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이란 어떤 질병인가]

정부의 무사안일과 늑장 대처가 '가습기 살균제의 비극'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의료계에선 이미 2006년부터 '이상한 폐렴 환자'가 보고됐다.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2006년 초 급성 폐질환 어린이 환자가 고농도 스테로이드 치료에도 숨지는 데다 비슷한 환자가 늘자 이듬해 말 다른 서울 시내 4개 대형 병원 소아호흡기 담당 교수와 함께 질병관리본부 담당 과장을 만났다. 하지만 당시 참석한 공무원은 "좀 더 두고 보자"는 미온적 결론을 내려 피해를 조기 차단하지 못했다.

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사례 조사 연구'(한국환경보건학회) 자료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2011년 4월 질병본부 측에 "중환자실에 중증 폐렴 임산부 환자가 늘고 있다"며 공식 역학 조사를 촉구했다. 질병본부는 그해 5월 역학조사팀을 꾸려 같은 해 8월 "주범은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1994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개발 이래 2011년 8월 질병본부가 가습기 살균제 판매·소비 자제 권고를 내리기 전까지 17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제대로 된 검사 없이 허술하게 관리됐다. 질병본부 관계자는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는 의약품이나 의약외(外)품이 아닌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자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는 코로 들이마시는 것인데도 제조업체가 안전성을 자체 검증해 기술표준원에 등록만 하면 돼 흡입 독성시험 같은 안전성 입증을 거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12월에야 사후약방문 격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의약외품'으로 분류하고, 흡입 독성시험을 의무화시켰다. 화학물질 관리를 책임진 환경부는 2013년 4월 뒤늦게 폐질환을 부른 가습기 살균제의 원인 물질을 유독물로 지정했다. 피해자 지원도 늦었다. 환경부는 2014년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가 높다고 판정한 168명에게 각각 의료비 및 장례비 명목으로 230여만원을 처음 지급했다. 환경부는 최근 검찰 수사 등으로 논란이 커지자 작년 말까지 받기로 했던 피해 사례 접수를 다음 달부터 재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