 후보를 도왔고 이어 조순 후보가 당선되자 서울시장 정책비서관으로 활동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김대중 정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 문화관광비서관으로 근무했으며, 청와대를 나온 뒤에는 KT 등지에서 일했다.

2008년 통합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대변인으로 다시 정계에 복귀한 차 전 대변인은 민주당 공동대변인과 민주당 언론특보를 지내면서 화려한 정치생활을 하는 듯했다. 비록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괜찮은 성적표였다.

내 아들은 조용기 목사의 손자, 양육비와 위자료 달라

조용기 목사가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신정동 차 전 대변인의 아파트. 양쪽 모두 이번 소송과 관련한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오른쪽)

이렇게 잘 나가던 차영 대변인이 조희준 국민일보 전 회장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냈다. 본인의 아들이 조희준 전 회장과의 사이에서 태어났고, 결혼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위자료와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소장에 따르면, 두 사람은 차 씨가 대통령비서실 문화관광비서관을 지낼 당시 청와대 만찬에서 만났다. 1987년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둔 차 씨와 이미 세 번째 부인이 있던 조 씨는 불륜관계로 만남을 이어가다 조 씨가 이혼을 종용하며 청혼하자 차 씨는 이혼했다. 이혼 후 조 전 회장과 동거를 시작해 아들을 임신한 차 씨는 조 씨의 권유로 미국에서 2003년 8월 아들을 낳았다.

차 전 대변인의 주장은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들을 출산한 시점으로 "조 씨는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2004년께에는 일방적으로 소식을 끊고 양육비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생계 문제, 아이 양육 문제가 발생해 전남편과 재결합했다고 한다.

"이후 조 씨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10년 가까이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차 씨는 "지난 1월 조 씨가 배임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다음 달인 2월 조 목사와 조 전 회장의 동생인 조민제 회장 등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조 목사 등은 아들이 조 목사의 장손임을 인정하고 양육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전 회장이 지난달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후 조 전 회장과 그 가족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이에 조 전 회장 가족을 신뢰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며 양육비와 위자료를 청구했다. 여기에 "결혼만 하면 호화생활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어겼고, 자신의 이혼으로 인해 큰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을 겪었다"며 개인사를 밝히기도 했다.

아들의 양육과 관련해서는 "조 전 회장은 아들을 한 번도 찾지 않았고 심지어 다른 여성과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살고 있다"며 자신을 친권자 및 양육권자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치 인생, 사실상 끝났다

이번 스캔들은 사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서 공공연하게 떠돌던 이야기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모두가 쉬쉬하는 내용을 스스로 터뜨린 것은, 본인의 정치 인생을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차영 전 대변인의 변호인인 차동언 변호사 역시 정치인으로서 인생은 포기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차 전 대변인은 소송을 결심하기 전인 올 1월 말 민주당 양천갑 지역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가능성 있는 정치인이었던 그녀가 과감하게 물러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 때문이다, 조희준 전 회장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다 등 해석이 분분하다.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의 소송은 재기가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지만, 재기가 불가능한 이유는 또 있다. 그녀는 이번 소송 과정에서 자신의 이혼으로 큰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비극적인 일이 계속되었음에도 조희준 전 회장이 결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과거 인터뷰가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정계에 입문한 이유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딸 때문이라고 밝혔다. 평소 서민·중산층 문제에 관심이 많던 딸의 바람을 정치인이 되어 이뤄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녀는 대놓고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됐다. 소송의 내막을 확인하기 위해 차영 전 대변인의 개인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 신호가 울리고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인사를 나눈 다음 기자의 신분을 밝히고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니, 갑자기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보좌관이 전화를 건네받았다. 그는 소송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니 이해해달라라고 말했다.

양천갑 지역구에 가보니…

차 씨는 이번 소송과 관련한 인터뷰는 일절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녀를 직접 만나보기 위해 서울 신정동 그녀의 집을 찾았다. 당일 자 신문이 한 부 놓여 있는 차 씨의 집은 인기척이 없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묵묵부답. 우편함도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동네 주민은  "기사가 나가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불도 계속 꺼져 있다"면서 온 가족이 함께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변 취재를 하면서 그녀와 관련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는 그녀였지만, 한 가정의 엄마로서 역할은 다소 부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01 10년 넘게 사는 아파트에 얽힌 사연
차 전 대변인은 48평형 아파트에 10년 넘게 살고 있다. 하와이에서 아들을 낳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곳에 왔다고 한다.

