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인(南人)은 야당을 많이 했다. 노론(老論)은 여당을 주로 해 권세도 있고 돈도 있었지만, 만년 야당이었던 남인들은 벼슬도 못하고 배가 고픈 한사(寒士)였다. 노론이 모란이었다면 남인은 추위 속에서 꽃을 피우는 매화였다고나 할까. 남인도 영남남인(嶺南南人)과 기호남인(畿湖南人)이 있다.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도는 인조반정 이후 대부분이 남인이었다. 노론이 거의 없었으므로 영남은 배는 고팠을지언정 단결은 잘됐다. 기호지역은 노론과 남인이 6대 4로 섞여 있었다.
전라도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가장 돈이 많았던 나주(羅州)가 남인의 본부였고, 나주를 둘러싼 주변 지역이 모두 노론이었다. 기축옥사(己丑獄事·1589)와 무신란(戊申亂·1728)을 거치면서 나주의 남인들은 노론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됐다. 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도 살아남은 기호남인 집안이 해남의 고산 윤선도 집안, 무안(務安)의 무안 박씨(다산·茶山 전문가 박석무도 이 집안)다.
순천의 양천 허씨(陽川 許氏) 집안도 남인 집안의 가풍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부의장과 5선 의원을 지낸 허경만(許京萬), 농림부장관과 학술진흥재단 이사장을 하면서 'HK(human Korea) 교수' 제도를 도입한 허상만(許祥萬), '식객'으로 유명한 만화가 허영만(許英萬)이 이 집안 '만'자 돌림이다. 순천 허상만 집에 놀러가니까 방안에 놓인 '책궤'가 눈에 들어온다. 책궤는 책을 보관하는 궤짝이다. 근래 소목장에게 600만원을 주고 만들었다. 재료는 느티나무인데, 가로 106, 세로 53, 폭 55㎝ 크기다. 돈 궤짝과 비슷한 모양이다. 느티나무는 무늬가 좋아 자꾸만 만져보고 싶다. 책궤 가운데 박힌 검은색 열쇠 모양의 무쇠 장석이 무게감을 더한다. 이 책궤 안에는 기호남인 집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족보와 고서들이 차곡차곡 보관돼 있었다. 장관 시절부터 민속주에 애착을 가졌던 허상만은 요즘 납월홍매(臘月紅梅)라는 민속주 개발에 취미를 붙인 상태다. 납월은 12월이다. 섣달에 피는 홍매는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기호남인의 전통을 상징하는 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