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북한산 형제봉 부근에서 경찰이 시신을 수습한 뒤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사기 대출과 횡령, 분식 회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이날 오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가 예정돼 있던 성 전 회장의 사망으로 경남기업과 자원개발 비리 의혹 수사가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100만원으로 2조원대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 인물이다. 여러 번 정계 입문을 시도하다 2012년 총선에서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 후보로 충남 서산·태안에서 당선됐지만 작년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성 전 회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퇴하고, 14세 때 단돈 110원을 들고 고향인 충남 서산을 떠나 상경했다. 신문과 약 배달로 모은 종잣돈 1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30대 중반에 대전·충남지역 3위 건설업체인 대아건설을 인수했다. 2003년에는 당시 국내 도급 순위 28위인 경남기업을 인수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성 전 회장은 충청권을 중심으로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고, 그 중심에는 2000년 그가 만든 충청포럼이 있었다. 이 모임에는 충청 출신 정·관계 인사와 언론인들이 많이 참여했다. 1991년 성 전 회장이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은 최근까지 300억원 가까운 기금을 조성해 국내외 학생들을 지원했다. 1000명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40년간 생일·휴일 빼고 매일 각계 인사와 조찬을 함께 한 것으로 유명했다.

성 전 회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자민련 공천을 받으려다 탈락했다. 2004년 총선 때는 자민련 전국구 2번으로 공천을 받았지만 자민련 득표율이 저조해 배지를 못 달았다. 2004년 자민련에 불법 정치자금 16억원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돼 유죄를 받았다. 그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특보단장을 지내는 등 최측근으로 통했다.

이듬해 특별사면을 받았으나 다시 행담도 개발 비리에 연루돼 기소됐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재차 특별사면을 받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선진통일당(옛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선진통일당은 새누리당과 합당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고 2014년 6월 벌금 500만원의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원심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정계를 떠나고 경남기업 경영에 집중했지만 재무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경남기업에 대해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펴낸 저서 '새벽빛'에서 "가난은 나의 재산"이라며 "고생을 해 본 사람이 고생하는 서민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었다.

TV조선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