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손실(Tragic Loss).'

세계적인 혁신 기업의 하나로 꼽히는 전기자동차 메이커 테슬라가 지난 30일(현지 시각) 자사 홈페이지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을 올렸다. 테슬라의 베스트셀러인 '모델S'가 자율 주행 모드로 운행하다 충돌 사고를 일으켜 처음으로 운전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테슬라는 사고 소식과 함께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청(NHTSA)에 사고 내용을 통보했으며 NHTSA가 이에 대한 예비조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전기자동차뿐 아니라 자율 주행 시스템에서도 가장 앞선 업체로 꼽힌다. 2014년 공개한 '오토파일럿(Autopilot)'이란 이름의 자율 주행 시스템은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자동차가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고 속도를 조절하며 충돌을 방지한다. 또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그 방향으로 알아서 차선까지 변경해줘 상용화된 자율 주행 시스템 중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오토파일럿이 사망 사고를 냄으로써 테슬라는 브랜드 명성에 큰 손실을 입게 됐다. 자율주행차의 안전성과 상용화에 대한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고는 자율주행차가 몇 분의 1초 단위로 생명이 오가는 결정을 해야 하는 고속도로 주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고 했다.

미국 당국의 예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 5월 7일 플로리다주 윌리스턴에서 발생했다. 중앙분리대로 분리된 고속도로의 교차로에서 옆면이 하얀색으로 도색된 대형 트레일러가 테슬라 앞을 가로질러 지날 때 테슬라가 멈추지 못하고 트레일러 옆면과 충돌해 일어났다. 테슬라 차체가 트레일러 아래쪽으로 파고 들어가 앞 유리창이 트레일러의 바닥 부분과 부딪쳤고, 이 충격으로 부상을 당한 남성 운전자는 결국 숨졌다. 운전자는 해군 출신으로 테슬라의 IT 분야 기술 자문을 맡아온 '넥수 이노베이션' 대표 조슈아 브라운(40)으로 확인됐다. 트레일러 운전자는 "사고 당시 브라운이 차 안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테슬라 측은 '밝게 빛나고 있던 하늘' 때문에 자율 주행 센서와 운전자 모두 트레일러의 하얀색 면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오토파일럿이 햇빛과 하얀색을 구분하지 못해 오(誤)작동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서승우 교수(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장)는 "다양한 환경에서 카메라와 감지 센서의 작동에 대한 시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테슬라가 자율 주행 기능을 상용화한 셈"이라고 말했다.

테슬라 측은 오토파일럿을 '변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테슬라는 사고 후 오토파일럿 주행 중 발생한 사망 사고가 인간이 운전할 때보다 훨씬 적다고 주장했다. 미국 자동차는 주행 거리 9400만마일(약 1억5000만㎞)당, 세계 평균적으로는 주행 거리 6000만마일(약 9700만㎞)당 한 차례꼴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는데,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은 1억3000만마일(약 2억900만㎞)을 운행한 끝에 첫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 이 시스템은 아직 시험 중인 신기술로 주행 보조 장치에 불과한 만큼 오토파일럿 상태에서도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은 차값에서 2500달러(약 290만원)만 추가하면 장착해주는 '보조 장치'일 뿐 구글 등이 개발 중인 완전 자율 주행차(무인차)의 단계는 아니다. 미국 NHTSA는 오토파일럿을 4단계 자율 주행 시스템 중 2~3단계 정도로 분류한다. 그런데도 오토파일럿 시스템으로 주행 중인 차 속에서 운전자가 자고 있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닐 정도로 이 시스템을 과신(過信)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로 자율 주행 기술에 대한 연구가 큰 타격을 입지는 않겠지만 정부 당국의 규제는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에 대한 지나친 과신과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동안 기술 발전에 비해 규제 당국의 대응이 느렸다"며 "올여름 중으로 당국에서 자율주행차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차두원 박사는 "이번 사고는 무인 자율 주행차의 안전성과 사고의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를 구체화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