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소장 진경환)가 펴낸 '은뢰(恩賴): 조선신궁(朝鮮神宮)에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풍경'(소명출판·작은 사진)은 외관부터 압도한다. 가로 42㎝, 세로 38㎝, 두께 5㎝인 책은 LP 레코드보다 크고, 5㎏에 이르는 무게는 웬만한 운동 기구에 육박한다. 500여 장의 사진과 전문가 해제를 390여 쪽에 담은 책의 가격은 28만원. 공홍 소명출판 편집부장은 "대중적 수요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아서 딱 200부만 찍었다"고 했다.
불편한 판형으로 책을 찍어낸 데는 이유가 있다. 부제(副題)가 일러주듯 이 책은 일제가 서울 남산에 세웠던 조선신궁 건립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1937년 출간했던 사진집을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통문화연구소에서 원래 판형대로 다시 펴낸 것이다. '은혜를 받다'라는 뜻의 제목 '은뢰'에는 '일왕의 은혜가 퍼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일제는 1918년부터 1925년까지 7년간 당시 156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조선신궁을 조성했다. 1935년 조선신궁 건립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신궁봉찬회를 설립하고 대대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이 회장을 맡고, 식산은행장과 총독부 내무국장이 부회장을 맡았다. 그 결과물이 '은뢰'다. 정선태 국민대 교수는 "'은뢰'는 일제의 식민 지배, 특히 정신적·문화적 지배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말했다.
당시는 1931년 만주사변 발발, 1932년 만주국 설립, 1933년 국제연맹 탈퇴 등 일제가 군국주의와 파시즘으로 치닫던 시기다. '은뢰'의 편집진도 "이 책 전체를 통해 우리[일본] 국체를 명징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신사(神社)의 특질을 표명하는 동시에 내선 동근(同根)의 사상을 배양할 수 있도록 했다"는 편집 의도를 책의 후기에 노골적으로 기록했다. '은뢰'에는 조선신궁과 풍광을 찍은 사진 40점을 포함해 일제가 만든 근대 건축물,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에 부합하는 일상 장면, 조선의 명승고적 등 500여 장의 사진이 담겨 있다. 일본의 전통시와 자유시 등 110여 편의 시가(詩歌)도 실려 있다.
전통문화연구소는 국문학·역사학·건축학·조경학·사진학 등 각계 전문가 6명의 해제를 함께 실었다. 김해경 건국대 녹지환경계획학과 교수는 "사진집에서 남산의 조선신궁은 상단에 있고 경성(京城) 일대는 하단에 놓아서 자연스럽게 조선신궁이 남산에서 경복궁을 아래에 두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고 분석했다. 이경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조선시대의 목조 건물과 일제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신구(新舊)의 구조로 대비시켜 일제의 식민통치 치적을 선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처럼 다양한 전공과 시각에서 단일한 사진집을 분석한 것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다. 진경환 소장은 "감정적 호소나 당위적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과거 일제가 이 땅을 지배하고 재편하며 주조(鑄造)했던 양상을 면밀히 이해하고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