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중년의 중국 여성이 10대 딸과 함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을 찾았다. SM타운 코엑스 아티움은 SM 소속 가수들과 관련된 물품을 구매하거나 문화상품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 이날 어머니는 딸에게 15세 생일 선물로 '한류 스타 체험'을 선사했다.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전문가에게 화장을 받고 머리를 한 뒤 걸그룹 소녀시대가 방송에서 입고 나온 것과 같은 의상을 입고 사진 촬영을 했다. 이날 찍은 사진으로 80쪽짜리 화보집과 벽에 붙여놓을 수 있는 대형 사진을 만들었다. 7~8시간이 소요되는 이 상품은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비용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들기도 한다. 연예인과 함께 있는 자신의 모습을 3D 프린터를 이용해 조각상으로 만드는 상품도 가격이 최고 62만5000원에 달하는데도 중국인들에게 인기다.

한류 스타가 방송에서 입던 옷을 입고 사진을 찍거나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는 상품을 찾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다.

99만원짜리 헬기 투어 인기

중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저렴한 화장품과 옷 쇼핑에만 열을 올린다는 건 옛말. 요즘엔 돈이 많이 들어도 특이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고급 투어'에 눈을 돌리고 있다.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헬기 투어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관광 상품이다. 30분 동안 잠실-팔당댐-롯데월드-잠실종합운동장을 둘러보는 99만원짜리 팔당댐 코스와 15분간 잠실-여의도 공원-63빌딩-국회의사당을 돌아보는 51만원짜리 여의도 코스를 많이 찾는다. 헬기 1대엔 최대 3명까지 탈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 리제씨는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돈이 아깝지 않더라"고 말했다.

1분 탑승에 3만원이 넘는 서울 상공 헬기 투어 중국인이 즐겨 찾는 ‘럭셔리 투어’ 프로그램이다.

서비스를 처음 시작한 2013년만 해도 중국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중국인 관광객 수가 훌쩍 늘었다.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중국인 6500명이 헬기 투어를 하며 서울을 내려다봤다. 노상호 블루에어라인 이사는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아이돌이 헬기 투어를 하는 모습이 방송에 등장한 이후 '럭셔리 투어'라며 중국인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5만~10만원을 내면 식사를 한 뒤 요트를 타고 강변을 돌아볼 수 있는 한강 요트 투어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관광 상품이다. 요트 관광 업체 서울마리나가 2012년 이 서비스를 시작했을 땐 60명에 그쳤던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400명을 넘겼다.

서영충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중·저가 패키지 상품 대신 원하는 체험과 코스를 직접 결정하는 개별 관광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특별한 경험에 돈을 쓰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 가봤다'가 아닌 '한국에서 무엇을 해봤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 요트 투어 중국인이 즐겨 찾는 ‘럭셔리 투어’ 프로그램이다.

통 큰 쇼핑, 백화점에서 부동산까지

중국인들의 쇼핑은 이제 한국에 관광 왔다가 몇 가지 사 들고 가는 수준이 아니다. 롯데백화점은 이곳에서 연간 500만원 이상 쓰는 외국인들을 위해 지난해 8월 서울 소공동 본점 4층에 외국인 전용 라운지를 열었다. 외국인용이라고 하지만 입구에 빨간 등이 걸려 있고 벽에 복(福)자를 거꾸로 붙여놓는 등 중국 느낌이 물씬 풍긴다. 오용석 롯데백화점 홍보팀장은 "연 500만원, 1000만원 이상 소비하는 외국인 고객은 대부분 중국인이라 아예 라운지를 중국식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연간 구매 금액이 1000만원 넘는 외국인 고객에게 글로벌 VIP 등급을 부여한다. 이 등급을 받은 고객 중 90% 이상이 중국인으로 약 400여명이다. 이 백화점은 중국인 전용 VIP 잡지를 만들어 지난 8일부터 중국 현지에 배포했다. 구동욱 글로벌 마케팅 담당 매니저는 "지난 춘절 때 한 번에 4억원 이상을 쓰고 간 고객도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씀씀이'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를 위한 관광도 있다. 전동준 포스코건설 홍보차장은 "투자 상담을 하기 위해 한국 관광에 나선 사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특히 수도권 아파트를 사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1~2월 '차이나 데이'(China Day) 행사를 열어 중국인 50여명에게 투자 상담을 해줬다. 포스코건설의 인천 송도 더샵 아파트 중 6억5000만원짜리 117㎡(약 35평) 아파트 2채와 8억5000만원짜리 196㎡(약 59평) 아파트 2채가 중국인 소유가 됐다.

고가 웨딩 촬영 위한 관광도 인기

결혼 사진을 찍기 위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도 계속 늘고 있다. '한국 웨딩 촬영'과 연계한 관광 상품은 수백~수천만원에 달하는 고가(高價)임에도 중국인들의 관심이 식지 않고 있다.

웨딩서비스업체 아이웨딩이 한국에서 웨딩 촬영을 해준 중국인 신혼부부는 지난해 641쌍으로 2010년(24쌍)의 약 27배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은 약 12억원. 한상민 아이웨딩 해외사업본부장은 "한류 열풍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의 사진 촬영과 보정 기술이 중국보다 뛰어나 '한국에서 사진을 찍으면 연예인처럼 예쁘게 나온다'고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웨딩 촬영을 위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이 지난해에만 1만쌍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규상 한국관광공사 관광벤처팀장은 "중국에서 50만원 정도인 웨딩 촬영 비용은 한국에 와서 찍을 경우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든다. 여기에 숙박과 관광 비용이 더해지면 수백만원이 추가되는데도 인기다"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 외래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온 외래 관광객의 1인 평균 지출 경비는 1648.2달러(약 179만9000원). 가장 소비를 많이 하는 국가는 중국(평균 2271.9달러, 약 247만9000원)이다. 가장 돈을 적게 쓰는 독일인(969.5달러, 약 105만8000원)의 2.3배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