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영 교수는 치매 명의(名醫)로 유명하다. 이 교수는 또한 우리나라의 치매 연구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지난 1월 17일 서울대병원 본관 6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 이 교수는 데스크톱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70대 남자 두 명의 영상이 각각 세 장씩 보였다.
이 교수는 화면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왼쪽에는 MRI 영상, 가운데는 포도당 PET 영상, 오른쪽은 아밀로이드 PET 영상이라고 했다. 두 남자는 MRI상으로 정상 판독을 받았다. 가운데 포도당 PET 사진에서도 두 사람은 육안으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아밀로이드 PET 사진상으로는 딴판이었다. 한 사람은 아밀로이드 PET 사진으로도 정상인 푸른색을 띠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뇌 속이 연두색 빛을 띠었다. 이동영 교수는 연둣빛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핵심 병리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쌓여서 치매로 발전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혈관을 통해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에 달라붙는 물질을 주사하고 뇌 PET를 찍으면 살아 있는 사람의 뇌 속에 쌓여 있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볼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 약 15년 이전부터 뇌 속에서는 이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축적이 시작된다. 지금은 치매가 아니지만 향후 치매로 발병할 소지가 크다. 아밀로이드 PET는 아직은 임상진료에서 쓰이고 있지 않다. 아밀로이드 PET를 사용할 경우 치매 원인진단 정확도를 현재 85~90% 수준에서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수는 진료가 없는 날에는 연구실에서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뇌 사진을 들여다본다. 왜 그럴까? 그는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의 총괄 지휘자다. ‘치매예측을 위한…’은 미래창조부가 올해 새로 시작한 사업이다.
암환자 평균 생존 기간 2년. 그러나 치매환자 평균 생존 기간 12년. 어느 가정에 치매환자가 생기면 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다는 무수한 사례는 도처에 널려 있다.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가족의 비극은 치매 문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노인부부의 최대 걱정은 혹시 치매에 걸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80대 노인 인구의 30%에서 치매증상이 나타난다는 예측을 하기도 한다. 2013년 57만명이던 치매인구는 2024년 100만명을 넘고, 2043년에는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 예방·진단·치료가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치매연구는 지난해까지 10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현재 2단계로 접어들었다. 1단계 프로젝트는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10년간 1000억원이 투입된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 사업단’이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김경진 교수가 이끈 사업단은 정부 최대 연구개발사업으로 뇌연구의 인프라를 확실히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이전까지 우리나라 뇌연구는 대학·병원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 개발사업단’이 10년간 뇌연구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면서 뇌연구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기반을 확실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실례로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 개발사업단’의 묵인희 교수(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의 연구팀은 치매치료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해 국제 특허를 받았다. 서울대 측은 이 특허기술을 벤처기업에 팔았고, 벤처기업이 2010년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에 2억9000만달러에 판매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뇌연구 촉진 2단계 기본계획의 과제는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 서울대 이동영 교수가 총괄책임자로 선정됐고, 서울대·조선대·삼성서울병원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지난해 11월 확정된 이 과제 수행에는 5년간 250억~300억원이 투입된다.
전국의 종합병원에는 치매 전문의사가 많다. 이들은 임상 경험을 토대로 치매치료 및 조기진단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신촌세브란스병원 김어수 교수 같은 이는 보건복지부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다중적 알츠하이머 억제 기전을 갖는 약물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치매예측을 위한 뇌지도 구축 및 치매조기진단방법 확립사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야말로 현재 최전선에서 치매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치매에 걸리면 뇌가 망가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치매예측 뇌지도 구축’은 어떤 부분이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를 대략은 알고 있어도 자세히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알려진 대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1억달러(약 1100억원)을 투자해 정상인의 뇌지도를 만들고 있다. 묵인희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그렇게 돈을 쓸 수 없으니 집중을 해야 한다. 나이 든 분 중에서 정상인(60세 이상)을 대상으로 MRI나 PET 등 뇌 영상을 촬영해 정상 뇌지도를 만든다. 향후 치매 위험이 높은 사람의 뇌가 보이는 특징을 밝혀서 치매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뇌지도를 그려 보자는 것이다.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대규모 연구가 이루어지므로 IRB(임상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IRB 승인하에 60세 이상 연구대상자를 모으게 되는데, 각 대상자 분들은 서면 동의 과정을 거쳐 연구에 참여한다.”
서울대·조선대·삼성서울병원의 공동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뇌 영상 장비(MRI, PET)를 활용하여 한국인 표준 치매예측 뇌지도를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액(혈액, 유전체) 기반 치매 조기진단 바이오 마커(marker)를 발굴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기초·임상·공학이 모인 대표적인 융합연구 분야다.
뇌 영상 장비를 활용하는 연구진은 이동영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PET 연구 책임자), 이건호 조선대 의생명과학과 교수(MRI 연구 책임자)가 이끈다.
