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모던 재즈, 즉 비밥(bebop) 재즈 앨범이 35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최근 리마스터링돼 CD로 재발매된 'Jazz: 째즈로 들어본 우리 민요·가요·팝송!'이다. 이 음반은 미8군 무대에서 재즈에 입문한 뒤 이 장르 음악을 이끌어 온 '한국 재즈 1세대' 최초의 녹음이다. 더구나 '아리랑'과 '한오백년' 같은 우리 민요를 불규칙한 리듬과 화성으로 놀랄 만큼 세련되게 해석한 연주가 수록돼 있다. 한국 재즈의 수준이 70년대에 이미 매우 뛰어났음을 입증하는 자료이자, '재즈 1세대'의 위상을 다져주는 발견이다.

음반에는 강대관(트럼펫) 김수열(색소폰) 최세진(드럼) 손수길(피아노) 이수영(베이스)이 참여했고 '한국 재즈의 대부' 이판근이 모든 편곡을 맡았다. 음반을 기획하고 제작한 사람은 한국 재즈의 수수께끼적 인물 엄진이다. 음반사 '포시즌'의 프로듀서였던 그는 자작곡 2곡을 포함시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을 이판근에게 위임해 이 음반을 만들었다.

첫 곡 '아리랑'부터 심상치 않다. 드럼과 피아노가 잘게 깔리고 색소폰이 아리랑의 주제 멜로디를 느리게 풀면, 멀리서 트럼펫이 스멀스멀 높고 푸른 음을 토해낸다. 기약 없이 이어진 검은 굴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이윽고 다섯 멤버들의 즉흥 연주가 펼쳐지는데, 강대관의 트럼펫이 먼저 용틀임을 하면 록에 가까운 최세진의 드럼이 이어받고, 김수열의 테너 색소폰이 구불구불 휘날린다. 이 퀸텟에서 이수영만 유일하게 록밴드 출신인데, 그의 일렉트릭 베이스가 만드는 기계적 리듬이 묘한 풍미를 더한다. 마치 재즈와 사이키델릭 록의 퓨전 같은 느낌이다. 더 놀라운 것은 말로만 듣던 손수길의 피아노다. 19세 때 이미 재즈 무대에 섰던 이 천재 피아니스트의 건반 연주는 한순간도 평범하지 않고 자유롭게 노니는데, 그 음색이 트럼펫의 카랑카랑함과 색소폰의 웅장한 볼륨을 압도한다. 손수길은 이 음반을 끝으로 사실상 재즈를 떠났다. 재즈 뮤지션과 애호가 모두 꼭 들어봐야 할 명반이다.

음반은 재즈평론가 황덕호가 입수해 비트볼레코드가 재발매했다. 마스터테이프가 분실돼 보존 상태가 좋은 LP에서 음원을 추출했으며, 이 음반에 깊은 관심을 표한 일본 엔지니어 마사오 마루야마가 리마스터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