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배우면 지능, 인성, 주의력이 발달한다는 건 검증된 사실이다. 시작하는 나이가 어릴수록 효과가 더 크다는 것도 입증됐다. 그런데 바둑은 대다수 어린이에게 딱딱하고 지루한 '공부의 일종'으로 인식돼왔다. 바둑계가 저변을 확대한다고 섣불리 유아 교육에 나섰다가 어렵다는 선입관만 심어준다면 손대지 않는 것만 못하다. 무슨 묘수가 없을까.

바둑 전문 포털사이트 사이버오로가 이 주제를 정면 돌파, 큰 성과를 올려 주목받고 있다. 한국기원 자회사이기도 한 이 업체가 찾아낸 해법은 '놀이바둑'이다. 글자 그대로 바둑을 어린이들의 놀이 과정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교재와 교구, 스티커가 동원되고 노래, 공작, 촉각 놀이 게임을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바둑을 배운다. 유아들은 바둑돌의 촉감과 무게의 차이, 바둑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부터 깨친다.

유치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놀이바둑’ 학습 장면. 호응도가 높아 내년 수강자 수는 2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주 대상이다. 바둑은 바둑교실 또는 과외학원에서나 배우는 것이란 기존 관념을 깼다. 1단계(5세)는 바둑과 친해지기 위해 놀이로 기초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 2단계(6세)는 활동으로 바둑의 기본 규칙을 적용시키는 과정, 3단계(7세)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바둑 초급 기술을 확장해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곽민호 사이버오로 대표는 "놀이바둑은 바둑 영재교육이 아니며, 훗날 '유치원 다닐 때 배웠던 참 쉽고 재미있는 놀이'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지난해 서울·경기 지역의 '놀이바둑' 수강 어린이 수는 100여 곳 2700여 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전국 500여 곳 1만명 규모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엔 '알파고' 이후 바둑을 배우려는 유아들의 폭증에도 교사 수 부족으로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다.

가르치는 사람도 바둑 전문가가 아니다. 일선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보육 교사들이다. 이들에겐 바둑과 인성교육 등 필요한 강습이 정기적으로 실시된다. 정혜윤(강남구립 C어린이집) 교사는 "수업 후 아이들이 '둥근 의자가 바둑돌을 닮았다'고 배운 걸 확장하는 걸 보고 놀랐다. 유아들이 굉장한 흥미를 갖고 따라와 나까지 바둑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말했다. "바둑엔 자극적 게임 등에선 만날 수 없는 '집중의 힘'이 숨어 있다"고도 했다.

'놀이바둑'의 창안자인 김바로미 박사(명지대)는 "누리과정에 기초한 수(數) 탐구 능력, 사회성, 창의성, 공간지각 능력 등 전인적 발달에 바둑만큼 효율적 도구는 없다고 확신했는데 그 믿음이 입증되고 있어 기쁘다"고 했다. 아동학 전공의 김 박사에겐 신체운동,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와 연관된 색다른 교육 과정을 개발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사이버오로는 교사 인력 증대를 위해 유치원 보육교사 교육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아마바둑 총본산인 대한바둑협회의 강영진 전무는 "교사 수 충원 문제가 해결되면 내년 전국 유아 '놀이바둑' 인구 수는 2만명을 쉽게 돌파할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