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장과 서울고검장을 지낸 박영수(63) 변호사가 소송 결과에 불만을 품은 6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자는 박 변호사가 맡고 있는 사건의 상대방이었다.
박 변호사는 지난 16일 저녁 9시쯤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 반포동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퇴근하는 길에 문구용 커터 칼을 든 이모(63)씨의 습격을 받았다. 범인은 박 변호사의 얼굴과 목 부위를 칼로 그었다. 상처 부위는 10㎝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두 차례 봉합수술을 받았다. 박 변호사 측 인사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대화도 가능한 상태”라며 “수일 내로 퇴원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9년 자신의 형사사건에서 거짓 증언을 교사(敎唆)한 혐의로 고소한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75)씨의 대리인을 맡았던 박 변호사에게 불만을 품어오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범행 이튿날인 17일 새벽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횡설수설하면서 진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자해(自害)해 박 변호사와 같은 병원 응급실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이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당일, 이씨는 박 변호사 사무실 주위를 맴돌다 저녁에 박 변호사가 퇴근하자 칼을 들고 박 변호사를 위협했다고 한다. 박 변호사가 “말로 하자”며 이씨를 설득해 칼을 내려놓게 했고, 1시간 넘게 이씨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박 변호사가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돌아가라”고 설득하자 이씨는 “내 칼을 돌려달라”고 했고, 함께 있던 박 변호사의 운전기사가 칼을 가지러 자리를 뜬 사이 주머니에 넣어둔 다른 커터 칼을 꺼내 박 변호사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H건설을 운영했던 이씨는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와 2000년대 중반부터 금전 문제로 소송을 벌여왔다. 이씨는 2006년 경기도 오산에서 쇼핑몰과 상가 등을 분양하면서 자금이 부족하자 정씨로부터 수십억원을 빌렸다고 한다. 이후 이씨는 현금 대신 상가로 대신 갚기로 하고 정씨와 ‘빌린 돈과 상가 가치의 차액을 정산한다’는 각서를 작성했는데, 정씨가 차액을 지급하지 않자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정씨는 2008년 분양 대금 횡령, 배임·사기 등의 혐의로 이씨를 고소했다. 구속된 이씨는 2009년 6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피해자들과 합의해 같은 해 9월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석방된 이씨는 정씨를 위증교사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자신의 횡령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 때 정씨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증인들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고소를 당한 정씨는 박 변호사를 선임했고,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그동안 상복(喪服)을 입은 채 검찰청사 앞에서 ‘480억 갈취당한 피해사건을… 고검장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무혐의 처리한 부패한 검찰’이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 변호사 측은 “당시 정씨가 과거 인연이 있던 박 변호사를 찾아와 사건을 맡아달라고 해서 수임했지만 중간부터는 사실상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서울지검 강력부장 시절인 1998년 9월 해외상습 도박과 재산 국외도피 혐의로 정씨를 구속한 인연이 있다. 박 변호사는 서울지검 강력부장, 청와대 사정비서관, 대검 중수부장 등 요직을 두루 지냈으며 2009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