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잔뜩 걸린 이준석은 내내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래도 말투가 빠르고 논리 정연한 것만은 여전했다. 자부심도 자신감도 많은 서른한 살의 예비 정치인이지만, 그 또래의 여느 젊은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도 했다. 때로 잘난 척하는 것처럼 확신에 찬 말투를 구사했지만 어쩐지 밉지 않은 것은 그가 가진 매력일 거다.

한때 뉴스에서나 볼 수 있던 이준석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이 요즘 TV 예능·시사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중이다. 원더걸스 예은과 교복을 입고 고등학교를 뛰어다니는가 하면(), 개그맨 장동민과 파트너를 이뤄 두뇌게임 서바이벌의 작전을 짠다(). 한 달 전부터는 강용석이 하차한 에 출연해 보수 논객의 역할을 썩 잘 해내고 있다. 이준석이라는 사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조금 달라진 것도 이때부터다. 반짝하고 사라질 줄 알았던 보수계의 ‘젊은 피’는 여전히 뜨겁다. 그동안 우리가 지레짐작한 이준석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 벽을 깬 과학고 1세대

이준석이 하버드대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동시 전공하고 서울과학고를 조기 졸업한 수재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근데 그 시절에는 과학고 학생이 하버드대 학부생으로 가는 경우가 드물었단다. “서울대 못 가 하버드 갔다”는 농담 섞인 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부족함 없이 자랐음에도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대학 4년을 보낸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렇듯 평범한 하버드생의 삶이었다”고 답한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밤새우지 말고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라"라는 말을 했더라고요. 본인 경험을 토대로 한 이야기인가요?
저는 지금 활동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되게 산만한 인간이에요. 그래서 사실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걸 잘 못해요. 남들보단 잘하겠지만 사실 그 경쟁이 너무 싫었거든요. 저한테 세상을 논하라고 하면 논할 수 있겠지만, 고시공부를 하라고 했으면 그 자체를 되게 싫어했을 것 같아요.

초등·중·고등학생 땐 내내 모범생 스타일이었나요?
공부를 잘하긴 했죠. 근데 참 신기한 게,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경쟁은 중학교에서였어요. 저희 학년이 한 학년에 7백20명이었고 제가 17반이었거든요. 그 7백20명끼리 내신을 경쟁하려니까 장난 아니더라고요. 어느 정도였느냐면 암기에 있어서는 더 이상 경쟁할 여력이 없는 거예요.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한 숫자(사소한 것들) 같은 거 외우고 그럴 만큼 치열한 경쟁이었죠. 그래서 과학고에 가서는 그 안에서 경쟁하는 게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과학고 생활은 어땠어요?
지금은 입시제도가 달라졌는데, 그 당시 과학고에 한 학년이 1백40명이었어요. 중간 70명까지는 카이스트를 가고 상위 30~40명 정도는 의대나 서울대를 가요. 지금이야 서울대를 많이 가는데 그때는 비교내신제가 없어서 되게 불리했어요. 제가 1백40명 중에 40등 정도 했거든요? 그럼 30%죠. 근데 일반고 30%랑 동일하게 치니까 (내신상 매우 불리했죠). 제가 방송에서 서울대를 못 가서 하버드 갔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한동안 특목고 내신을 일반고 내신이랑 동일하게 쳐주는 기간이었어서. 뭐, (서울대를) 못 간 거죠.

서울대 진학에 실패했는데 아이로니컬하게도 하버드에 갔네요.
서울대 못 가서 하버드 가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런데 그런 상황이 왔죠.) 원래부터 유학을 목표로 한 것도 아니었어요.

카이스트에 2주 다녔다고 나오는 건 뭐죠?
카이스트는 3월 입학인데 하버드는 4월에 입학 결과가 떠요. 입학 결과 보고 어? 여기 붙었네, 하고 (카이스트에 다니다 하버드로) 간 거지 딱히 카이스트를 다니다 중퇴한 건 아니에요.

