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중에 자기가 돋보이는 일만 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같이 일하기 어렵죠. IT업계에서는 업무 대부분을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하거든요. 아무도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결국 스스로 지쳐서 회사를 나갑니다. 그래서 요즘은 신입을 뽑을 때 개인의 실력보다 협동 능력을 먼저 보게 돼요."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 신입사원에 대해 이런 평을 했다. 명문대를 졸업한 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글로벌 기업에 입사한 사원들이 남들과 융화하지 못해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였다. 학업 경쟁이 만연한 한국에서 협업은 학생들에게 익숙지 않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 협업 능력은 미래 인재가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 역량으로 꼽힌다. 여러 분야 전문가와 교류하며 창의 융합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인재가 각광받는 것이다. 지난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는 여러 학생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력을 평가하는 문항이 추가됐다. 지난 4월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생활 기록 작성 및 관리 지침 일부 개정안'이 수행평가 비중을 확대함에 따라 협동 학습도 늘어날 전망이다.

◇업무 분담 명확히 하고, 내 역할은 적극적으로 찾아야

협동 학습 잘하는 학생들은 협업 시 가장 중요한 태도로 단연 '듣기'를 꼽는다. 김민주(건국대 중어중문학과 1)씨는 "조별 과제를 할 때 팀원들 생각을 빠짐없이 듣고 나서 가장 좋은 의견을 택하거나 몇 개 아이디어를 조합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낸다"며 "여러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 혼자 만든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을 얻는다"고 했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 듣기가 발휘하는 힘은 더 커진다. 권예림(서울 하나고 2)양은 "조별 학습 시 자기 의견만 내세우는 친구가 있을 땐 인내심을 갖고 그 친구 얘기를 더 열심히 들으려 애썼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 말을 경청하다 보면 제 생각의 문제점을 깨닫거나 다른 아이디어의 장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익힌 것 같아요."

업무를 세분화해 분담하는 단계도 중요하다. 박유진(서울대 자유전공학부 2)씨는 초·중·고교에 걸쳐 매년 전교 회장이나 학급 반장, 동아리 부장 등을 맡으면서 이런 태도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한다. "처음엔 일을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심에 거의 모든 일을 제가 다 맡았어요. 친구가 해온 몫까지 제가 고쳐놔야 직성이 풀렸죠. 돌이켜보면 그건 좋은 리더의 자세가 아니었어요. 협동 학습의 목적은 모두의 성장을 위한 거니까요. 지금은 전체 흐름을 빨리 파악해 누가 어떤 업무를 맡아야 가장 효율적일 것인가를 가늠한 뒤 역할을 명확히 나눕니다." 그는 "효율적으로 협동을 하려면 아이디어를 취합하는 초기 단계부터 '각자 사례를 한 가지씩 조사해오자'는 식으로 구체적인 규칙을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한빈(서울대 자유전공학부 2)씨도 "팀 프로젝트는 자칫하면 잘하는 친구들 위주로만 진행될 수 있다"며 "(다소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내가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나친 경쟁 의식이 협동 가로막아… 다양한 운동 경험 도움돼

앞으로 끊임없이 협동 학습을 해야 하는 자녀를 학부모가 도울 방법은 없을까. 이상우 은빛초 교사(서울초등협동학습연구회 전문연구위원)는 "협동심은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여러 명이 힘을 모아 과제를 하는 협동 학습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부모와 활발히 대화를 나누면서 이견(異見)을 조율하는 요령이나 남 배려하는 법을 배운 학생들이 협업에 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김현섭 수업디자인연구소장(전 한국협동학습연구회장)은 대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부모가 계속 남과 비교하면 아이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게 됩니다. 만일 아이가 100점을 받았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함께 기뻐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너 말고 몇 명이나 만점을 받았느냐'며 비교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이 경우 아이는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아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친구들을 경쟁자로만 보게 되죠."

'열 살 전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라'를 출간한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는 "공부에 지친 채 집으로 돌아와 힘들다며 칭얼대는 아이에게 '죽어도 학원에서 죽으라'며 내모는 엄마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다"며 "끊임없이 경쟁시키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남을 동료로 인식하고 협동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녀가 교내·외에서 다양한 단체 스포츠와 체험 학습을 하도록 권하는 것도 좋다. '중등학교 협동 학습의 이론과 실제'를 펴낸 이미숙 서울 동작고 교사는 "아이들의 인간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풍부해지고 한층 성숙해진다"며 "각종 캠프나 단체 운동, 동아리, 종교 활동, 체험 학습을 두루 경험하는 과정에서 협동에 꼭 필요한 소통력과 배려심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교사의 역할도 작지 않다. 김현섭 소장은 "협업 시 무임승차를 방지하려면 전체 활동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역할과 책임을 따져 평가해야 한다"며 "협동 학습이 신뢰받고 자리 잡으려면 교사가 학습 프로세스를 치밀하게 구조화해 단계마다 꼼꼼하게 학생들을 관찰한 뒤 서술형 평가를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