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홍정민(32)씨는 스무 살 이후 사용한 옷장 두 개 중 한 개를 지난달 없애버렸다. 가을에 입을 옷과 가방, 스카프 등 서른 가지만 추려서 옷장에 남겼다. 그동안 거의 입지 않았던 것들은 온라인 중고 쇼핑몰에 내놨다. 그는 11월 말까지 3개월 동안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고 이 아이템을 최대한 활용해서 멋을 내기로 했다. 홍씨는 "옷을 정리하다 보니 스웨터 12벌 중 6벌을 지난가을·겨울에 한 번도 안 입었더라. 딱 세 벌만 남기고 다 처분했다"고 했다. 옷장 한 개를 없앤 자리엔 책장을 놨다.

홍씨처럼 옷장 줄이기에 나선 여성들이 늘고 있다. '333운동'은 3개월, 즉 한 계절 동안 33가지의 옷과 신발,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30여개의 아이템으로 꾸려진 옷장을 '캡슐 옷장(Capsule Wardrobe)'이라고 부른다.

3일에 한 번 바뀌는 유행을 거부

캡슐 옷장은 곤도 마리에의 책 '인생이 바뀌는 정리의 마법'이 일본과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알려졌다. '간소화'가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떠오르면서 가장 먼저 정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옷장이었다. 옷장을 줄이는 과정에서 333운동이 일어났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는 '333챌린지'란 제목으로 삼 개월간 서른세 개 아이템으로 살아가는 도전을 기록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왼쪽 첫째 사진에서 흰 셔츠(탱커스) 위에 겉옷으로 걸쳤던 카키색 야상(바나나 리퍼블릭)을 둘째 사진에서는 카디건(스타일난다) 안에 입는 셔츠로 활용했다. 셋째 사진에서 트렌치코트(지컷) 안에 입은 셔츠와 치마(스타일난다)는 각각 첫째와 둘째 사진에 있는 것을 이용해 다른 분위기를 냈다. 333운동을 하면 갖고 있는 옷과 액세서리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법을 궁리하게 된다.

333운동과 캡슐 옷장은 자라, H&M, 포에버 21과 같은 다국적 의류 회사들이 유행시킨 '패스트 패션'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패스트 패션이란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하여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시키는 의류. 이런 의류 회사에서는 3일에 한 번씩 신상품을 저가에 내놓는다. 누구나 밥 한 끼 먹듯 옷 한 벌을 살 수 있고, 옷의 수명도 짧아졌다.

하지만 트렌드를 급하게 쫓아가려는 데서 오는 피로증과 버려지는 옷들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333운동'처럼 대세를 거스르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남편의 유학 때문에 미국에 2년간 거주했던 주부 이지해(35)씨는 한국을 떠날 때 자신과 남편, 아이의 옷가지를 일곱 개의 가방에 나눠서 가져갔다. 미국에 있는 동안 333운동에 동참한 그가 한국에 돌아올 때 갖고 온 가방은 달랑 3개. 그는 "캡슐 옷장을 만들려고 옷장을 정리하면서 아직 가격표도 안 뗀 옷들을 발견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옷장을 보며 반성하게 됐다"고 했다.

기본 아이템으로 한 계절 버티기

333운동과 캡슐 옷장은 과소비에 반기를 들지만, 패션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언팬시(unfancy)'라는 패션 블로그를 운영하는 미국 블로거 캐롤린 렉터는 자신의 333운동을 기록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예. 그는 반팔 티셔츠, 흰 셔츠, 일자 청바지 등 기본 아이템만 갖고 여러 가지 변형을 시도하면서 멋 내는 법을 알려준다.

자신의 333운동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는 한지영(25·대학원생)씨는 "입을 수 있는 옷가지 수를 제한하다 보니 쇼핑할 때 매우 신중해진다. 내가 갖고 있는 옷과 잘 어울릴지, 유행은 타지 않는지, 옷감이 튼튼하고 세탁은 쉬운지 꼼꼼하게 따져보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