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비대위는 20일 43명의 비례대표 명단과 순번을 정하려 했다. 그러나 당 주류들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한 비례대표에 반발하며 중앙위 추인을 거부했다. 정청래 의원은 SNS에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 관계자들은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들의 입문 코스였던 야당 비례대표 자리에 운동권이 사라진 것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충돌'의 결과에 따라 20대 국회의 야당 모습이 좌우될 수 있다. 비례 순번이 이대로 확정되면 중도 그룹은 세력화가 가능하지만 운동권 그룹은 크게 축소된다.

◇최초의 비례 5선 나오나

2번을 배정받은 김 대표는 비례대표로만 국회의원을 다섯 번 하는 최초 기록을 세우게 된다. 김 대표는 1번에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를, 6번에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를 배치했다. 최 교수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 박 교수는 2007년 논문 표절 의혹을 받기도 했지만 본지 통화에서 "학교에서 문제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말했다. 1~10번인 A그룹 후보들은 야권에서 생소한 인물들이다. 2012년 총선 때 한명숙 지도부가 주도했던 비례 공천에서는 1번부터 21번까지 사노맹, 전대협, 참여연대 등 운동권 출신이었고, 8번만 군 장성 출신이었다.

2012년 10월 19일엔 빨간 넥타이… 2016년 3월 20일엔 파란 넥타이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진영 의원을 영입해 입당식을 열고 있다(오른쪽 사진). 김 대표와 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가 지금은 야당 인사가 됐다. 왼쪽 사진은 2012년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박 대통령 옆에 서 있는 김 대표와 진 의원.

11~20번을 받게 되는 B그룹에서는 당직자 몫의 송옥주 더민주 홍보국장과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등이 포함됐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입당시킨 이철희 더민주 전략홍보본부장, 이수혁 전 6자 회담 수석대표 등도 B그룹에 들어갔다. 당 안팎에선 15번까지를 당선 안정권으로 보고 있다. 운동권 출신들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C그룹(21~43번)에 많이 몰렸다.

◇심야회의서 "명단 고치면 당 대표 사퇴"

[[키워드 정보] 비례대표제란 어떤 제도인가?]

하지만 '김종인표 비례대표 공천'은 이날 당 중앙위 반대에 부딪혔다. 당초 더민주는 중앙위에서 비대위가 정한 명단을 공개한 뒤 투표에 부쳐 다득표 순으로 순번을 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앙위원들은 회의장에서 고성을 지르며 반발했다. 비대위가 임의대로 3개 그룹으로 나눈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기춘 중앙위원은 "벌써부터 지지자들로부터 '정의당 찍으라는 거냐'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온다"고 말했다. 김종인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왔고, 결국 중앙위 회의는 21일로 미뤄졌다. 당 관계자들은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 2번을 받은 것과 시민단체·운동권 출신의 전멸(全滅)에 대한 당 주류 측 반발이 시작됐다"고 했다. 당 중앙위는 현역 의원, 지역위원장 등 487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고 범친노·운동권이 주류다.

김종인 대표는 이날 밤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일부 비대위원들이 "비례대표 명단을 수정하자"며 중재안을 내자 화를 내고 회의장 밖으로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 관계자는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해 제대로 검증이 안 됐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김 대표는 '이 명단을 고치면 당 대표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한 뒤 나가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충돌의 파문은 확산됐다. 정청래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발표된 비례대표 명단은 감동이 없다. 표 떨어지는 소리에 걱정이 태산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썼다. 공천을 못 받은 김광진 의원도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 2번을 받은 건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며 "최소 이 정도까지는 승리하겠다며 17번을 선언했어야 했다. 어떻게 자신이 셀프로 비례대표 2번으로 공천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한 3선 의원도 "당의 주인이 도대체 누구냐"며 "김 대표가 선거를 무기로 자기 사람들을 대거 영입하는 등 무혈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운동권과 주류들은 21일 중앙위와 관련, "비례 명단을 수정하지 않으면 절대 의결하지 않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주류 관계자는 "중앙위가 비례 순번을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일부 당 관계자들에게 "김 대표는 비례 2번을 충분히 받을만 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