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가 확정됐지만, 당내 반발과 분열이 만만치 않다. 당 서열 일인자인 폴 라이언(위스콘신) 연방하원 의장이 "아직은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다"고 5일(현지 시각) CNN 인터뷰에서 밝혔다.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은 한 명도 전당대회에 안 오고, 반(反)트럼프 전선의 최선봉에 섰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불참을 선언했다. 존 매케인(애리조나) 연방상원 의원은 상원 의원 선거에 미칠 트럼프의 악영향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우선 라이언 의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트럼프 지지 여부를 묻자 "현재로서는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지금은 그럴 자리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도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가 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7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자유표결로 후보를 뽑을 경우 대권 후보 0순위로 거론돼왔다. 정작 본인은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쳤고, 과반 획득을 못했더라도 1위 후보를 교체하는 식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그동안 밝혀왔다. 그랬던 라이언 의장이 트럼프 지지를 유보하자, 당 안팎에서는 배경을 놓고 이런저런 해석이 나왔다. 일부 전문가는 라이언 의장이 '가장 중요한 건 분열된 공화당을 통합하는 일'이라고 강조한 점을 지적하면서 "트럼프를 배제하겠다는 게 아니라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공식 지명되기 전까지 그동안 트럼프가 상처주고 공격했던 후보들이나 대상을 향해 트럼프가 성의를 보이고, 당과 섞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트럼프가 계속해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면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도 있다.
조지 H W 부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자는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보도했고, 아들 부시 전 대통령도 침묵을 지킬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가(家)의 지지 선언 거부는 트럼프의 위험한 안보관과 대외정책에 대한 실망을 뜻하기도 하지만, '3부자 대통령'에 도전했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트럼프로부터 '로 에너지(Low energy·활기가 없는)'라고 공격받은 뒤 낙마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롬니 전 주지사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 저격수' 역할을 하다 상처를 입었다. 그는 지난 3월 초 유타대학 연설에서 "트럼프는 가짜고, 사기꾼이다.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면서 "공화당이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지명하면, 미래에 대한 전망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트럼프 지명 저지를 위한 선봉에 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롬니의 한 측근은 의회 전문지 '더 힐'에 "롬니가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매케인 의원은 트럼프 때문에 상원 의원 선거가 어려워졌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투표용지 맨 위쪽(대통령 후보)에 트럼프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을 상상해보라. 히스패닉 유권자가 30%나 되는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내 목숨을 걸고 어렵게 선거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케인은 특히 "우리 주와 미 전역의 히스패닉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을 보고 들으면 모두 '반(反)트럼프' 일색"이라며 "히스패닉 커뮤니티는 격분하고 있다. 이 정도로 화난 모습은 지난 30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 가운데는 1996년 대선 후보였던 밥 돌 전 연방상원 의원이 유일하게 전당대회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로서는 힐러리 공격도 신경 써야 하지만 내부 단합을 위한 특단의 조치부터 내놓아야 할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