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진구, 한효주 등 올해 엔터史에 한 획을 그은 스타들의 빅브라더"
"바람 잘 날 없는 이병헌 옆에 16년, 안 뜨는 진구 옆에 14년, 오직 헌신만이 답!"
"매니저는 연예인보다 훨씬 매력적인 직업"
스타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체로 눈에 안 띄며, 중요한 일을 할수록 눈에 덜 띄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매니저라는 존재가 그렇다.
한물간 록스타 박중훈과 매니저 안성기의 ‘브로맨스'를 그린 영화 ‘라디오 스타'를 보라. 매력적인 스타 옆에 매니저만큼 ‘모냥' 빠지면서(담배 심부름과 커피 수발까지), 동시에 추락한 스타 옆에 매니저만큼 끝까지 헌신하는 유사 가족이 따로 없다.
◆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스타가 되는 꿈을 꾸지만, 매니저는 자기 옆에 선 '이 친구가 스타가 될 거라는' 꿈을 꾸며 산다.
오랫동안 스타들과 더불어 스타들의 매니저들을 상대해온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항시 대기 중인 그들의 인생이 궁금했다. 자기가 맡은 ‘배우'가 자기 자신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 그들과 만나면 사람들은 그들의 안부가 아니라, 스타의 안부를 묻는다.
‘유전자도 신분도 다른' 스타 옆에서 자존감의 혼동 없이 자리를 지킨다는 건 쉽지 않다. 나날이 예뻐지고 젊어지는 스타 뒤에서 곱절로 낡고 늙어버린 얼굴로 서있는가하면, 어느 날은 스타가 받는 대우를 여우처럼 공유해 나날이 돈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모든 직업군이 그렇겠지만, 인성도 가지가지다. 어떤 이는 스타의 히스테리와 변덕에 시달려 주변 사람들에게 분풀이하듯 열등감을 썩은 이빨처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신인들 위에 군림하는 자세로 위태롭게 자기 위세를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대체로 매니저라는 직업군은 스타를 보호하기 위해 센스 있는 완충재 역할을 한다. 스타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때나 땅 끝으로 꺼질 때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함께 롤러코스터를 탄다.
◆ 스타 옆의 품위 있는 그림자, 스타 위의 지혜로운 설계자
손석우(43세)를 소개한다. 지금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핫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이병헌, 진구, 한효주가 소속된 BH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단발적으로 소비되는 문화 상품이 아니라,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일으키는 대중문화 산업으로 재편되던 시기에 손석우는 이병헌과 손을 잡고(혹은 이병헌은 손석우와 손을 잡고), BH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BH는 2006년에 설립되어 5월이면 만 10년을 맞는다. 한때 고수, 한채영, 김민희, 안소희 등이 있었고, 현재는 한가인, 한지민, 배수빈, 장영남 등을 비롯해 10여명의 배우들이 활동한다.
연예 기획사들의 잇따른 거품 상장과 파산, 일본 한류에 이은 중국 한류라는 더 큰 기회의 물결에 올라타기까지 손석우가 만들어온 매니지먼트 히스토리는 보편적이면서도 흥미롭다.
2세대 엔터 비지니스맨인 손석우는 무엇보다 ‘국가대표' 배우이면서도 늘 뜨거운 감자였던 이병헌 옆을 16년간 지켰다. 할리우드로 진출해서 ‘쫄쫄이 슈트' 입고 외로운 싸움을 할 때나, 철없는 스캔들로 전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을 때나, 그리고 다시 아카데미 레드 카펫을 밟으며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설 때나, 이병헌 곁에는 손석우라는 어마어마한 ‘뒷배'가 있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뜬 듬직한 ‘서 상사' 진구 옆에도 1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다. 여성 화자가 전무한 ‘스크린 마초 시대'에 지난해 ‘뷰티 인사이드'에 이어 올해 ‘해어화'로 유일하게 여주인공 목소리를 내는 한효주도 손석우의 작품.
오랫동안 그를 보아왔지만, 갈등이 산불처럼 번질 상황에도, 그가 나타나면 깨끗하게 상황 정리가 됐다. 큰 소리 나는 법 없이 예의를 지켰고, 허튼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며, 협상과 결정이 빨랐다.
