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의정부 화재’ 참사가 난 지 한 달이 흘렀다. 화마(火魔)는 네살배기 승현군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도 앗아갔다. 엄마 나미경(23)씨 품에 안긴 채 구조된 승현군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나씨의 온 몸은 화상으로 검게 그을렸다. 사고 13일 뒤인 지난달 23일 밤, 나씨는 숨졌다. 고아로 자라 미혼모가 됐던 그의 사연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승현군에게 지난 한 달 간 많은 이들이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엄마의 빈 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고 싶었던 걸까. 얼굴 한 번 못 본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건넸다. 11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승현군 돕기 모금’에는 836명이 참여해 5310만5775원(11일 오전 9시 기준)이 모였다.
가장 먼저 나눔의 손을 건넨 이는 인천에 사는 한부모 가정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젊은 엄마는 “나도 승현 엄마와 같은 한부모 엄마인데, 사연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전화를 한다”며 “우리 딸애가 평소 100원, 200원씩 모은 돼지저금통을 기부해도 될까요”라고 물어왔다고 한다. 그는 현재 승현군과 비슷한 또래의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일에도 비슷한 기부가 있었다. 성금현장접수처가 마련된 회룡역을 찾은 30대 아기 엄마는 자신의 아이 이름으로 5만원을 기부했다. 그는 “우리 아이도 승현이와 같은 나이인데, 친구를 위한 기부라는 뜻에서 아이 이름으로 기부한다”고 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기부를 하기도 했다. 이정은(17)양은 자신의 용돈을 건넸고, 딸의 모습이 기특했던 아버지 이성연(48)씨도 돈을 보탰다. 부녀는 총 100만원을 냈다.
최연소 기부자는 의정부시 녹양어린이집 마리반 아이들이었다. 지난 4일, 7살 어린이 22명이 직접 지하철을 타고 회룡역 성금 접수처를 찾았다. 마리반 이주영 담당교사는 “아이들과 친환경 비누를 판매해서 번 수익금 22만원을 냈다”고 했다.
재해구호협회는 승현군이 성인이 돼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모은 돈을 공익신탁 등을 통해 안전하게 관리하기로 했다. 승현군은 지금 경기북부일시아동보호소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경기북부일시아동보호소 김수진 소장은 “사고 이후 낯을 좀 가렸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승현군은 이곳에서 6개월여 동안 지내다, 좋은 입양처를 찾게 되면 입양절차를 밟게 된다. 입양이 되지 않으면 보육원에서 자라게 된다.
김 소장은 “승현군 소식이 알려진 뒤 일주일간은 관심이 너무 뜨거워 보호소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나미경씨 장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부 사람들은 보호소로 전화해 승현군을 입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승현이를 돌보는 입장에서 아이의 장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응원해주시고 지켜봐주시면 승현이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