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서 만난 홍콩

2년 전 홍콩영화제에 초청 받은 최동훈 감독은, 홍콩과 마카오를 배경으로 도둑들이 뭔가를 훔치는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파죽지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여전히 달려가고 있는 의 시작은 캐릭터도 스토리도 아닌 ‘공간’이었던 셈이다. 예부터 ‘동양의 진주’로 불리며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 허브 도시가 된 홍콩. ‘동양 속 유럽’으로서 카지노로 유명한 화려한 도시 마카오. 이 두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어쩌면 상업영화감독에겐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일 것이다. 책 한 권 분량의 관광 명소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홍콩과 마카오는, 조금만 공들여도 로케이션의 화려한 비주얼을 얻어갈 수 있는 곳이다.

‘애비뉴 오브 스타스’의 조형물. 많은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곳이다.
해협을 달리는 작은 배. <도둑들>에서 한국 도둑들도 저런 배를 타고 코즈웨이 베이로 접어들었다. 사진 속 배가 향하는 곳은 코즈웨이 베이보다 더 서쪽에 있는 빅토리아 하버Victoria Harbour 지역이다.
점보 레스토랑의 야경. <도둑들>엔 낮에, 그것도 무슨 넓은 회의실 같은 공간(실제로는 레스토랑 3층에 있는 방)을 중심으로 등장해 볼품 없이 느껴지지만, 사실은 매우 화려한 야경을 자랑한다. 도둑들의 만남이라면 밤에 이뤄져야 제격이지만, 아마도 밤엔 영업을 해야 하기에 오전과 낮에 촬영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침사추이 끝에서 본 홍콩 야경. 네이든 로드Nathan Road로, 이 길은 침사추이를 관통하는 번화가다. 왕복 6차선인데, 한국 기준으로 그다지 넓은 길이 아니지만 홍콩에선 이만큼 넓은 길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필자와 사진기자는 이 길에 있는 청킹 맨션Chungking Mansion에 묵었는데, 왕가위 감독 <타락천사>에도 등장하는 그곳은, 건물 안에서도 길을 잃을 만큼 어지럽고 거의 모든 유색 인종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은 이런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트린다. 이 영화가 촬영된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이 영화는, 홍콩과 마카오의 수많은 명소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촬영할 수 있었을까... 물론 한두 군데 정도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을 택하긴 했지만 그럴 때도 마치 그곳을 평범한 곳처럼 보여준다. “관광 영화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최동훈 감독의 ‘결심’ 때문이었을까? 아니, 사실 이 영화의 태생을 생각하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은 “도둑들이 ‘태양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영화이다. 홍콩과 마카오는 배경일 뿐. 그러기에 영화의 절반은 범죄가 이뤄지는 카지노와 호텔을 무대로 한다.

이 아무리 홍콩과 마카오라는 공간의 매력을 억누르고 있다고 해도, 란타우 섬에 있는 홍콩국제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진입해, 왕가위王家衛가 데뷔작 (1989)를 찍었던 몽콕旺角을 지나 홍콩 최고 번화가인 침사추이尖沙咀 지역에 진입하면 이 도시의 거대한 아우라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다. 또 침사추이의 해변이자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본 딴 ‘애비뉴 오브 스타스Avenue of Stars’에서 야경을 즐기며 바로 길 건너에 있는 듯한 홍콩 섬의 마천루를 바라보다 보면, 밤 8시마다 마천루 불빛의 조명들이 연출하는 ‘심포니 오브 라이츠Symphony of Lights’를 바라보다 보면, 잠시나마 별천지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하게 된다.

관광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쇼도 마다하지 않는 곳. 그러면서 수많은 쇼핑가와 음식점과 상점들이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도둑들’처럼 털어가는 곳. 그런데도 그곳을 떠날 때 ‘인상적이었다!’는 감상을 하게 만드는 곳. 바로 홍콩이다.

