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경기도 용인의 한 실버타운. 서울대 보직교수들과 도서관장이 조천식(89·사진) 한국정보통신 전 대표를 찾았다. "1947년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재학 중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시지 못했지만, 인재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이 명예졸업증을 수여합니다." 조 전 대표는 이날 66년 만에 학사 졸업장을 받았다. 1945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 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지만, 1947년 해방 직후의 혼란스러운 정국과 6·25를 겪으면서 학업을 마치지 못했던 그였다.
"저승 갈 때 다 들고 갈 수도 없어 나눠 가진 건데, 뭘 이런 걸 다…." 졸업장 수여를 지켜보던 부인 윤창기(85) 여사가 말했다. 조 대표는 "쑥스럽다"고 했지만 서울대 정식 졸업생이 된 그의 얼굴은 밝았다.
서울대는 이날 조 전 대표에게 지난 4월 서울대 도서관 리모델링에 사용하라며 50억원을 기부한 공로로 명예 학사 졸업증을 수여했다. 명예 학사 졸업증은 서울대생 중 부득이한 사정으로 학부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국가와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66년 만에 명예 졸업을 하게 된 조 전 대표는 '기부왕'이다. 서울대뿐 아니라 지난 2010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155억원을 쾌척했고, 2011년엔 천주교 대전교구에 20여억원을 기탁했다. 그해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그러다가 서울대가 도서관 리모델링 기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다시 돈을 내놨다.
조 전 대표는 한국은행 이사와 은행감독원 부원장, 기업 대표 시절 모은 돈과 퇴직금으로 산 서울 역삼동과 충남 천안의 토지로 기부를 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서울대에 기부할 때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거의 다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조 전 대표의 이번 명예 학사 졸업장 수여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서울대는 밝혔다. 개교 이래 명예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6·25 참전 순국 용사, 4·19 혁명 유공자, 박종철 열사 등 민주화 운동 투신 학생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