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최고령 선수인 방신봉(41·한국전력)은 2007~2008시즌이 끝나고 '강제 은퇴'를 당한 일이 있다. 당시 소속팀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은 '어린 선수들을 더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은퇴를 요구했다. 그는 배구를 그만두고 할 일이 없어 수원체육관에서 코트 매니저로 일했다고 한다. 말이 코트 매니저지, 월급도 없고 경기가 열릴 때 코트 설치해주고 조명 켜주면서 일당 10만원을 받았다.
허드렛일을 하는 그에게 후배들이 눈치 없이 다가와 깍듯이 인사했다. "솔직히 자존심 상하고 창피했어요. 그럴수록 배구를 더 연구했고 언젠가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그렇게 6개월 일을 한 뒤 그에게 기회가 왔다. 새로 부임한 한국전력 강만수 감독이 입단을 제안한 것이다. 탁월한 블로킹 감각으로 전성기 시절 '황금 방패'라 불리던 그는 코트에 복귀한 뒤 녹슬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나이 탓에 주전으로 나서진 못하지만, 위기 때마다 투입돼 해결사 역할을 한다.
방신봉은 지난 17일 삼성화재전(3대2 승)에선 블로킹만 무려 8개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날 방신봉은 전매특허인 '화끈한 세리머니'로 팬들의 눈길을 잡았다. 그는 블로킹 성공 후 후배 선수들이 있는 웜업존으로 달려가 아이돌 그룹 엑소의 '으르렁' 댄스를 췄다. 경기도 의왕시 한국전력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방신봉은 "고 2 딸이 엑소를 좋아해 춤을 춰봤다"면서 "아내가 점잖지 못하다고 그만두라고 한다. 그래도 팬들이 좋아하니 계속한다"고 말했다.
배구 팬들은 어느덧 V리그 맏형이 된 방신봉에게 '원로 센터'라는 새 별명을 붙여줬다. 그가 블로킹에 성공할 때마다 팬들은 장미하관의 '오빠라고 불러다오'라는 노래를 합창한다. 우연히 중계방송에서 방신봉을 본 이들은 "내가 아는 방신봉이 아직도 선수로 뛰느냐"며 놀란다. 방신봉은 "관리만 잘하면 내 나이가 돼도 뛸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프로배구 출범(2005년) 전인 1997년 실업리그에 데뷔해 20년째 코트를 누비는 방신봉은 2010년 1월 실업과 프로를 합쳐 1000블로킹을 최초로 달성했다. 2007년 그가 세운 한 경기 최다 블로킹(11개)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는 배구계의 '전설'이다.
지금 방신봉은 스무 살 어린 소속팀 막내 황원선(21·세터)과 호흡을 맞춘다. 오래 뛰다 보니 어느덧 후배가 감독을 하는 나이가 됐다. 그는 "절친한 후배인 최태웅(40)이 현대캐피탈 감독을 맡고 첫 한두 번은 현대캐피탈전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오래 해서 못 볼 꼴을 보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지요. 지금은 익숙합니다. 남 의식할 것이 뭐 있나요. 자기 일만 하면 되는 거지요."
방신봉의 꿈은 현재 배구부에서 수비형 레프트로 활동 중인 중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같은 프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아들이 프로에 올 수 있는 건 4년 뒤의 일이니, 최소 45세까지는 선수로 뛰겠다는 다짐이다. 방신봉은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고, 술은 회식할 때가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다. "잘나갈 때는 몰랐는데 코트 매니저 해보니 선수는 코트 위에서가 제일 행복한 거더라고요."
감독실에서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자 방신봉은 '조카뻘' 후배들이 훈련 중인 코트로 달려가 신나게 공을 때렸다. 20대 선수들은 그를 '방 삼촌'으로 부르고 있었다.