홍콩 섬의 중심인 센트럴 역 근처를 내려다 본 모습. 카오룽 반도 지역엔 없지만, 홍콩 섬 지역엔 길 위 철로를 따라다니는 이른바 ‘트램tram’이 운행된다. 트램은 2층 버스와 함께 성룡의 액션 영화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유독 황금을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 침사추이 쇼핑가엔 유독 금은방들이 많이 눈에 띄고, ‘3D Gold’는 유명한 쥬얼리 체인점이다. <도둑들>에선 첸(임달화)과 앤드류(오달수)가 대낮에 강도 행각을 벌이는 곳으로 등장한다.
마카오 지역 콜로아네 섬 남부 거의 끝자락에 자리한 하비에르 성당 내부. 드라마 <궁>에도 등장하는 명소다. <도둑들>에선 앞 카페에서 팹시와 예니콜이 한국에서 온 가짜 다이아몬드 소포를 받고, 마카오 박과 팹시가 그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실제로 가 보면 실내가 매우 좁다.
성당을 마주보고 왼편에 있는 응아 팀 카페. 오른쪽에도 음식점이 있지만 촬영은 응아 팀 카페에서 이뤄졌다. 더운 날씨에 촬영과 취재를 마치고, 카페에 앉아 칭타오靑島 맥주를 한잔 했다.
성당 앞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젊은 커플. 약간 어색하고 유치하면서도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분위기는 한국의 야외 웨딩 촬영 분위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성당을 등지고 바라본 풍경. 바닷가 작은 포구가 내다 보인다. 성당 양옆으로 우거진 고목이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하드 록 호텔, 크라운 타워, 하얏트 호텔. 세 개 호텔이 연계되어 이뤄진, 호텔과 카지노의 구성체 ‘시티 오브 드림즈’. <도둑들> 대부분이 촬영된 곳이다. 세 호텔이 연결된 곳에 위치한 카지노와 각 호텔 복도 및 주차장.
촬영이 이뤄진 카지노 입구. 마카오 박은 군대에서 제대한 후 이 문으로 들어가 하룻밤에 80만원으로 88억원을 땄다는 전설을 남긴 인물이다. 영화에선 이 안에서 뽀빠이(이정재)와 마카오 박이 소동을 일으킨다.
리스보아 그랜드 카지노 모습. 각 층마다,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일확천금을 노리며 도박에 열중하고 있다.
카오룽 반도 침사추이 동쪽, 홍함紅&#30945; 지역에 있는 그랜드 하버 카오룽 호텔 옥상에 있는 수영장. 흐린 날씨라 수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영화에선 팹시가 미술관장(신하균)을 대동하고 예니콜을 찾으러 온 곳. 미술관장과 과거에 얽힌 일이 있는 예니콜은 수영장 안에서 나오지 않는데, 투명한 벽을 통해 그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따라 홍콩과 마카오 일주

의 흔적을 찾아 먼저 들른 곳은 마카오였다. 침사추이에서 페리를 타고 한 시간 가량 걸려 도착한 마카오 선착장 근처엔, 수많은 카지노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영화에서 팹시(김혜수)와 예니콜(전지현)이 한국에서 온 가짜 다이아몬드를 받아가는 곳, 바로 하비에르Xavier 성당 앞 카페다.

중국 본토와 연결된 마카오 반도 아래 타이파이氹仔 섬이 있고, 그 아래 콜로아네路环 섬이 있다. 하비에르 성당은 그 콜로아네 섬에서도 거의 끝에 자리잡은 곳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일단 리스보아 그랜드Grand Lisboa(그 앞에 버스 터미널이 있다)로 가는 셔틀 버스를 얻어 탔고, 간 김에 카지노를 둘러봤다. 지하 1층부터 시작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마다 펼쳐지는 카지노들. 그저 놀라웠다.

토요일 낮 하비에르 성당 앞은 한적했다. 영화에서 예니콜 뒤로 웨딩 사진 찍는 커플이 보였는데, 장면 연출을 위한 설정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 그곳은 웨딩 사진의 명소 중 한 곳이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젊은 커플이 한껏 폼을 잡고 있었다. 성당 앞 응아 팀Nga Tim 카페의 카운터 직원에게 작년에 찍었던 영화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물론!”이라며 웃고는, ‘전지현’이라는 이름을 말한다.

1910년에 지은,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가진 후 영화의 주 무대인 카지노와 호텔이 있는 ‘시티 오브 드림즈City of Dreams’로 향했다. 하드 록Hard Rock 호텔과 크라운 타워Crown Tower와 하얏트 호텔Grand Hyatt Macau이 모여 형성된 ‘시티 오브 드림즈’. 세 호텔은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카지노에서 마카오 박(김윤석)은 하룻밤에 80만원으로 88억원을 벌었고, 그 돈을 다 잃으면서 ‘전설(?)’이 되었다.

마카오에서 빠져 나와 점보Jumbo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홍콩 섬의 거의 남쪽 끝인 아버딘 Aberdeen 지역에 있는 점보 레스토랑은, 한국과 홍콩의 도둑들이 처음 만나 기 싸움을 하는 곳. 마카오 박과 팹시의 애증 관계가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홍콩을 대표하는 음식점 중 하나인 이곳은 길가에 있지 않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독특한 입지에 있다.

영화대로라면 한국 도둑들은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홍콩 섬 동북부의 코즈웨이 베이Causeway Bay로 들어와, 섬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남서부 점보 레스토랑에서 현지 도둑들과 합류한 셈. 그리고 배를 타고 마카오로 들어가 다시 배를 타고 홍콩으로 빠져 나와 한국 부산에서 재집결해 마지막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다음 날 낮에 찾은 곳은 홍콩의 하버 그랜드 카오룽Harbour Grand Kowloon이다. 결국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은 예니콜이 묵는 그 호텔은 옥상에 있는 수영장이 유명하다. 옆면이 투명해 풀 안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영화에선 팹시가 예니콜을 만나러가는 곳이기도 한데, 다이아몬드의 최종 소유자가 누구인지 가려지는 엔딩이 드러난다.

여행이라는 것이 결국 낯선 곳을 찾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는 것이라면, 홍콩과 마카오라는 공간을 찾은 여행객은 조금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린 그곳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우리처럼 그곳을 여행 온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손엔 지도를, 한 손엔 카메라들 들고 거리를 누비는 곳. 마치 의 도둑들이 단지 훔치기 위해 그곳을 찾았듯, 우리는 단지 관광을 위해 그곳을 찾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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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VON 2012년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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