바야흐로 스타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식되는 대중문화 전성시대! 스타 옆의 품위 있는 그림자이고, 스타 위의 지혜로운 설계자이며, 무엇보다 미로 같은 엔터 산업 지도에 눈 밝은 비지니스맨, 손석우를 만났다.
-매니저가 필요해 보이네요.
“맞아요. 매니저 필요해요…(웃음) 휴대전화 2개에 하루에 배터리가 3개씩 닳죠.”
-‘내부자들'로 다시 탄력이 붙은 이병헌의 아카데미 초대에 이어 ‘태양의 후예'로 날아오른 진구, ‘해어화'로 활짝 핀 한효주까지... 여느 때보다 BH 소속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좋은 일로 정신이 없어요(웃음). 한동안 기다림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은 제 기분도 좋지만, 배우들이 좋아하니까 더 좋아요. 회사가 미생물은 아니지만, 사람이 콘텐츠다 보니, 스스로 자가 성장을 해요. 5월이면 BH가 생긴 지 10년, 120개월이 되는데, 한 달도 편히 보낸 날이 없었거든요. 드라마가 따로 없지요(웃음).”
-BH 엔터테인먼트의 BH는 병헌의 약자로 알고 있어요. 지금 BH는 누구의 회사입니까?
“저와 이병헌이 지분을 공동 투자한 회사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배우들의 회사지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모두의 공유물이라는 생각이 강해요.”
-기업 공개와 상장 계획은 없습니까?
“중화권 회사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궤도까지 아직 오지 않았어요. 작년, 재작년 힘든 시간을 겪었으니 전열을 가다듬고 내일을 기약해야 할 타이밍이죠.”
-매니지먼트는 배우가 자원입니다. 그들이 들고 남에 따라 주가가 흔들리기도 하지요. 배우와 매니지먼트가 오랜 시간 함께 가거나 반대로 등을 돌리는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나요?
“배우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관심과 사랑이에요.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는가? 관심을 갖고 있는가? 여느 회사원들처럼 배우들도 똑같아요(웃음). ‘관심과 애정'에서 멀어졌다고 느끼면 배우는 이탈하죠. 매니지먼트는 콘텐츠가 곧 사람이기 때문에, 희로애락의 진폭이 커요. 배우들은 기쁨이나 상처도 깊이 느낍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역사의 흥망성쇠에 따라 매니지먼트의 양태도 많이 달라졌어요. 영화계에 금융 자본이 들어왔던 시점에, 연예 기획사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같이 흘러들어왔던 거로 압니다. 일명 1차 버블 시기에 대해 말해 주세요.
“저는 백기획에서 시작했는데, 1999년 즈음부터 1~2년 동안 연예기획사에 상장 바람이 강하게 불었어요. IMF 이후 경기가 좋아졌고, 영화계에도 ‘눈먼’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지요. 2000년대 초에 에이스타즈, 아이스타즈, 사이더스 등 많은 회사가 출범했어요.
하지만 당시 경영 시스템이 없는 작은 규모의 산업에 큰 자본이 들어오면서 폐해도 많았어요. 촌지, 로비 등의 구습이 그대로 남은 상태에서 돈이 많아지니 여기저기서 사건이 터졌습니다. PD 로비 사건, 배임 횡령 비리 사건 등등이요.
어쨌거나 당시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벌어지는 그 부조리를 다 본 게 저한테 큰 재산이 됐어요. 지금 매니지먼트 대표들이 75년생들이 많은데, 2000년대 초에 팀장급으로 있으면서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반면교사로 배운 후 독립했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도 2000년대 초반과 후반의 매니지먼트 판도는 확실히 달라졌어요. 이전 세대가 주먹구구식의 나이브한 경영이었다면, 후반부터는 굉장히 투명하고 스마트해졌어요. 하지만 그 중간에 엔터 비즈니스업계는 ‘팬텀(여배우 신은경의 남편 김정수가 대표였다)'이라는 엄청난 진통을 겪었지 않습니까?
손석우 대표도 이병헌 씨와 함께 '플레이어'가 '팬텀'에 합병되면서 잠깐 몸담았었던 걸로 아는데요.
'팬텀'이나 '디초콜렛' 등의 거대 매니지먼트 회사가 소속 연예인 이름을 팔아 주가를 높이고 사기를 친 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건전하지 못한 회사 구조에서 ‘거품’ 상장이 되면서 팬텀 같은 일부 회사가 파란을 일으켰지요.”
