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리야(이집트)=노석조 특파원

3일(현지 시각) 이집트 동북부 도시 이스마일리야 언덕에서 내려다본 수에즈운하의 물길은 두 갈래였다. 하지만 지켜본 한 시간 동안 한 물길로 단 한 척의 선박만이 지나갔다. 주변의 황량한 사막 풍경 때문에 수에즈운하는 더욱 썰렁해 보였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수에즈운하청(SCA) 관계자와 무장한 경비병이 달려와 "노 포토(No photo)"를 외치며 제지했다. "왜 촬영을 막느냐"고 재차 묻자 SCA 관계자는 운하를 가리키며 "다른 나라에 알릴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장밋빛 '새 수에즈운하' 사업, 1년 만에 잿빛으로

이집트 정부가 요즘 수에즈운하 때문에 울상이다. 정부는 2014년 국채를 발행하며 외환보유액 부족 상황에서도 80억달러(약 8조8000억원)를 들여 야심 차게 '새 수에즈운하(제2 수에즈운하)'라는 이름의 대규모 운하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압델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임기 초 이 사업을 추진하며 '쿠데타 주동자'라는 오명을 걷어내고 경제난을 극복한 영웅이 되려 했다. 운하가 확장되면 더 많은 선박이 통과해 통행료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세계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수에즈운하의 통행료 수입은 연평균 53억달러로 관광 수입·재외 근로자의 송금과 함께 이집트의 3대 외화 수입원이다.

이집트 정부는 작년 8월 제2 수에즈운하를 완공했지만 이용 선박 수가 기대에 못 미치는 등 곤란을 겪고 있다. 세계 1위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 소속 최대 컨테이너 선박인 에바머스크호가 지난 2003년 이집트 수에즈운하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정박해 있는 모습.

엘시시 대통령은 공병부대를 투입하는 등 총력전을 펼쳐 공사 기간을 대폭 줄였다. 착공 1년 만인 작년 8월 '새 수에즈운하'를 완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총길이 193㎞인 운하의 중간 구간에 32㎞의 새 물길이 생겼고, 홍해 입구 부근의 35㎞ 구간은 폭 317m, 깊이 24m로 확장됐다. 지중해와 홍해를 오가는 선박의 동시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졌다. 기존엔 운하 폭이 좁아 지중해에서 홍해로 향하는 선박은 홍해에서 들어온 선박이 지중해로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SCA는 "운하 통과 시간이 15시간에서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이용 선박 수와 통행료 수입도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새 수에즈운하' 개통식에 세계 주요 인사와 언론을 초청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수에즈운하의 새 물길은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SCA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6일부터 일주일간 수에즈운하를 통과한 선박 수는 311척이었다. 하루 44.43척이었다. '새 수에즈운하' 개통 이전에 일주일 평균 330척(하루 47척)이었던 것보다도 19척(약 6%)이 오히려 감소했다.

이집트중앙은행은 "지난 1년간 수에즈운하 수입이 전년도보다 4.5%(3000억원) 줄어든 51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거액을 들여 '새 수에즈운하'를 건설했지만, 이용 선박 수가 오히려 줄고 운하 수입은 더 감소한 것이다. 이집트 정부 관계자는 "현재 이집트는 재정난이 심각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려고 절차를 밟고 있다"면서 "운하 수입이 기대에 못 미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계 해운업계, "운하 필요 없다"… 저유가에 아프리카 대륙 돌아가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는 선박 수가 줄어든 이유는 저유가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제 유가는 2년여 전 배럴당 100달러선이었지만, 계속 급락해 올 2월 26달러로 최저점을 찍었다. 그 뒤로 꾸준히 반등하고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減産)에 합의했다는 소식에 배럴당 45달러 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고유가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셰일 가스의 생산비가 낮아졌고, 태양열 에너지 같은 대체 에너지의 활용도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글로벌 해운 업체들이 운하 통행료를 내는 대신 목적지에 좀 늦게 도착하더라도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까지 돌아가는 항로를 선택하고 있다.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BBC방송은 "수에즈운하 대신 '희망봉'으로 가는 항로를 택할 경우 11일가량 더 걸리는데, 이때 드는 선박 연료 값이 운하 통행료 25만~35만달러보다 싼 편"이라면서 "저유가 추세가 계속되면 세계 선박 항로가 수에즈운하가 개통한 1869년 이전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전했다. 해운 업계에 따르면 유럽 항구에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해서 인도 뭄바이까지 가는 거리는 1만1600㎞이지만,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면 1만9800㎞에 달한다.

세계무역 둔화도 악재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2012년 무렵부터 세계 무역량은 연간 3% 증가에 그쳤다. 2003~2007년 연간 무역량 증가율(7%)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경기 침체에다 관세 인상 등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추진되면서 해운 업계도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선언으로 세계시장이 위축되고, 다국적 대기업이 해외에서 현지 공장을 통해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교역량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집트 정부는 이에 수에즈운하 통행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이집트 일간 알아흐람이 보도했다. 지난 6월 확장 공사를 마친 파나마운하로 몰리는 선박과 '희망봉'으로 돌아가려는 선박 등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서다.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만 아시아~미국 동부 항로 선박을 두고는 경쟁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