원래부터 유학이 목표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럼 언제부터 하버드 유학을 준비한 거예요?
서울대 입시는 경시대회 성적이 있으면 편해요. 그 당시 제도가 그랬어요. 근데 제가 2학년 때까지 경시대회 입상을 안 했어요. 그럼 (저처럼) 조기 졸업한 경우 2학년 1학기 때 카이스트 입시가 끝나 있어요. 그 후로는 아무것도 할 게 없죠. 그래서 한 학기 남는 시간에 뭐 할까 하다가 SAT, 토플을 해보자 한 거예요. 제가 과학고 출신 하버드대 진학 1세대인데요. 그때까지 과학고생들은 유학 간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왜냐면 거긴 외고 출신이 간다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한번은 SAT 시험장에 갔는데 거기가 외고였어요. 한 외고 선생이 저를 보고 "과학고 애들이 유학 준비하는 건 시간낭비 아닌가?"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해에 서울과학고에서 MIT에 4명, 하버드에 2명을 보냈어요. 딴 외고에서 10년 만에 보낼 걸 1년 만에 보내버린 거죠. 굉장히 (외고를) 민망하게 만들었었죠.

그게 어떤 이유로 갑자기 가능해졌죠?
그때까지 서울과학고 선배들의 전례가 어땠냐면, 학사로 서울대에 가서 MIT나 하버드로 유학을 가요. 근데 그분들이 되게 잘해왔던 거예요. 그러니까 (MIT나 하버드에서도) 학부생 뽑을 때 그걸 반영할 수밖에 없는 거죠.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MIT 전자공학박사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서울과학고거든요? 실제로 저 학교 다닐 때 통계가 그랬어요. 해외에서는 (과학고를) 좋아했던 건데 저희는 몰랐던 거죠. 유학에 대해 지레 겁먹고 안 가고 있었는데, 저희 기수가 그 벽을 깬 셈이죠.

SAT 점수는 잘 나왔어요?
그 당시 SAT가 1600점 만점이었는데, 외고 유학반은 다들 1580점, 1600점 그랬어요. 근데 저는 제 기억에 1440점이었거든요. 그걸 보고 외고 유학반 선생들이 뭐라고 하고(점수가 낮다고) 그랬죠.

당시 과학고 출신으로는 흔치 않게 하버드에 합격했는데,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
그 당시 유학 갈 때 받을 수 있는 전액장학금이 몇 개 있었는데, 저는 유학을 일찍부터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전전 연도에 뽑았던 두 재단 장학금에 지원을 안 했어요.(나중에 결국 전액 국비장학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니까 부모님 입장에서는 좋은 학교를 붙었는데 학비가 걱정인 거죠. 아무리 아껴 써도 4년에 거의 2억은 깨지거든요.

아버지가 금융권 고위직에 계셨고 나름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나요?
그래도 2억은 큰돈이잖아요. 그래서 술 마시러 갈 때 저는 못 끼었어요. 컴퓨터 고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보통 학교 끝나고 밤에 일을 하니까, 술 마시러 가자고 하면 못 가게 됐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저를 빼고 모이더라고요.(웃음) 4학년 1학기 때까지는 집에서 한 푼도 안 받아 썼어요.

전액장학금도 받았는데 생활비까지 본인이 다 감당했어요?
받아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속된 말로 해외에서 결제되는 신용카드 하나 가져와서 그걸로 다 긁는 애들이 있는데, 그렇게 쓰기 시작하면 절제가 안 돼요. 그래서 저는 안 받기로 했어요. 4학년 2학기 때 논문 쓴다고 (아르바이트를 못 해서)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한국에서 보내준 돈으로 끊었던 기억은 있어요. 그전까지는 1년에 두 번 미국과 한국 왔다 갔다 하는 비행기값도 제가 다 벌어서 냈죠.

스트레스는 없었나요?
그땐 그게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죠. 대부분의 하버드 학생들은 그렇게 (스스로 벌며) 다녀요. 근로장학생 같은 것도 하고요. 가장 평균적인 하버드생의 삶에 근접하게 학교를 다닌 셈이죠.

해외 유학생활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해외를 다닐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를테면 망상이 없어진다는 것? '다른 나라는 유토피아일 거야'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거든요. 근데 그런 게 없어졌어요. 제가 되게 현실주의자이기도 하고요. 속된 말로 유학 갔다 오는 게 뭐 대단한 신문물을 접하고 오는 것도 아니고요.