-그 사건이 이병헌 씨와 함께 BH 엔터테인먼트를 만든 계기가 되었나요?
“그렇습니다. 그 이후에 생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경영자들은 그 시절 경험으로 아주 깨끗해요. 상장에도 신중한 편이에요.”
-2000년대 초에 일본에서 터진 1차 한류 붐이 엔터 산업계에 미친 영향도 대단하다고 보는데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죠.
“초기에 상장한 엔터 기업들이 역량과는 상관없이 ‘도박성’이 다분했는데, 어쨌거나 일본에서 한류가 크게 터지면서 부피가 더 커졌어요. ‘Made in Korea’ 상표만 붙으면 드라마 20편 한 세트에 일본에서 수십억에 거래가 됐죠. 품질에 상관없이요. 국내에서 흥행에 실패한 이병헌, 수애 주연의 ‘그해 여름’이라는 영화도 일본에 40억에 팔렸어요.”
-기억납니다. 벌써 10년 전인데, 당시에 강남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송승헌, 권상우, 최지우를 촬영하고 있으면, 일본 기자들과 팬들이 들이닥치고는 했어요. 그야말로 유명한 한류 배우 써서 뭐든 만들기만 하면 대박이 나던 시절이었지요.
“그랬어요. 매니지먼트들은 돈이 되니까 몇몇 남자 한류 배우 패키징해서 완성도 떨어지는 드라마를 뚝딱 만들어내고, 바이어들은 담합해서 가격을 올리고... 그렇게 점점 콘텐츠가 후져지면서, 한류가 1/10로 확 줄어들었어요. 당시엔 드라마 ‘태양의 후예'나 영화 ‘광해' 같은 제대로 된 콘텐츠가 아니었거든요.”
-2000년엔 일본에서 들어온 돈으로 1차 한류, 2010년도부터는 중국에서 들어온 돈으로 2차 한류를 만들어 내는 셈입니다. 어쨌든 엔터 시장으로 해외 금융 자본이 들어오면서 콘텐츠 제작 환경이 확연히 좋아진 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해외 시장 의존도는 커질 수밖에 없어요 3백억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면, 천만 관객이 들어야 기본 BP를 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이고, 천만 관객 들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류는 필연적인 흐름인 거죠. ”
-일본에서 한류의 물결이 막혔던 지난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결국은 ‘콘텐츠의 질’이 승부수겠군요. 한류의 서막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치열한 콘텐츠 전쟁이 시작됐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나요?
“중화권은 지금 굉장히 까칠해요. 사전 제작 요구부터 심의 강화, OST 가사 검열 까지, 어떻게든 한류 진출을 막을만한 규제를 만들어 내요. 송중기에 대한 경계령까지 내린 상황이에요. 아줌마들의 이성관을 흐려 가족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어쨌든 지금 엔터 산업은 당분간은 중국의 어마어마한 자본에 올라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렇게 된 바에는 빨리 ‘시드 머니'에 올라타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지요.”
-엔터 업계의 1차 목표는 돈인가요?
“돈만 가지고는 안 되죠. 영향력 있는 인적 자원이 뻗어 나가서 한국에 유리한 위치를 빨리 잡아야 해요.”
-이병헌 씨는 올해 한류보다는 ‘할류(할리우드 흐름에 올라탐)’로 대중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 줬지요. 16년을 함께 한 파트너로 그동안 가슴 졸일 일도, 가슴 터질 만큼 감개무량한 일도 많았지요?
“그는 프로 중의 프로예요. 이병헌 데뷔 25년 중 16년을 함께 했죠. 연예인은 올라가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유지하는 게 어려운 건데, 주인공으로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서로에게 동생, 형, 아들,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웃음).”
-2007년 경이었던가요? 연예계가 일본에서 분 한류 바람에 심취해 있을 때, 이병헌이 할리우드 시장으로 간 이유가 궁금해요. ‘지 아이 조' 촬영하다 와서 만났을 때는 ‘이게 맞나?’ 하면서 우울해 하긴 했지만…(웃음),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할리우드행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나요? 박찬욱, 김지운 감독 이야기만 들어봐도 할리우드 시스템이 상당히 까다로워 자괴감과 함께 문화적 충격이 상당하던데요.
