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 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지난 9월 숨진 농민 고(故) 백남기씨를 두고 여야(與野) 간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백씨 부검(剖檢) 여부를 두고 공방이 커지고 있는데, 검찰·경찰 측과 여권은 "부검을 통해 사인(死因)을 정확하게 규명하자"고 하는 반면, 유족과 야권은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왜 剖檢을 두고 대립하나?

진상 규명을 원하는 쪽이 "부검을 하지 말자"고 하고, 정부 쪽에서 적극적으로 "부검을 하자"고 하는 배경에는 백씨의 직접 사인이 무엇이냐는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시위 당시 동영상을 보면, 물대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백씨를 3명의 시위대가 살피는 과정에서 빨간 우의를 입은 남성이 다가온다. 이 남성은 뒤에서 쏟아지는 물대포에 균형을 잃고 백씨의 상반신 위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일부 여당 의원과 네티즌들은 이를 근거로 "경찰의 물대포가 아니라 '빨간 우의 남성'의 무릎에 맞아 백씨가 치명적 부상을 입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내놓고 얘기는 안 하지만 정부와 여당 쪽은 "물대포에 의해서 출혈이나 골절이 생길 수 없는 만큼 부검을 해보면 그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故 백남기씨 쓰러진 순간 - 지난해 11월 14일 열린‘민중 총궐기’시위에서 빨간 우의를 입은 사람(맨 왼쪽)이 쓰러져 있는 백남기씨에게 다가가고 있다(왼쪽 사진). 이 남성이 물대포에 등을 떠밀린 듯 백씨 쪽을 향해 팔을 뻗치며 빠른 속도로 넘어지는 모습이 보인다(오른쪽 사진). 이를 두고 인터넷에선‘빨간 우의 남성이 넘어지며 백씨를 가격해 백씨가 다쳤다’고 했고 새누리당 일부도 비슷한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에 대해 유족·시민단체 측과 야당 의원들은 "여권에서 말도 안 되는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며 "백씨의 사인은 이미 물대포로 규명됐기 때문에 시신을 훼손하는 부검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백씨의 직접 사인이 경찰의 물대포인지 아닌지는 이 사건의 성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에 서울대병원이 백씨 사망진단서에 사인(死因)을 '병사(病死)'로 적은 것을 놓고도 외압 의혹이 제기되면서 양측 공방은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다.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검 국감에서도 여야는 이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고인의 선행 사인이 머리의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하지만 안와골절(눈 주위 뼈)도 발생했다고 하는데 '물대포'로는 얼굴 뼈가 부러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빨간 우의 남성'의 무릎에 맞아서 얼굴 뼈가 부러진 것 아니냐는 얘기다. "검찰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부검 영장 집행을 해서 사망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병원에서 오랫동안 입원하다가 사망한 경우 그동안 검찰이 부검 영장을 청구한 사례가 딱 한 건뿐"이라며 "10개월 넘게 병원에서 백씨를 조사해왔는데 또다시 부검이 필요한가"라고 했다. "백남기씨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사망했다"며 "검찰이 적법 절차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중요 사건에서 사람이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면 사인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명백히 하기 위해 부검을 해야 한다"며 "그런 판단에 따라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에서 발부한 것"이라고 했다.

◇故 백남기씨 논란의 시작은?

'고 백남기씨 논란'은 작년 11월 14일 민주노총 등의 주도로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벌어진 '제1차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비롯됐다.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직후 쓰러져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과잉 진압' 논란이 일었고, 경찰은 "정당한 집회 진압이었다"고 맞섰다. 백씨는 일부 시위대와 함께 행진 차단 목적으로 경찰이 세워놓은 차 벽에 밧줄을 걸어 넘어트리려 했고 이를 제지하려던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당시 불법 집회 혐의로 51명을 검거했다. 그러자 일부 시민단체로 꾸려진 '백남기대책위'와 백씨 가족 측은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후 야당들이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서 지난 9월 청문회까지 열었다. 야당은 "사람을 향해 바로 쏴서는 안 되는 물대포를 직사(直射)했다"고 했지만, 여당과 경찰은 "절차를 지켰으며, 불법·폭력 집회를 진압하기 위한 정당한 절차였다"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