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표재민 기자] SBS 새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연극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연극이나 영화를 좋아해 다양한 작품을 즐겨보는 이들이라면 알아볼 수 있지만, 안방극장에서는 아무래도 큰 빛을 보지 못했던 이들이다. 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스치듯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해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다. 향후 전개의 강력한 복선을 깔기도 하고 이 드라마가 표방하는 블랙 코미디의 정점을 찍기도 한다. 진짜 감초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배우들이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아줌마’, ‘아내의 자격’, ‘밀회’ 등을 성공시킨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의 신작. 특히 ‘예스터데이’,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밀회’ 등 이름만 대도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를 연출한 안판석 PD는 드라마 연출의 거장.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무겁지 않고 흥미롭게 만드는 세련된 연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안판석 PD의 작품이라면 배우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하겠지만, 정작 안판석 PD는 이름값 높은 배우들보다는 드라마의 촘촘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조연 캐스팅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는 후문이다. 사실 일각에서는 안판석 PD 작품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배우들이 있다는 이유로 ‘안판석 사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이는 다소 오해의 시선일 뿐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하는 주연 배우인 유준상, 유호정, 고아성, 이준은 모두 안판석 PD 작품에 처음으로 출연한다. 다만 간혹 등장해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는 조연 배우들이 안판석 PD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이 배우들은 대부분 연극판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 안판석 PD가 아니라면 사실 이런 기존 배우들과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고 탄탄한 연기까지 갖춘 ‘보석’을 만나기 쉽지 않다. 덕분에 이런 배우들을 만날 수 있어 드라마의 재미가 높아진다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미 방송된 ‘풍문으로 들었소’의 1회와 2회를 보면 안판석 PD가 상당히 고심해서 배우들을 선택한 것을 알 수 있다. 주연 배우 못지 않게 연기를 잘해야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다는 연출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 안판석 PD는 단역으로 캐스팅했다가 연기를 잘하면 다음 작품에서 주조연으로 선택하며, 되도록 많은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안판석 PD 스스로는 ‘나눠먹고 살아야 좋은 배우들이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 누구보다도 배우 발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연출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관계자는 최근 OSEN에 “안판석 감독님이 연기를 잘하는 연극 배우들을 작품에 출연시키는 것은 사실 배우 발굴의 의미가 있다”면서 “직접 발품 팔아서 연극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배우와의 만남을 주선해야 한다는 연출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사단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1부에서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야 하는 고등학생 한인상(이준 분)과 서봄(고아성 분)이 탄 택시의 기사는 방송 후 큰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의 키스를 슬쩍 훔쳐보는 섬세한 연기로 큰 웃음을 선사한 바 있다. 택시 기사 연기를 한 배우는 김종태로 안판석 PD의 전작인 ‘세계의 끝’에서 해경 백경사 역으로 짧게 출연한 바 있다. 이 장면은 짧은 장면이지만 워낙 1부의 중요 지점이어서 유명 배우 카메오까지 고려했지만 연기 내공이 강한 김종태가 선택됐다. 김종태는 자연스러운 생활 밀착형 연기로 시청자들을 크게 웃게 했다.

또한 2회에는 한정호(유준상 분)의 비서이자 경호원인 양재화(길해연 분), 민주영(장소연 분)이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장면이 나온다. 정성주 작가는 두 명의 비서들이 정호 몰래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말을 하면서 정호 가족들을 알게 모르게 조롱하게 만들었다. 이 장면은 일본어를 잘 몰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기가 막힌 웃음 지점이었다. 동시에 상류층인 정호 가족에 대한 통쾌한 일갈이기도 했다.

길해연과 장소연은 각각 ‘아내의 자격’과 ‘하얀 거탑’에서 안판석 PD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두 사람은 전작에서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이번에는 비중이 큰 역할을 맡게 됐다. 안판석 PD가 준 기회에 대한 보답으로 완벽한 캐릭터 분석을 했다. 길해연은 일본어에 능통한 설정을 위해 일본어를 배웠고, 장소연은 경찰대 출신이라는 설정을 위해 유도를 배웠다는 후문이다. 세 사람 뿐 아니라 봄이가 아이를 낳자 정호에게 “축하드립니다”라고 말을 하는 실수를 할 뻔한 박집사(김학선 분), 정호 가족의 보이지 않는 냉대를 안쓰러워하며 봄이를 마치 친엄마처럼 챙기며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했던 정순(김정영 분) 등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이 같은 ‘거장 PD’의 남다른 책임감과 기회를 제공해준 연출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열과 성을 다해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남다른 노력이 만나 ‘풍문으로 들었소’는 큰 이야기 줄기 외에 곁가지로 쑥쑥 등장하는 장면도 신경 쓰며 보게 되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한편 ‘풍문으로 들었소’는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 일류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를 표방한다. 아직 방송 초반이라 시청률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방송 후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를 점령하며, 월화드라마 돌풍의 주역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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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하는 허정도(경태 역), 길해연(양재화 역), 윤복인(김진애 역), 서정연(이선숙 역), 백지원(유신영 역), 김선화(지심 역), 전석찬(서철식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