“이병헌 씨는 일단 두려움이 없고, 미국 시장에서는 ‘잃을 게 없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아시아 액션 배우로 우스꽝스럽게 소비되지는 않을까, 잠시 우울해 했지만 잘 버텨냈어요. 아카데미 영화제에도 초대되고, 율 브리너 출연작을 리메이크한 명작 ‘황야의 7인’ 같은 작품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요.”
-이병헌 씨는 송혜교와 함께한 드라마 ‘올인'이나 첩보 블록버스터 ‘아이리스' 등으로 대중적으로 소통도 잘 된 편이었는데, 그렇게 잘 나갈 때 척박한 환경에 몸을 던지는 도전 정신이 참 대단합니다.
“그게 이병헌 씨에게 저도 놀라는 지점이에요(웃음). 그리고 점점 배워나가는 게 있어요. ‘미스 컨덕트'는 알 파치노와 한 신이라도 같이 연기하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흥행이 잘 안 됐죠. 이제 한국 관객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유명 배우와 출연했다는 단순 가십에 혹하지 않고, 이병헌이 그 영화에서 뭘 하나를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경험은 어땠나요?
“영화인들을 향한 할리우드 사람들의 ‘리스펙트’에 감동했어요. 이병헌 씨는 역시나 표정은 엄청 얼어 있었지만, 잘해냈어요. 인간적으로는 철도 없고 시끄러운 스캔들도 있었지만…, 저는 그를 항상 믿어요(웃음).”
-위기는 어떻게 돌파합니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정면 대결합니다. 본인이 한 일이면 사실에 근거해서 정확하게 대처하고, 본인의 행위로 인한 게 아니라면…, 함께 아파합니다. 스타들은 애인, 가족, 친구, 부모에게 못하는 얘기를 매니저에게 합니다. 매니저 입장에서도 그들은 학창 시절, 친구, 가족보다 더한 ‘살붙이'예요.”
-BH는 매년 30%씩 성장하다가 작년과 재작년에는 어쨌든 이병헌 씨 스캔들로 힘들었다가 다시 탄력이 붙은 셈이에요. 소속사 다른 식구들도 참 아슬아슬한 시간을 잘 버텨준 셈인데, 그들은 인간적으로 어떻게 느끼나요?
“이병헌 씨를 비롯한 진구, 배수빈, 이희준, 한가인, 장영남 등 일단 2/3가 기혼자예요(웃음). 인품이 훌륭해서(웃음), 다들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결혼하고 애를 낳죠(웃음).”
-싱글인 한지민 씨나 한효주 씨는 어떻습니까?
“한지민 씨는 영혼이 맑고 구차하지 않아요. 욕심이 욕심인 줄 알고 내려놓을 줄도 알죠. 한효주 씨는 대표적인 애어른이에요. 어떤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귀신같이 잘 알아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책임감도 타고났어요. 지와 덕이 겸비된 친구들이죠.”
-한효주 씨는 작년에는 ‘뷰티 인사이드'로 맑고 환한 얼굴을 보여주더니, 올해는 ‘해어화'로 욕망과 어둠의 얼굴을 드러냈어요. 개봉 중인 ‘해어화'에서 여배우 한효주가 만개했다, 라는 평이 많습니다.
“분명 매니저로 흥분되는 지점이 있어요(웃음). 효주는 ‘해어화'로 정점을 찍었다고 보는데, 저는 그녀의 30대가 더 궁금해져요.”
-진구 씨는 ‘태양의 후예'로 늦게 빛을 봐서, 그간에 맘고생이 많았지요?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조인성과 원빈의 존재감에 뒤지지 않는 강렬한 2인자 연기를 보여줬는데, 이상하리만치 스타로 뜨지 않아서 안타까웠어요.
“진구는 14년을 함께 했어요. ‘올인'에서 이병헌 씨 아역으로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는데, 제대한 후 적절한 배역이 사라지면서 상실감이 컸어요. 2002년~2003년 즈음에는 엔터 업계에 꽃미남 열풍이 일어서 조인성, 원빈 등 길고 예쁜 친구들이 대세였거든요.