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변에 보면 한국에서 안 풀리는 일이 미국 가면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 공부가 잘 안 되는 이유가 한국의 학제가 자유롭지 못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은 그런 차이가 별로 없어요. 그냥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들, 예를 들어 교수와 학생 사이의 소통이 좋아 보인다 뿐이지 실제로 배우는 내용과 방식은 똑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찍 갔다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질문 하나 할게요. 본인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어떻게 공부하는 게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잠시 생각하더니) 학생들에게 뭔가 다른 교육환경을 제공해주겠다고 하면서 부가서비스 형식으로 교육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어요. 토론식 수업이라든지요. 저는 그게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최근에 제가 (예능프로그램 촬영차) 청심국제고를 다녀왔어요. 돈 많은 집 학생들인 것 같아요. 1인당 연간 학비가 1천8백만원이라고 하니까. 근데 그 안에서 제가 받은 느낌은 과학고의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리고 그 학생들이 똑똑한 건 맞는데, 지금 시기를 아주 밀도 있게 보내고 있느냐?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한국의 전통적인 경쟁방식이 아주 불합리하다거나 전근대적인 건 아니거든요? 근데 열린교육이니 참교육이니 자꾸 부가적인 가치를 얹으려고 해요. 아이들에게 놀 시간을 더 늘려준다고 해서 창의력이 생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창의력이라는 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에 뭔가를 더 얹는 과정이기 때문에, 애초에 아는 게 전혀 없다면 창의력이 발생하기 쉽지 않아요. 어쩌면 그 지식을 가장 효율적으로 채워 넣는 게 주입식 교육이거든요. 그 점은 잘 고민해봐야 할 문제 같아요.

 "내 나이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 중"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준석의 출마설이 들려온다. 한 프로그램에서는 노골적으로 노원병 후보 안철수와, 아직 미정이지만 후보로 거론되는 이준석을 두고 여론조사까지 벌이며 박빙이라는 결과를 내보낸다. 정작 당사자는 태풍의 눈 속에서 고민 중이다. 그에게 정치는 초선의원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지금처럼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하 '배나사') 활동을 통해 본인의 교육적 소신을 일구고 퍼뜨리는 것이기도 하니까.

아직 총선 출마를 고민 중이고 1월쯤 결정하겠다고 했던데요.
내가 전업으로 정치해야 되나, 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정치하는 걸 좁은 의미로 해석하면 국회의원이 되고 선출직에 나가는 거겠죠. 제가 그전부터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재밌어하는 게 교육봉사단체 활동을 하는 건데, 그것도 포괄적으로 봤을 땐 정치하는 거예요. 세상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활동을 정치라고 한다면요. 지금 한 사람의 여의도 정치인이 되어 바꿀 수 있는 게 더 많을까, 아니면 그(정치권) 밖에서 바꿀 수 있는 게 더 많을까. 이삼십 대에 국회의원이 돼서 초선의원으로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에서 규모가 꽤 큰 교육봉사단체를 이끄는 것보다 더 많은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에서 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더 사회적 영향력이 있을까, 아니면 초선의원이 돼서 발언하는 게 더 영향력이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려해보고 있어요.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할 때, 저는 제 나이와 직위에서 가능한 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심은 있거든요. 바꾸고 싶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것(영향력을 발휘하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직 답이 안 선 거죠.

하긴 에서 하는 발언들이 더 많은 여파를 만들어낼지도 모르죠.
에서 누구 국회의원 언급하면 저녁에 바로 전화 와요.(웃음)

2011년 새누리당 비대위에 들어올 때 나이가 스물일곱이었어요. 어린 나이에 정치권에 발 디디면서 어린 게 뭘 아느냐는 식으로 훈수 두는 경우가 주변에 비일비재했을 것 같은데요.
우리 사회에서 딱 한 가지 속진을 용납하지 않는 분야가 정치예요. 다른 분야에서는 조기교육, 조기 뭐 그러잖아요. 스포츠 선수도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가 되기도 하고, 문학가도 어린 분들이 등단해서 주목받기도 하고요. 다양한 영역에서 나이가 장벽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됐는데, 정치는 되게 신기해요. 예를 들어 제가 에서 1970년대 박정희시대를 논하잖아요? 그럼 게시판에 '네가 박정희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살아본 것처럼 얘기하는 게 짜증 난다'라는 글이 올라와요.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은 여의도(정치권)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기 때문에 여의도 얘기 하면 안 돼요. 근데 다 하잖아요. 근데 어린 나이의 누군가가 그런 발언을 했을 땐 또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세계적인 추세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 변화의 조류가 언제 한번 불어닥칠지 봐야죠.

