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는 뜻대로 조종되지 않았다. 기체 이상이었다. 이대로 추락하나 싶었다. 하지만 조종사는 1시간 10분 동안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민가에 추락하지 않기 위해, 전투기를 살리기 위해 사투(死鬪)를 벌였다. 18전투비행단 이호준(31·학군사관 33기·사진) 대위 얘기다.
공군은 지난달 26일 충북 증평군 도안면 야산에 추락한 F-5E 전투기 사고 원인은 정비 불량이었다면서 "이 대위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큰 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었다"고 18일 밝혔다.
공군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48분쯤 이 대위가 홀로 탑승한 F-5E 전투기는 청주기지 이륙 직후부터 기체가 급상승하며 오른쪽으로 틀어졌다. 이 대위는 기수를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좌우로 선회비행을 시도하는 게 이 대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기수가 계속 들려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청주기지 측은 곧바로 근처에서 비행하던 F-5F 전투기를 출동시켜 추적기 역할을 맡게 해 이 대위를 돕도록 했다.
이 대위는 추적기의 도움을 받아 4차례 비상착륙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남은 방법은 비상탈출밖에 없었지만 이 대위는 곧바로 탈출하지 않았다. 연료를 최대한 소모해 전투기 추락 시 연료 폭발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 대위는 1시간 10여분 동안 30여회를 선회 비행하다 민가가 없는 지역으로 전투기를 조종한 뒤 비상 탈출했다. 전투기는 민가로부터 300여m 떨어진 야산에 추락했다.
이 대위는 본지 인터뷰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전투기가 어디 떨어졌는지 여기저기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며 "혹시나 민가에 떨어졌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이 대위는 지상에 착지하기 전 혼절했다. 조종간을 최대한 당기느라 힘을 다 썼기 때문이다.
이 대위는 "착지할 때 왼쪽 종아리 근육을 다쳤지만 비행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연말쯤엔 다시 조종간을 잡고 싶다"고 했다. 2006년 임관한 이 대위는 2007년 12월부터 F-5 전투기를 조종하고 있다. 공군은 이 대위에게 표창을 주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번 전투기 추락사고는 전투기를 분해 조립하는 정기 검사 과정에서 정비사가 실수로 오른쪽 수평 꼬리날개를 제어하는 연결장치 조립을 잘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공군은 밝혔다.
공군은 정비 작업 관련자와 지휘·감독자를 문책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