한번은 시트콤 캐스팅이 확정돼서, 머리까지 다 깎고 갔는데 한마디로 ‘까였어요'. 진구하고 방송국 주차장에서 한숨 쉬며 신세 한탄한 적도 있죠(웃음).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안 되는 친구한테 목숨 거느냐?”고 조롱도 받았어요.
기대 수준을 맞춰서 주말드라마 ‘신스틸러' 같은 정도로 노선을 바꾸라고 했는데, 저는 그게 용납이 안 됐어요. ‘마더' 이후에 영화 ‘26년'에서 연기력으로 묵직한 주인공을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는데, 역시나 기다린 보람이 있어요(웃음). 지금은 그 ‘묵직한’ 스타일대로 진구가 잘 돼서 좋고, 그 친구가 좋아해서 정말 제 마음이 좋아요.”
-‘태양의 후예'의 진구 씨의 경우처럼, 배우는 좋은 작품에 알맞은 배역을 맡는 게 정석이에요. 시나리오를 잘 잡아야 하는 건데… 매니지먼트는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의 싸움이기도 하지요?
“그렇죠. 시나리오가 매니지먼트 일의 시작이자 끝이에요. 이병헌 씨의 할리우드 시스템도 마찬가지고요.”
-1년에 몇 개의 시나리오를 검토합니까?
“4백 50권 정도 봐요. 4명 정도가 함께 읽는데, 각자 100권 정도씩 읽죠. 일주일에 3권씩 읽어요. 놓치고 갈 땐 10권씩 밀리기도 해요(웃음). 주말엔 늘 시나리오를 읽는데… 이렇게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버드 대학이라도 갔겠다, 그래요(웃음).”
-매니지먼트의 시작과 끝이 시나리오라면 그 중간에는 뭐가 있나요?
“추상적으로는 사람인데…, 작업 과정에서는 현장 관리, 마케팅, 기획, 영업, R&D 그런 것들이죠. 산업도 조망해야 하고 정보 수집 능력과 위기관리도 중요하고… 이 일 시작하는 후배들한테 그래요. 대기업에서 애니콜, 엑스캔버스 만들듯이, 우리는 대중문화의 최전선에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셀러브러티'를 만들어낸다고요.”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선 BH 엔터테인먼트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이병헌 씨하고 처음 회사 만들 때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영리적인 비즈니스를 하지만, 나만 독식하지 말자, 약속했어요. 서로가 만족하는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오래 같이 가기 위해서 상도를 벗어나거나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일은 안 하려고 해요. 고루하지만, 얻고 싶은 것만큼 대우하고, 갖고 싶은 건 좀 줄이려고 해요.”
-갈등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하죠?
“첫째, 나 먼저 돌아본다. 둘째, 상대 입장에 서 본다. 셋째, 진심을 얘기한다. 너무 감정적이고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피해요. 상식적이고 대화가 되는 사람과 일하려고 합니다.”
-BH를 비롯한 키이스트, 나무 액터스, 호두 엔터테인먼트, 숲 엔터테인먼트 등 내실 있고 탄탄한 젊은 회사의 오너들이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스마트하게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안성기와 박중훈의 영화 ‘라디오스타'에도 나온 것처럼 스타 옆에서 타박도 받고 담배 심부름도 하면서,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떠나지 않고 곁을 지키는 그런 ‘집사'같은 매니저는 아련한 옛 시절의 추억처럼 생각되기도 해요.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매니저의 본질은 한 사람에게 온전히 헌신하는 거에요. 내리사랑으로 얻어지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어요. 그런데 모든 걸 다 준 사람은, 사람을 얻을 수 있어요. 아날로그적인 결론이지만, 결국엔 사랑이고, 사람이라는 거, 그게 진짜 짜릿한 거죠.”
-꿈이 뭔가요?
“단기적으로는 박수 칠 때 떠나는 것. 장기적으로는 행복하기 위해 큰 욕심 부리지 않는 것. 어쨌거나 빨리 은퇴하는 게 꿈이에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시나리오 대신 책도 좀 읽고 싶고, 해외 출장 대신 여행도 좀 가고 싶어서요(웃음). 지금은 하루가 수면 내시경 하듯이 지나가네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은가요?
“(함박 웃으며)물론이에요. 단언컨대, 연예인보다 훨씬 매력적이에요.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매일 다르게 살 수 있지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