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사람들과 대화할 때 '프랑코'와 '내전'은 금기어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지속된 스페인 내전과 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의 사망까지 40여 년의 세월은 부모·형제 간에도 총을 겨누고 싸운 가장 아픈 기억이기 때문이다. 1977년 민주화 당시 스페인 정부는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제안으로 특사법(Amnesty)을 제정, 독재 시절의 정치적 과오를 캐내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이는 지금까지도 지켜지는 스페인의 독특한 과거사 관리 방식이다.
바르셀로나 출신 작가 필라르 에이레의 '프랑코 콘피덴시알(프랑코의 비밀·사진)'은 그래서 독특하다. 한 인간으로서 프랑코의 어린 시절 인격 형성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작년 11월 출시 후 베스트셀러 40위 안의 순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 프랑코에게도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부각시킨다. 프랑코는 걸핏하면 술꾼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고, 여자 같은 목소리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놀림당하는 왕따 소년이었다. 왜소한 체구 때문에 '성냥개비'란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아버지는 툭하면 "아들이 계집애 같고 머리가 나쁘다"며 욕을 했다. 책에서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왜곡된 콤플렉스를 키웠고, 훗날 독재자·폭군 성향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일부 독자들은 "학대받은 어린 시절이 독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동안 금기시됐던 프랑코의 내면을 자세히 조명한 점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작가의 고향 바르셀로나는 프랑코로부터 가장 심한 탄압을 받은 지역이다.
이런 책이 나온 것은 경제위기 후 프랑코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활발해진 스페인 사회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경제가 곤두박질 치자 학자들은 부정부패, 비효율적 관료제, 경직된 노동법 등 스페인 경제의 발목을 잡은 후진적 요인들이 프랑코 시절의 유산이란 분석을 잇따라 내놓았다. 위기의 뿌리를 발본색원하려면 결국 과거사를 들춰낼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었다. 일부 시민단체는 생존 중인 프랑코 잔당들의 처벌을 요구하며 국제앰네스티 또는 제3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정치권과 사법부는 '특사법'을 이유로 과거사 문제에 손대는 데 아직 소극적이다. 이 책이 호평을 받았다고 해도 한동안 프랑코는 '터부(금기)'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