본인이 바라고 만들어나가고 싶은 우리나라의 그림은 뭔가요?
2011년에 정치에 한 발짝 들여놓은 뒤로는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 뭘까'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배나사' 활동을 하면서 많이 느끼는 건데, 적어도 교육만큼 공정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 좌우를 막론하고 반대할 사람은 없어요. 학교에 선생을 더 뽑는다고 해서 싫어할 사람은 없죠. 매우 효율적인 도구예요. 근데 경제는 안 그렇거든요. 세금을 더 걷는다, 덜 걷는다 하면 (좌우의) 분쟁이 생겨요.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는 교육으로 풀었을 때 답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배나사' 활동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죠?
제가 보수 쪽 인사니까 수월성 교육(평준화 교육과 대비되는 특수교육)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야말로 수월성 교육의 대표 주자잖아요. 과학고를 나와 하버드를 갔으니까요. 그런데 '배나사'에서 여러 가지 교육적 실험을 해보니까, 수월성 교육은 결국 격리에 가까웠던 거예요. 표면적 취지는 수준에 맞게 가르친다는 건데, (실제로는) 수준에 맞게 격리해놓고 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수월성 교육에 대해 반대해요.

어떤 교육적 실험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동안 우리가 학생들을 격리하면서 '너는 이 문제 어려우니까 안 풀어도 돼'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말이 애들한테는 되게 상처였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배나사')는 아이들에게 어려운 수학 문제 40개를 줘요. 다 풀면 집에 가고 다 못 풀면 집에 못 가는 규칙을 세웠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해요. "너도 이 문제를 풀 수 있고 쟤도 이 문제를 풀 수 있어. 지금은 네가 쟤보다 좀 느릴지 몰라. 근데 그건 조금씩 속도를 높여가면 차이를 좁힐 수 있어. 어쨌든 지금은 너도 쟤도 문제를 풀어야 된다는 건 동일해." 목표치를 평준화해버리니까 굉장히 효과가 좋아요. 아마 제가 교육정책을 펼 상황이 온다면, 지금보다는 학습 요구량을 늘리되 그에 맞게 교원 숫자를 늘린다든지, 이런 식으로 대처해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의외네요. 본인이 수월성 교육의 수혜자인데.
서울과학고가 학교 커리큘럼이 좋아서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냐, 잘하는 애들을 데려다 놓았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냐. 누구와 얘기해도 답은 후자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모아놓아야 그 수준에 맞춰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걸 전 믿지 않아요.

통기타에 재미 붙인 벤처 사업가

이준석은 요즘 틈 날 때마다 통기타를 친다. 아직 주제가만 겨우 치는 수준이라지만 그때만큼은 진정한 여가시간이다. 자잘한 출연까지 10여 개 방송에 출연하는 그가 아무리 바빠도 빼먹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2011년 창업한 벤처기업, 클라세스튜디오로 출근하는 일이다.

방송 안 할 땐 주로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제가 (섭외 요청이) 들어오는 걸 다 하면서도 전업으로 방송하지 못하는 이유가 회사 때문이에요.

아직도 회사를 운영해요?
네. 회사를 하는 이유는 어쨌든 제 본업이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이에요. 이 스킬을 잊지 않는 게 되게 중요해요. 다만 정치하기 전에는 소매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었는데 요즘은 못 하겠어요. 정치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고 그게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서 의뢰받은 일을 개발해주는 일을 해요. 그래서 개인적인 재미는 좀 떨어졌죠.

그래도 전공분야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네요.
저 스스로 느끼기에 제가 가장 효율이 좋은 때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프로그래밍 하고 있을 때인 것 같아요.

여가라고 할 만한 시간은 어떻게 보내요?
작년부터 통기타를 치고 있어요.

음악 좋아해요?
아버지가 되게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많이 접했어요. 집에 가면 CD와 LP가 쌓여 있고 그랬는데, 사실 저는 음악 듣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어폰도 안 꽂고 다녀요. 근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악기를 연주하는 건 재미있어해요. 어릴 때 잠깐 피아노도 쳤고요.

통기타 치면 어쩐지 인간적이게 보이잖아요.
그러게요. 근데 맨날 회사에 앉아서 (주제가) 이런 거 치고 있으니까. 하하하.

지금 부모님하고 같이 사나요?
네. 이태원에서요.

부모님은 방송에 자주 나오고 정치에 관심 많은 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엔 방송 모니터링도 많이 하시고, 포털사이트에서 제 이름을 하루 종일 검색하고 계셨죠.

평범한 부모님들과 다르지 않네요.
이젠 가족들이 (인터넷 악플에) 다 적응을 했어요. 옛날엔 부모님이 댓글 하나에도 반응하셔서 제가 되레 피곤했거든요. 어차피 정치하고 방송하는 사람이 악플과 사는 건 숙명인데. 네이버에서 칭찬받으면 대통령 나가도 된다고 할 정도로 거기서 칭찬받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 생각엔 이제 적응하신 것 같아요.

