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10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군사법원 국정감사에서, 성(性)추행을 저질렀던 장교가 성추행 사건 재판장으로 임명되는 등의 군(軍) 사법 시스템 문제를 강도 높게 지적했다.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은 이날 군사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7사단 심 중위 사망 사건 관련 경과 및 재수사 결과 보고' 자료를 근거로 "성추행, 직권 남용, 가혹 행위를 저질러 감찰까지 받은 사람이 성범죄를 재판하는 재판장에 임명됐다"고 밝혔다. 심 중위 사망 사건은 지난 2010년 이모 중령(당시 소령)이 부하 직원이었던 심 중위를 특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사생활을 과도하게 통제하고, 성추행 등의 가혹 행위를 해 피해자가 자살에 이른 사건이다. 당시 감찰부는 이 중령에 대해 "심 중위를 비롯한 여군들을 지속적으로 성희롱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징계 회부를 건의했었다.
그런데 이날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이 중령은 올해 17사단 군사법원의 재판장으로 임명됐다. 그 뒤 이 중령은 재판장으로 10명의 피의자를 재판했는데, 그중 3명은 성범죄자였다. 홍 의원은 "심판관 선정 기준이나 임명 절차가 아무런 원칙도 없이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국감 사전 조사 결과, 이 중령은 2010년 당시 사단장 재량으로 '구두 경고'를 받는 데 그쳤고, 국방부 조사본부가 심 중위 사건 재조사에 들어간 지난 1월, 오히려 17사단 재판관에 임명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이 중령을 재판관에 임명한 인사권자는 부하 여군 성추행 사건으로 10일 구속된 17사단장이었다. 이 중령은 지난 5월 또 다른 여군 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6월 보직 해임됐고, 8월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날 국감에선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과 관련된 비판도 강하게 나왔다. 법사위원장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은 "군 지휘관의 수사·재판 지휘·감독권은 전시(戰時)에만 인정하도록 하고 항명·탈영 등의 순수 군 범죄가 아닌 일반 형사사건은 민간 검찰과 법원에 맡기는 방안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지금 국민들 사이에는 '참으면 윤 일병 되고 화나면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 병장이 된다'는 말이 떠돈다"며 "군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통령께서 '군을 해체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군(軍) 판사가 무더기로 임명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국방부 장관과 각 군 참모총장이 국방부 훈령을 위반해 임명한 자격 미달 군 판사가 전체 군 판사 37명 중 73%에 해당하는 27명이라고 밝혔다. 훈령에 따르면 군 판사는 영관급 이상 장교로 임명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위관급(준위~대위) 장교 27명이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서 의원은 "영관급 군 판사가 전면 배치될 경우 군 사법 분야에 대한 부대 지휘관의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국방부 장관과 각군 참모총장들도 훈령 위반을 방치한 것 아니냐"고 했다. 지휘관이 형량을 줄여주는 '관할관 감경(減輕)권' 제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지난 2010년 9세 장애 어린이를 성폭행한 상병이 '만취(滿醉) 상태에서 범행했다'는 이유로 징역 6년에서 3년으로 감경을 받았다"며 "이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은 감경권 행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