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어가 달라도 문화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미국과 아시아의 문화예술 소통 창구를 더 늘려나갈 겁니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소사이어티(Asia Society) 이사회에 참석한 찰스 록펠러(41·사진) 이사는 "할아버지는 아시아와 미국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미국의 주 파트너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바뀔 것을 예견한 것 같다"고 했다. 록펠러 이사는 미국 근현대사 최대 재벌인 록펠러 가문의 직계 5세손이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1956년 록펠러 이사의 할아버지인 존 D 록펠러 3세가 창립했다.
록펠러 이사는 1980년대 중국 방문 경험을 소개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 즉석에서 건넸더니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어요. 중국어 한마디 못했지만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언어와 문화 장벽을 뛰어넘은 거죠. 아시아의 예술도 미국에서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록펠러 가문은 재벌이 된 후, 사업 확장보다는 공직 진출과 공익사업에 집중했다. 3세인 공화당 넬슨 록펠러 부통령, 록펠러 이사의 부친인 존 제이 록펠러 연방 상원의원, 그리고 윈스롭 록펠러 아칸소 주지사 등이다.
20세기 초 미 석유 산업의 90%를 장악했던 '스탠더드 오일'로 부(富)를 축적한 록펠러는 재산이 10억달러를 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는 2007년 "현재 가치로 1920억달러로 추산된다"며 "미 사상 최고 부자였다"고 했다. 820억달러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두 배가 넘는다. 이후 록펠러 가문은 100년에 걸쳐 20억달러 이상을 사회에 환원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현대미술관 및 링컨센터가 록펠러 가문 작품이고 유엔본부 땅도 기증했다. 록펠러 이사는 "유엔본부가 미국에 남도록 땅을 무상 증여한 것"이라고 했다. 록펠러 가문은 록펠러대학과 시카고대학도 설립했다.
"유명 가문의 자식이라는 중압감은 별로 느끼지 못했어요. 가문의 일원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은 없지만 부모·자식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교육 덕인지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도 아직 없고요." 현재 록펠러 가문은 280명 정도인데, 매년 재단이 '과하지 않은' 연금을 지급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