체액 기반 치매조기진단 바이오마커를 발굴하는 연구 책임자는 묵인희 서울대 대학원 의과학과 교수(생체표지자 연구 책임자)와 김종원 삼성서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유전체 연구 책임자). 위에서 말한 대로, 이동영 서울대 교수가 총괄책임자이다. 이동영 교수는 서울시광역치매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시범사업 기간으로 예산은 6억5000만원. 본 사업은 7월부터 시작한다. 매년 40억~50억원의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여기서 궁금증은 조선대 교수 2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특별한 배경이 있을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전남 지역의 고령화율은 22%에 이른다. 전국 평균 12%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는 전남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괄책임자인 이동영 교수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이 교수는 “이번 사업은 치매 여부를 정확하게 빨리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뇌는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진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뒤늦게 치료하기 시작하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강조한다.
연구팀은 60세 이상 중 정상인, 치매 고위험군, 치매 환자군을 모집하여 포괄적인 임상평가와 함께 MRI, PET, 혈액검사, 유전자검사 등을 시행하고 매년 추적조사를 벌인다.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은 치매가 아니지만 몇 년 뒤 치매가 오는 사람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지표를 찾을 수 있다. 추적조사를 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치매로 진행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치매로 진행하지 않는다. 이렇게 치매로 진행하는 군(群)과 진행하지 않는 군이 혈액, 유전자, MRI, PET상에서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치매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츠하이머 치매가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가 쌓여서 발병한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일반인의 궁금증은 그렇다면 뇌 속에 쌓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제를 쓰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미 치매가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제의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치매로 진행되기 전의 상태에서 조기진단 혹은 예측진단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묵인희 교수팀은 치매환자와 정상인의 혈액에 기반한 ‘치매 조기진단용 생체표지자 발굴’ 분야를 전담한다.
“환자에게서 혈액을 받아 치매 관련 진단 표지자를 찾는 일이 내 연구 분야다. 뇌 영상은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든다. 혈액검사는 비용이 싸니까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다. 혈액 기반 진단 표지자를 찾게 되면 저렴한 비용으로 보다 쉽게 치매를 조기 진단할 수 있다.”
이건호 교수는 MRI 조선대 의생명과학과 교수이다. 이건호 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60~80대 노인 1000명의 3차원 뇌 영상을 확보했다. 이건호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한 해 1000명씩 늘려 5000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종원 교수의 명함에는 ‘삼성서울병원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아래에 교수·전문의·의학박사라고 인쇄돼 있다. 진단검사의학과 연구실에 앉아 먼저 유전자가 아닌 유전체인 까닭을 물었다. 김종원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의 ‘유전체 연구 책임자’다. 김 교수는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자를 뒤져서 분석 연구하는 게 유전체(體) 연구”라고 말했다. 치매 유전체 연구에 대한 김 교수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치매환자를 치료하고 분석한 결과 치매에도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즉 치매에 걸린 부모를 둔 사람은 치매 발병 가능성이 높았다. 1980년대 말 미국에서 치매 유전자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부모 중 한 명이 치매면 자식도 일부는 치매가 나타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1990년대 초까지 강력한 치매 유전자 4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알츠하이머성 치매환자들은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경우가 소수에 불과했다. 이후 미국 의학계에서 치매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답보 상태를 보였다. 2002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글로벌 공동연구로 인간 유전체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 이후 연구자들은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작은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여러 개가 모여 발병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에 대해 2008년부터 본격 연구를 시작했고, 2010년부터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치매 발병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20~30개가 밝혀졌다. 이 유전자들의 조합이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전체 연구’의 필요성이 생긴다.
"한국인에게서 어떤 유전자가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발견된 유전자를 조사하고 여기에 한국인에게만 있는 새로운 유전자를 찾아 치매환자 조기진단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팀의 임무다."
김종원 교수의 팀에는 연구원이 10명이 있다. 김 교수는 성균관대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진료를 하는 임상의다. 여기에 연구까지 맡고 있다. "환자를 보고 있으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내가 매일 만나는 환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연구하고 노력하게 된다. 때때로 환자가 내 연구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나는 지금 내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며 살고 있다."
이동영·이건호 팀과 묵인희·김종원 팀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처리해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일은 이상웅 조선대 컴퓨터공학부 교수팀이 맡고 있다. 조기진단 통합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은 공대 교수의 몫이다. 통합 솔루션에 데이터를 넣었을 때 치매에 걸릴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것을 예측해낸다.
이종민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수퍼컴퓨터로 뇌 영상을 분석하여 치매 조기진단에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뇌 영상 분석기술 전문가. 이종민 교수는 특정 분야를 책임지는 대신 전체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종민 교수는 강연에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되어 전기화학 처리과정을 통해 정보를 상호교환하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동영 교수는 "겉보기에는 정상인데 뇌 속에서는 이미 병이 시작되고 있는 사람을 조기에 진단하자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치매연구의 진전 속도는 무척 빠르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 교수는 "조심스럽지만 10년 정도 지나면 치매 예방주사를 놓을 수 있는 데까지 진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