양천갑 지역구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니 한곳에 오래 사는 것도 이유겠지만 이 집에는 아픈 가족사가 있다. 심장마비가 아닌 자살로 생을 마감한것으로 알려진 큰딸이 이 집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이 사실을 전해준 상가 주민은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남의 집 아픈 이야기니까 그냥 쉬쉬하는 게 아니겠나"라고 의견을 말했다. 여자로서 아픔이 있을 텐데,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라 이해한다고 전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그렇게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집은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도 매매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딸을 잃은 곳에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이 집에는 차 전 대변인과 남편, 둘째 딸, 아들, 친정어머니 이렇게 다섯이 산다. 그런데 이들은 동네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주민들은 슬픈 가족사를 가져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02 선거 당시에는 친절했다, 하지만…
한 번의 국회의원선거를 치르면서 주민들과 스킨십이 많았던 것 같다. 출간기념회에 초대를 받은 인연을 소개하는 이웃도 있었다. 선거운동 당시 받은 명함을 아직 가지고 있는 주민도 있었다. 양천갑 지역이 아파트가 많은 주택가인데다 한곳에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녀에 관한 정보는 꽤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양천갑 지역에 출마했던 차영 전 대변인.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우세했던 이 지역에서 그녀는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성적. 그런데 주민들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여자들, 특히 엄마들의 표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엄마들 사이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어요. 남자들은 호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글쎄, 너무 세 보인다고 할까요? 선거 끝나고 나서는 특별히 활동하는 것도 없고, 정치인들은 평소에 잘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번 소식을 두고 "그럴 줄 알았다. 부끄럽다"라는 반응이 많은 것이 한 차례의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그녀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03 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들
조희준이 아빠인 것으로 알려진 아들은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다. 아파트에서 10분 거리인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좁은 지역이다보니 학부형들은 그녀의 집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 학부모는 "항상 할머니와 함께 다닌다. 엄마는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이니 아이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특성상 엄마들의 모임이 끈끈한 편인데, 차 대변인은 엄마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늦둥이 아들이니 엄마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도 이유였겠지만, 아이 교육은 주로 친정어머니가 담당했다고 한다. 할머니와 교류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04 선거운동 열심히 도와주던 남편, 과연 몰랐을까?
이번 친자소송을 둘러싸고 가장 화제 속 인물로 떠오른 사람은 차 씨의 남편이다. 아내의 외도로 이혼했다가 다시 전 부인과 산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긴 하다.

남편이 미스터리하다는 사실에는 주민들도 동의했다. 남편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고 밝힌, 익명을 요구한 상인은 "그 사람도 멀끔한 회사에 잘 다니고 있고 돈도 잘 버는 사람인데, 도대체 어떤 심경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재결합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선거할 때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외조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확실친 않지만, 그렇게 아들과 자연스럽게 다닐 정도라면 혹시 혼외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주민의 말이다.

아마 알았다면 선거운동을 하고, 남의 아들을 키우는 것이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공식 결혼은 세 번?  ‘여성 편력’ 오명 붙은 조희준 전 회장

이번 친사소송을 계기로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결혼한만 몇 번을 했다, 탤런트 누구누구와도 만났다고 하더라 등등 '카더라' 식의 루머도 확산되고 있다.

‘여성편력가’라는 오명은 과연 진짜인지, 그에 대한 인물분석을 했다.

유명한 부모 덕에 그의 이름도 제법 알려져 있다. 조 전 회장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와 한세대 김성혜 총장 부부의 3남 중 장남이다. 1984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 같은 해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유학해 맨해튼 음대를 졸업했다.

1997년 32세의 나이로 사장에 취임해 이듬해 회장이 됐다. 조희준 전 회장이 운영하던 넥스트미디어 코퍼레이션은 재단법인 순복음선교회로부터 주식 100%를 사들여 경영권을 장악했고, 1999년 , 등을 창간하고 현대방송을 인수했다. 2000년에는 발행인 겸 회장과 넥스트미디어홀딩스 회장을 지냈다.

복잡한 여성 편력의 소유자?
올해 47세인 조희준 전 회장이 복잡한 여성 편력을 가졌다는 소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 전 회장의 사생활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는데 이번 차영 전 대변인의 친자확인소송으로 그 전모가 드러났다.

조 전 회장의 공식적인 결혼은 세 번이다. 조용기 목사가 며느리 삼을 거라며 소개한 여자의 수는 더 많다고 한다. 그가 교제했거나 결혼까지 한 여성들은 대부분 상당한 미모를 지녔다. 그가 비교적 준수하고 이지적으로 비춰지는 외모와 깔끔한 매너, 개방적인 사고방식으로 여성들에게 쉽게 호감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부친이 조용기 목사라는 화려한 후광과 상당한 재력의 영향도 있다. 언론사 경영 당시에는 '젊고 유능한 언론경영인'이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탤런트, 아나운서, 전문직 해외교포 여성들을 많이 만났다.

그의 첫 결혼 파트너는 1980년대 후반 탤런트 나 모 씨였다. 그러나 딸 하나를 낳은 뒤 1991년 법정소송 끝에 이혼했다. 그 후 재일교포로 알려진 나카무라 유리코 씨와 이듬해 2월 결혼식을 올렸지만 2년 7개월 만에 다시 이혼소송에 휩싸여 패소했다.
2000년 12월, 자회사 직원 장 모 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하지만 12세 연하인 장 씨와 한 결혼도 초기부터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2년 만인 2002년 12월 이혼도장을 찍게 된다.

조 씨는 이 밖에도 2000년 초반 한창 잘나가던 시절 탤런트 여러 명과 잇따라 염문을 뿌렸다.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에 배우들의 이름이 줄줄이 뜬다. 이 중 한두 명과는 실제 결혼까지 고려했으나 집안 반대로 마음을 접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에 도피해 체류 중이던 2005~2007년에 일본에서 한 차례 더 결혼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조 씨의 이 같은 여성 편력은 목회 활동에 헌신한 부친으로부터 사춘기 시절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데서 온 애정 결핍이 원인일 것이란 게 측근들의 이야기다. 실제 조 씨도 사석에서 이를 수차례 토로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차 방문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말을 아꼈다. 교회의 한 직원은 "그는 주일에 교회에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신도들에게도 질타를 받고 있는 조희준 전 회장은 현재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여성조선 9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