다른 걱정은 안 하세요? 부모님에게는 마냥 어린 자식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걱정이 되는 게, 오늘도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 제일 위에 오른 게 '이준석 아버지'예요. 항상 그런 식이에요. 제가 방송에 나오고 자주 비치면 저희 아버지가 뭐 하는 분인지 되게 궁금한가 봐요.

누군가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부모가 누군지 꼭 궁금해하죠.
저희 아버지는 노원구 상계동에서 서른에 가정을 꾸리고, 처음에 전세로 시작해서 상계동에 (아파트를) 분양받고 목동에 전세 가고, 뭐 그런 일반적인 분이에요. 근데 뭐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사실을) 얘기해도 안 믿더라고요.

뭔가 수혜 받은 구석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건가요?
그럼 혹시 할아버지 대에 잘살지 않았느냐 그러고. 할아버지는 대구 세무서에서 평생 6급인가 7급 공무원으로 사셨는데. 할아버지 유산 한 푼 받은 적 없어요 진짜. 하하.

이준석 씨도 조언을 구하는 멘토가 있어요?
사람한테 의존하진 않아요. 대신 페이스북을 그런 용도로 써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용도로요?
그렇다기보다 그냥 제 생각을 써요. 보통 정치하는 사람들이 SNS 안 하는 게 자기 의견 밝히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대한민국 정치인 대부분은 자기 의견이 뭔지 대중한테 얘기한 적이 거의 없어요. 저는 어떤 사안이 뜰 때마다 그에 대한 제 생각을 얘기해요. 어떤 때는 (그 생각을 쓴 글을) 캡처한 기사가 나가면서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제 의견에 대해 반박하거나 찬성하는 치열한 토론의 장이 벌어지는 게 재밌고 좋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저한테 '방송할 때 어떻게 그렇게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느냐'라고 묻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서 페이스북으로 한 차례 논쟁을 겪고 나가기 때문에 대충 상대편이 무슨 얘기 할지 알아요.

좋은 경험의 장이네요.
그렇죠. 그리고 저는 특이한 게 뭐냐면, 팬덤이 없어요. 예를 들어 박원순 시장 페이스북에 가보면 거긴 팬덤이에요. 저는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좋아요.

보다 적확한 지적을 해줄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요. 팬덤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으면 누가 약간이라도 반기를 들 때 팬덤이 가서 짓밟아요. 근데 그게 없기 때문에 저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도 와서 자유롭게 얘기하고 가요.

근데 언제나 유익한 토론의 장이 열리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전에 게이 관련 칼럼을 썼다가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악플이 많이 달렸었죠. 말하자면, 쓸데없이 꼬투리 잡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즐겨 쓰는 방법이 있어요. 직설화법을 잘 안 써요.

여지를 남긴다는 건가요?
아니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기보다, 골탕 먹이는 방법을 쓸 때가 가끔 있어요. 역설을 쓰기도 하고요. 하하. 되게 잘 낚여요. 제가 걸러내고 싶은 사람들은 양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일단 이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언어유희를 구사하면 댓글이 안 달려요. 극단에 있는 분들일수록 디테일한 글에 반응하지 않고 욕 같은 자극적인 말이 있어야 반응하거든요. 몇 가지 논리적 장치만 만들어놓으면 저절로 필터링돼요.(웃음)

아까 교육적인 면에서 만들어나가고 싶은 그림이 있다고 했어요. 좀 더 먼 미래를 보았을 때 본인의 목표는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질문할게요.
저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불신하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요. 우리가 학교에 문제가 많다고 학교를 없애거나 줄이는 선택을 하진 않잖아요. 근데 최근의 흐름을 보면 그런 식인 것 같아요. 국회의원들이 일을 안 하니 국회의원 수를 줄여라, 라는 식으로 감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한번 뛰어넘어야죠. 그래서 정치가 생산적일 수 있게 가야지만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근데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 세대별로 분화가 돼 있거든요. 젊은 세대들은 새누리당을 싫어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야당을 싫어해요. 제가 2011~2012년에 등장해서 어쨌든 지금 보수 쪽에서 이름이 많이 나오는 사람이 됐는데, '내가 지금 이걸 해결하기 위해 도전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원래 하고 싶던 재밌고 잘하는 일도 많지만, '이걸(정치적 세대 분화) 한번 극복하는 것도 몇 년 만에 온 기회인가?' 싶어요. 미국만 해도 이렇지 않거든요. 주별로 지지성향이 구분되어 있지, 세대별로 구분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 부분을 극복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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