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6개월에 걸친 동남아 원정 도박 사건 수사를 매듭지었다.

수사 단초는 올해 4월 마카오 정킷방으로 기업인들을 알선한 충장오비파 김모(42)씨의 휴대전화에서 시작됐다. 이후 검찰은 필리핀, 캄보디아에서 정킷방을 개설한 폭력 조직 간부도 줄줄이 엮었다. 고액 원정 도박판을 개설한 조폭을 ‘일망타진’한 셈이다.

◆ 조폭 잡는 조폭…‘망원’의 숨은 활약

검찰 수사로 원정 도박꾼들의 동남아행 발길은 잦아들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심재철)는 11월 4일 상습 도박 등 혐의로 기업인 12명과 이들을 도박판으로 끌어들인 폭력 조직 간부 9명을 기소했다. 이들 사이를 연결해 준 브로커들도 잡아 들였다.

호텔 카지노 일부를 임대해 운영하는 도박장인 속칭 ‘정킷(junket)방’은 마카오, 필리핀, 캄보디아에서 널리 운영됐다.

범서방파 계열인 광주송정리파와 충장오비파, 방배동파는 마카오에 둥지를 틀었고, 청주 파라다이스파와 양은이파 계열인 학동파는 필리핀에 정킷방을 개설했다. 캄보디아에는 범서방파로 분류되는 영산포파와 영등포파가 진출해 한국 손님을 유치했다.

검찰은 원정도박단들이 사용한 계좌나 장부를 압수하는 작업은 어려웠다. 폭력 조직의 주요 활동 무대가 해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원’(網員)들이 큰 활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원’은 비밀리에 수사 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을 뜻하는 ‘범죄자들의 은어'다.

검찰 수사는 간부급 조폭들을 검거하면서 급진전됐다. 통상 폭력 조직들은 ‘네트워크' 를 연결되어 있다. ‘조직’으로 움직이는 점이 동네 불량배들과 다른 점이다.

조직들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누가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서로 알고 있다. 이런 ‘범죄 네트워크'의 연결에서 중요 역할을 하는 간부급 조폭이 검거됨으로써 마카오 카지노를 중심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단숨에 필리핀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한판에 3억’...가위바위보 같은 회전율

기업인들이 해외 정킷방으로 간 것은 바카라 도박 때문이다. 빠른 회전율과 높은 승률, 그리고 고액의 판돈이 멀쩡한 기업인들을 도박꾼으로 이끌었다.

바카라 도박의 회전율은 이른바 ‘가위바위보’ 수준이다. 손에 쥔 카드 석 장의 끝 자리 숫자 합계에 따라 순식간에 승패가 갈린다.

다른 도박에 비해 상대적으로 카지노에 이길 확률도 높다. 다섯 판을 하면 두 판을 따내는 식이다. 하루 종일 땡겨도 ‘잭팟’이 터질까 말까한 파친코와는 비교할 수 없다.

높은 판돈도 매력적이다. 강원랜드 카지노 최대 베팅액이 한판에 5000만원인 반면, 이번에 적발된 동남아 정킷방 베팅 한도액은 6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돈을 잃기 시작하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정킷방에서는 ‘뒤집기 한방’도 노릴 수 있었다.

이 같은 바카라의 유혹을 못이긴 기업인들은 결국 520억원이 넘는 돈을 대부분 탕진했다. 게임이 거듭될수록 이들은 승리보단 패배 확률이 높게 설계된 도박판의 수렁에 빠졌다.

검찰은 기소된 중견기업인 12명의 도박 혐의액 역시 이들이 도박장에 들고 간 520억여원으로 정했다. 통상 도박 혐의액을 산정하는 기준은 판돈에 투입된 총액으로 계산한다. 한판에 100만원을 걸고 도박 10번을 했을 경우 도박 액수는 1000만원이 된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 기준대로 했을 경우 혐의액이 조 단위에 달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